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77강(창33: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18. 14:38

창세기 강해 제177(33:1-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30()

 

처자식에 대한 야곱의 차별과 편애의 모습(33:1-2)

 

야곱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죽어도 쌍둥이 형 에서의 아래에서 신하의 노릇을 하고 싶지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77세가 될 때까지 장가도 아니 가고서 밤낮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25:27). 자신의 운명을 둘째가 아니라 첫째로 바꾸어달라고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사냥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형 에서가 배고픈 틈을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입니다”(25:29-33). 그것은 야곱이 자기자신을 소위 순위로서 엄청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얍복 시냇가의 야곱은 22첩을 거느리고 있는 가장입니다(30:1-24). 그는 처첩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아내 사이에도 편애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곱은 레아가 아니라 라헬을 연모하여 7년 무료머슴살이를 자청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사랑의 ‘1’순위는 당연히 라헬입니다(29:17-20). 그리고 자식으로서는 라헬의 소생인 요셉입니다(30:24). 그 다음 순위가 어쨌든 아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레아입니다. 그리고 레아의 소생이 줄줄이 있습니다. 그들이 소위 ‘2’순위입니다. 그 다음 2첩에 있어서도 서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역시 라헬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는 야곱인지라 그녀가 천거한 바 있는 그녀의 몸종 출신인 빌하입니다(30:4). 빌하의 소생인 아들이 2명입니다. 단과 납달리입니다. 그들이 ‘3’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레아의 몸종 출신인 실바가 있습니다(30:9). 그녀도 아들이 2명입니다. 갓과 아셀입니다. 그들이 ‘4’순위입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서 보니 남쪽에서부터 뭉게구름을 피우면서 에서와 400명의 사병들이 진격해오고 있습니다(33:1). 그 위세가 위맹하고 포악해 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사자의 축복을 받은 몸이라고는 하지만 당장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렇게 급해지면 야곱의 약삭빠른 천성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납니다. 야곱이 갑자기 약은 꾀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2처와 2첩의 소생들을 차별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 전방에 ‘4’순위, 그 다음에 ‘3’순위, 그 뒤에 ‘2’순위, 맨 나중에 ‘1’순위인 라헬과 요셉을 배치합니다”(33:1-2). 따라서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본능적인 자기보호와 편애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과 무차별적인 공의의 정신이 자리잡기에는 인간의 시각이 너무나 좁고 그 마음이 협소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삶이 종말을 고하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서 완전히 영으로써 육을 지배하는 그때에 가서야 그와 같은 완벽한 성숙함을 보일 것만 같습니다.

 

처자식을 살리려는 야곱의 처절한 몸부림, 에서에 대한 오체투지의 모습(33:3)

 

야곱은 자신의 목숨과 처자식의 목숨을 모두 살리고 싶습니다. 그가 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형 에서 앞에 바짝 몸을 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자식들 앞으로 나아가서 가장 먼저 형 에서를 맞이합니다. 에서를 보자마자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히는 오체투지를 실시합니다(33:3).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지고한 신을 맞이할 때에 행하는 경배의 모습입니다. 혹은 비천한 백성을 황제가 앞으로 다가오도록 명령하였을 때에 행하는 배알의 준비과정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완벽한 오체투지를 야곱이 형 에서에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에서를 앞으로 황제처럼 모시겠다는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의 서약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 7번이 아니라 70번이라도 오체투지를 할 판입니다.

절대복종의식을 행하며 비굴하게 자기 앞으로 나아오고 있는 동생 야곱을 보고 있는 형 에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두 가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20년 전의 원한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32:29). 사자를 보내어서 야곱에게 축복을 전하도록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복 주심이 바로 원수의 마음을 돌리고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12:18-21). 둘째는, 아버지 이삭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27:39-40) 세월이 지나고 보니 에서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32:6).

구체적으로, 야곱은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 도망을 가서 이제 겨우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사이에 에서는 가나안 남부의 아버지 이삭의 집의 재산뿐만 아니라 세일 산 장인 아나의 온천장 재산까지 호위하고 관리하는 엄청난 실력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33:9, 36:6, 24). 그는 이미 어엿한 족장이며 그 세력이 대단합니다. 그의 사병 400명은 그 옛날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성주 시절의 가병 318명보다 더 큰 세력입니다(14:14). 그와 같은 에서 자신의 위세와 성공에 비추어 볼 때 동생 야곱의 재산은 견줄 바가 아닙니다(33:9). 따라서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약삭빠른 야곱이 아니라 이삭의 장자인 자신임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인생의 결과가 그렇게 드러나고 있는데 구태여 옛날의 원한에 사로잡혀서 지금에 와서 동생을 해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야곱을 용서하고 기쁘게 포옹하고 있습니다(33:4). 한 마디로, 눈물겨운 형제상봉의 자리이며 화해의 한 마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