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76강(창32:31-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18. 14:36

창세기 강해 제176(32:31-3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9()

 

허벅다리를 절게 되는 것이 야곱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계기가 되다(32:31-32).

 

밤새도록 얍복 시냇가에서 야곱과 씨름을 하고 있던 어떤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버렸다고 합니다(32:25b). 그 이유를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32:25a)라고 모세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자가 왜 사람에 불과한 야곱을 이길 수가 없을까요? 그것은 힘으로 이길 수가 없다고 하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힘만을 사용하고 있는 씨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자가 이기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씨름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6:12)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사람입니다(32:5, 8, 18-20) . 그것이 어려우면 하나님의 약속을 빌미로 이용하여 우선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고 보자고 하는 사람입니다(32:9, 12). 그렇게 양손에 떡을 쥐고서 하나님까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이용하고자 부르짖고 있는 야곱을 어떻게 하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나갈 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타고난 천성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듯이 실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보통 방법으로는 야곱의 약삭빠른 기질을 꺾을 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비상수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을 당분간 절뚝발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야곱은 세상적인 방법이 사라지고 맙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도망을 쳐야만 하는데 그 방법이 사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모두 사라진 야곱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매어 달립니다.  무조건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바로 그때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32:28a). 하나님의 뜻으로 개명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이름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죽을 운명이 살 운명으로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세상적인 꾀와 재주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셋째, 남의 발목을 잡고 남의 복을 가로채기나 하던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복의 통로가 되는 거룩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27:36, 28:14, 32:28b).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이 얍복 시냇가에서 남쪽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32:31). 에서와 더 빨리 만나고자 합니다. 생각해보면, 야곱은 에서를 만나게 되는 다음 날이 두려워서 하루 동안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과 영적인 씨름을 했습니다(32:24). 그런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나자 전혀 그 태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숙적 에서는 물론이고 자신의 운명과 마주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정정당당하게 맞서려고 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32:25). 절뚝발이 병신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야곱이 에서를 맞이하여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 편하게 에서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으로 맞서나가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다음과 같이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32:31). 한 마디로,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가장 약한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장 강한 자가 될 수가 있다”(고후12:9-10)고 하겠습니다.

 

오늘 날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나 양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고 있는 이유(32:32).

 

다리를 절면서 숙적 에서와 맞서고자 전진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의 기상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야곱의 그때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신앙교육의 자료로 대물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치 절기를 정하듯이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소나 양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32:32b). 같은 구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쳐버렸다(32:32a).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야곱은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무조건 매어 달렸다.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숙적 에서를 만나서 담판을 짓고자 하는 담대한 마음이 생겼다. 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맞서고자 했다.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계승해야만 하는 조상인 야곱, 곧 이스라엘의 신앙인 것이”.

훗날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림절행사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 아각 왕의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는(삼상15:8, 3:1) 신임 재상 하만의 음모에 의하여 12월 중순에 죽을 운명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3:6-15).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 모르드개와 왕비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서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합니다(4:1-5:5). 그 결과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황제의 마음을 돌리시고 유대인들에게 자위권을 줍니다(8:8-14). 아하수에로 황제로 하여금 재상 하만을 처형하고 모르드개를 중신으로 등용하게 합니다(7:10, 8:15, 9:4). 그 결과 반 유대세력이 물러가고 친 유대세력들이 전국에서 득세를 하게 됩니다. 마침내 12월 중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 사실을 후손들이 잊지 아니하도록 아예 부림절행사를 제정하여 매년 실시하게 됩니다(9:17-32). 그때가 BC 5세기경입니다.

그런데 2,400년 이상이 지나고 있는 오늘 날에도 유대인들은 그때의 일을 잊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일명 하만의 귀라고 하는 마른 과자를 만들어서 절기 때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한 그들이기에 지금까지 소나 양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고 있다는 기록은 실로 당연하게 여겨집니다(32:32). 그것은 어떻게 보면 출애굽기에 있는 다음 기록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