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51(작성자; 손진길)
11. 밧세바의 권력의지와 다윗의 선택
헤브론은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22km지점이다. 그 지명이 유명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기반을 얻은 장소이며 훗날 그의 아내인 사라가 그곳에서 죽어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과 밧세바에게 있어서도 헤브론은 잊을 수가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10년 동안 도망자로 지내다가 비로소 자신의 왕국을 얻은 장소가 바로 헤브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밧세바는 그녀의 고향이 헤브론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그 땅의 지배자가 아모리 족속이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오랜 세월 블레셋의 비옥한 평야 그랄과 그 변경인 브엘세바에서 지내다가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와보니 그 땅의 지배자가 바뀌어 있다;
북쪽에서 철기문명을 가지고 남하한 혼혈 거인 헷족속이 원주민인 아모리족속을 치고 헤브론 땅을 빼앗아 ‘기럇 아르바’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그 땅의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는 의미는 등기가 달라지고 소유주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옛날 아브라함이 보유하고 있던 헤브론의 자신의 땅도 전부 소유권이 사라지고 이제는 헷족속의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아브라함은 127세의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자 돈을 주고서 헷족속으로부터 그 옛날 자신의 땅인 마므레 막벨라 굴 일대의 토지를 사서 그곳을 묘택으로 삼고 있다(창23:16-20). 그리고 자신과 아들 이삭부부 그리고 야곱의 부부가 그곳에 안장이 된다(창49:29-33).
훗날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그때 갈렙 장군이 기럇 아르바의 헷족속을 치고 그 땅을 차지한다. 그때부터 그 지명이 다시 ‘헤브론’으로 불리기 시작한다(수14:13-15);
유다지파의 땅이 되었지만 일부 헷족속이 훗날 가드에서 다시 헤브론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수11:21-22). 그 가운데 헷족속인 우리야와 밧세바의 집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야는 헷족속이지만 용장이다. 그래서 우리야는 다윗장군이 주전 1,011년에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자 다윗의 군대에 들어가서 빠르게 출세하게 된다. 본래 우리야가 충성심이 강하고 용맹하며 천부적인 무인 체질이라 그 출세가 엄청 빠른 것이다.
옛날부터 용맹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30세가 넘은 늦은 나이에 용장 우리야가 헤브론의 헷족속 가운데 가장 미인인 젊은 처녀를 아내로 얻는다. 그녀가 바로 밧세바이다. 아내를 데리고 우리야가 예루살렘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풍족하게 신혼생활을 맛보고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무장인 우리야가 집에 있는 날보다 전장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다. 왜냐하면, 시온성으로 천도한 다윗왕이 6년간이나 정복전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쟁에 계속 출전한 장수가 바로 우리야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의 집에서 밧세바와 가정생활을 한 날수보다 전장에서 전투에 참여한 날 수가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한지 7년이 되지만 그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결혼하여 아들이 없으면 과부가 되는 경우 재산을 상속할 수가 없기에 비천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래서 밧세바는 득남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데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탐낸 다윗왕이 왕궁으로 은밀하게 그녀를 부른 것이다. 그녀의 신분이 충성스러운 용장 우리야의 젊은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윗왕이 그만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그때 아들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포착한 밧세바가 슬쩍 다윗왕을 유혹한다; “저는 오늘 비로소 달맞이 경수가 끝났기로 몸을 깨끗하게 씻었어요… “. 그 말의 의미를 똑똑한 다윗왕이 금방 알아챈 것이다. 그녀가 자신과 합방을 해도 아기가 생길 턱이 없으니 다윗에게 하룻밤 함께 지내도 된다는 뜻이다;
밧세바의 목적은 은밀하게 다윗왕을 만나면서 아들을 하나 얻을 생각이다. 그리고 훗날 남편 우리야에게 자신들의 아들이라고 말하면 될 것으로 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녀가 과부가 되더라도 우리야의 재산을 아들 명의로 상속하고 편하게 여생을 지낼 수가 있는 것이다.
밧세바의 애초 생각은 다윗왕을 그저 ‘씨내리’ 정도로 생각한 것인데 그만 그녀의 짧은 생각이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그 때문에 다윗왕이 완전범죄를 꿈꾸고 용장 우리야를 모살하고 만 것이다;
밧세바는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서 초상을 치르면서 목놓아 운다(삼하11:26). 하지만 아들이 없으니 그 재산을 상속할 수가 없다. 그녀는 꼼짝 없이 친정으로 돌아가서 찬밥신세로 여생을 지내야만 되는 처지이다.
비록 그녀의 뱃속에서는 태아가 꿈틀거리고 있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아비가 전장에서 죽고 말았으니 시집식구들이 유산을 주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한 궁지에 빠져서 그런지 밧세바의 통곡소리가 더욱 크다. 그런데 뜻밖에 구원의 손길이 찾아온다. 그녀를 다윗왕이 궁궐로 데리고 간 것이다(삼하11:27);
밧세바는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윗왕이 그녀를 곁에 두고서 자주 보게 되면 분명히 사람인 이상 자신이 모살한 우리야가 생각이 나서 괴로울 것인데 어째서 그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아들인 것일까? 그리고 아기를 낳게 되자 어째서 정식 아내로 삼은 것일까?
도대체 다윗왕이란 사람은 어떠한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의문에 대한 답을 훗날 잠자리에서 그녀가 듣게 된다: “밧세바, 나도 인간이오. 당신을 볼 때마다 내가 당신의 전 남편인 우리야 장군의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가 없오.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말이요. 그런데… “.
다윗왕이 한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내가 밧세바 당신을 버리게 되면 당신은 유복자를 낳은 과부신세가 되고 말아요. 그러면 시집에서 태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아니하여 당신은 비참한 여생을 살게 되지요. 그러니 내가 당신을 거두고 나의 죄값을 치르는 것이 옳은 것이지요… 그리고…. ”.
한번 더 한숨을 쉬고서 다윗왕이 말한다; “당신을 탐한 자가 나이며 또한 그 때문에 여호와의 처벌을 받고 있는 자도 나요. 그러니 내가 그 처벌을 달게 받는다고 하는 의미에서 당신과 함께 여생을 지내고자 하오. 그러한 불쌍한 당신과 나를 보시고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나는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오… “;
다윗왕의 그러한 처절한 말을 들은 밧세바는 그녀의 운명을 생각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제 다윗왕의 아들을 낳아 그와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5년 동안에 무려 4명의 왕자를 생산한다.
불륜의 열매인 첫아들은 일찍 죽고 말았지만 나머지 3아들은 잘 자라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첫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모친 한나에게 여호와의 은혜로 3아들이 주어진 것과 같다(삼상2:21).
밧세바는 자신의 소생인 왕자 3명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는데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막내왕자인 솔로몬이 참으로 똑똑하고 영특하다. 학문이 뛰어나고 세상사는 이치를 꿰뚫고 있다. 15살이 되자 왕자의 사부들이 벌써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가 궁중에 퍼지게 되자 왕자 아도니아의 생모인 왕비 학깃이 눈에 불을 켠다. 그녀의 아들 아도니아가 30세인데 신하들 사이에서는 확실하게 세자감이라고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도니아의 이복형으로는 왕비 아비가일의 소생인 길르압이 있다. 하지만 왕자 길르압은 이상하게도 총기가 별로 없다. 왕비 아비가일은 총기와 지혜가 넘치는 여인인데 그 소생은 정반대인 것이다. 그러니 길르압을 세자감이라고 말하는 신하는 거의 없다;
게다가 길르압이 오래 살지를 못하고 40세를 넘기자 그만 죽고 만다. 따라서 아도니아가 33세쯤 되었을 때에 왕자로는 가장 연장자가 된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제국에서 권력의 실세로 보이고 있는 전직 사령관인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공공연히 신하들 앞에서 아도니아가 인물이 좋고 성품도 좋으며 그 능력도 출중하므로 다윗대왕의 뒤를 잇기에 적격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도니아의 생모인 왕비 학깃은 그 마음이 들떠서 이름 그대로 축제분위기가 되어 있지만 똑똑한 아들 솔로몬의 모친인 밧세바는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왕자 솔로몬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중신을 찾게 된다. 왕궁에서 왕위를 얻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곧 모후들의 생존과 관련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에 그녀의 심정이 절박한 것이다.
밧세바는 친정이 헤브론이다. 그러므로 그곳 출신으로서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중신을 찾고 있다. 그 대상이 두사람이다; 한사람이 헤브론출신의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이며 현재 다윗대왕의 근위대장인 브나야 장군이다. 또 한사람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뒤를 잇고 있는 대제사장 사독이다. 브나야와 사독은 같은 비느하스의 자손인 것이다.
다윗왕은 70세가 되자 자주 병상에 누워 있다. 이제는 심신이 너무 피로하여 그만 쉬고 싶다. 그래서 아도니아와 솔로몬 가운데 누구를 세자로 삼아 대리청정을 맡기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한다. 나이로는 35세인 아도니아 왕자가 이제 20세 약관이 된 솔로몬보다 훨씬 연상이다. 그런데 아도니아를 세자로 삼을 경우 큰 문제가 있다.
다윗왕이 은밀하게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2년전부터 여전히 군부의 막후실세인 요압이 학깃 왕비의 요청으로 아도니아 왕자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다윗 자신이 알기로는 학깃은 미인이며 성격은 무난하지만 친정이 별로이고 지혜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쉽게 요압의 위세에 굴복할 것이다. 그리고 아도니아 역시 요압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 왕이 되고 말 것이다;
다윗왕은 자신의 비리를 손에 쥐고서 마치 이스라엘제국의 실세인 것처럼 군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요압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윗 자신의 큰누나인 스루야의 장남인 요압이지만 다윗왕은 그 조카가 마치 인형놀이를 즐기듯이 그렇게 다윗의 나라를 훗날 지배하는 것을 결코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왕은 그 대안으로서 솔로몬 왕자를 생각한다. 그리고 밧세바의 움직임과 솔로몬 왕자에 관한 정보도 모으고 있다. 그 결과 밧세바가 영리하게도 요압과 은근히 각을 세우고 있는 근위대장 브나야에게 줄을 대고 있으며 또한 동향인 사독 대제사장에게 솔로몬의 뒤를 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두 신하에 대한 다윗왕의 신임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윗 자신이 알기로는 브나야 장군은 그 무예스승이 전설적인 3무장의 하나인 삼마이다. 그리고 요압 장군의 스승은 역시 전설적인 무장으로 불리지만 그 이름이 엘르아살이다. 서로 무예스승이 다르므로 브나야와 요압은 동문이 아니며 사형제 사이도 아니다. 더구나 브나야는 요압과 지파가 다르고 친척 사이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행동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요압이 권력지향적이라고 한다면 브나야는 대제사장 가문의 아들답게 충직한 장군이다. 그래서 다윗이 항상 브냐야 장군을 신임하면서 자신의 근위대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병상에서 다윗왕이 다소 안심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이스라엘제국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것이 바로 세자 책봉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성급한 아도니아 왕자가 자신의 세력을 모아서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자 한 반역사건이다;
그 일의 자초지종과 경과가 어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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