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4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7. 09:57

다윗의 기도47(작성자; 손진길)

 

10. 다윗왕의 시대에 큰 이익을 향유한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보고 받은 다윗왕이 임시수도인 마하나임 궁궐 윗층에서 혼자 울기만 한다.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생각도 아니하고 있다. 울음소리 가운데 간간이 이상한 넋두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고 네가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삼하18:33);

 

그 말을 전해 들은 요압 사령관이 위기를 느낀다. 다윗왕이 계속 그렇게 떠들고 울고 있으면 이번 전쟁의 명분이 모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반란을 진압한 자신과 장졸에 대한 모욕이다. 그래서 다윗왕을 찾아가서 계급장을 떼고서 강력하게 경고한다.

요압의 말이 다음과 같다; “군부와 군대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지금 반란군의 괴수를 사랑하는 한편 목숨을 걸고 반란을 진압한 저희들을 미워하며 동시에 배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함께 나가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룬 군사들을 위무하지 아니하시면 저희 장졸들이 폐하를 버리고 전부 제갈길로 떠나고 말 것입니다”(삼하19:5-7 의역);

 

군대가 없는 군주는 이미 군주가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서 다윗왕이 번쩍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순순히 요압 사령관과 함께 대전으로 나아가서 수고한 군부와 군사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위무의 말을 전한다(삼하19:8).

금번의 내란을 진압하면서 요압 사령관의 위세가 더욱 막강해진다. 그는 다윗왕의 조카이지만 나이가 연상이다. 다윗왕이 55세이므로 요압 사령관은 58세이다. 요압이 앞장을 서서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였기에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제국에서는 없다. 따라서 다윗왕이 15년간 더 집권하지만 제2인자인 요압의 권세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력이라고 하는 것은 꼭 군사력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이스라엘 12지파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국왕인 다윗의 책임이며 본분이다;

 

 그는 그 일을 인간인 자신이 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마음을 다윗에게 향하도록 해줄 때에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다윗왕은 우선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제사장들에게 전리품을 많이 주면서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와 화목제를 성심껏 드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필요한 조건의 만족이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충분한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다윗왕이 스스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대왕으로 공정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12지파와 함께 나누고 제국의 경영에 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러한 진지한 노력을 다윙왕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다윗왕은 개방적인 인물이 아니고 제국의 경영에 있어서 속이 좁은 폐쇄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윗왕은 군부를 통제하는 일이 제국의 유지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들에 한하여 철저하게 그 일을 위탁하고 있다. 그 수임자의 면모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친족이다. 예를 들면, 군부대신이 다윗왕의 숙부인 요나단이고 군사령관이 조카인 요압 장군이며  또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 장군이 부사령관이다. 그들이 12개 군단장 가운데 3분의 2를 유다지파 출신의 장군으로 임명하고 있다.  

둘째, 다윗은 용병장을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용병장인 잇대에게 군부의 부사령관을 맡기고 있으며 자신의 시위대장으로 브나야를 임명하고 있는데 그는 그렛과 블레셋 출신의 용병으로 다윗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불만세력이 생기고 있다. 그들 가운데 앞장을 서고 있는 자들이 다음과 같다;

첫째가, 다윗왕의 친족이 아닌 자들이 다윗을 돕다가 상처를 입고서 마음이 돌아서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임 군부대신인 아히도벨이다. 그가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하여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가, 같은 조카이지만 다윗왕은 큰 누나 스루야의 아들인 요압과 아비새에게만 군부를 맡긴다. 물론 다윗왕은 우리야 암살사건으로 요압에게 약점이 잡혀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둘째누나 아비가일의 아들인 아마사가 군부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종내에는 압살롬의 편을 들고 만다;

셋째가,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1지파가 불만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다윗이 항상 친족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전리품을 제사장들과 자신의 유다지파 내 그것도 측근세력들에게만 듬뿍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11지파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 지파 내에서 압살롬 왕자의 반란이 발생하였을 때에 다윗을 지지하지 아니하고 압살롬의 편을 들고 있다. 이제는 마하나임과 에브라임 수풀지역에서 전투를 한 결과 반란의 수괴인 압살롬이 전사하고 말았다.

그를 도운 유다지파는 얼른 압살롬을 버리고 다윗왕에게 아부를 하고 만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이 상한 이스라엘 11지파의 장로들은 그러하지를 아니한다. 그들은 다윗의 치부를 다시 말하면서 베냐민 지파의 새로운 영웅 세바를 중심으로 다윗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자 한다. 그것이 압살롬의 반역사건에 뒤를 이어 발생하고 있는 소위 세바의 반란사건인 것이다.

이스라엘 11지파는 다윗왕이 사울왕가를 완전히 멸하기 위하여 과거에 심복 요압을 시켜서 이스보셋왕국의 기둥인 아브넬 사령관을 위계로 암살한 사건을 다시 거론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윗왕이 충신의 젊은 부인 밧세바를 얻고자 요압 사령관과 모의하여 용장 우리야를 전사하게 만든 그 책임을 묻고 있다.

그렇게 믿을 수가 없는 위선자인 다윗왕은 유다 지파의 왕인지는 몰라도 자신들 곧 이스라엘 11지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삼하20:1). 그가 지난 세월 전력투구하여 이스라엘왕국을 이스라엘제국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지만 그 결과 이스라엘 11지파의 많은 젊은이들이 정복전쟁의 와중에서 전사하고 그들 이스라엘 11지파에게 돌아온 전리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윗왕은 항상 모든 요직은 친족과 유다지파 내에서만 나누고 나머지 이스라엘 11지파는 왕따를 시키고 있다. 그리고 국왕인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암살을 서슴지 아니하고 있으니 전혀 믿을 수 있는 왕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11지파의 생각이 별로 틀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은 훗날 다윗왕의 후계자인 솔로몬왕이 통치 후반기 20년 동안에 이스라엘 11지파에게 과도한 세금과 부역을 요구한 사례에서 충분하게 알 수가 있다.

그 때문에 솔로몬왕이 죽고 나자 그의 아들인 40세의 르호보암이 왕이 되지만 그 이듬해에 이스라엘 11지파가 에브라임 출신의 영웅 여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고 세겜에서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건설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정당한 권리의 주장이므로 북조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는 다윗왕조의 르호보암왕을 여호와께서 말리신다(왕상12:24). 그 결과 이스라엘제국은 남조 유다왕국과 북조 이스라엘왕국으로 갈라지고 제국의 위력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당장은 다윗왕이 권토중래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면서 백성들에 대한 선무작업을 어떻게 추진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 점이 관심거리이다.

그런데 다윗왕의 생각과 행동이 별로 달라지지 아니하고 역시 편파적이기에 결국에는 그 선무의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확하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삼하20:1-3)

잠시 생각해보면, 압살롬의 반란은 그 시작이 유다지파의 땅인 헤브론이며 그를 지지한 세력이 대부분 유다지파의 백성들이다. 그런데 그 유대사람들이 어째서 다시 다윗왕을 모시는 중심세력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압살롬이라고 하는 대안이 사라져버렸으므로 차선책으로 유다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왕을 다시 자신들의 왕으로 모신 것이다

그것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 이스라엘 11지파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제국의 중심세력은 어디까지나 유다지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다지파의 장로들이 다시 다윗을 왕으로 모시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11지파는 다시 제국의 들러리가 되고 각종 이권에서 배제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스라엘 11지파의 장로들은 다른 대안이 있다고 하면 다윗왕을 버리고 언제나 그 대안을 따르고자 한다. 그들이 찾고 있는 대안으로 베냐민 지파의 걸물 세바가 떠오르고 있다. 다윗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세바는 무력을 행사하는 유명한 왈패이며 그 입이 거칠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에게 쫓겨났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환궁하고 있는 다윗은 왕의 자격이 없다. 자기 아들도 하나 다스릴 수 없는 위인을 우리가 왕으로 계속 모실 필요는 없다. 그리고… “.

세바의 주장 가운데 기록으로 남은 것이 두가지나 된다; “둘째, 다윗이 제국을 건설했다고는 하지만 유다지파보다는 우리 이스라엘 11지파가 더 큰 희생을 치루었다. 그런데 정작 제국의 운영에 있어서는 우리 이스라엘 11지파가 욍따가 되고 있다”(삼하19:43).

세바가 나팔을 불면서 다윗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셋째, 실제로 다윗왕이 우리 이스라엘 11지파에게 준 전리품이 없다. 그렇게 친 유대적이고 우리에게 야박한 자를 우리가 계속 왕으로 섬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를 버리고 우리들은 각자 자신들의 지파로 돌아가도록 하자”(삼하20:1);

 

그렇다면, 다윗은 어째서 다시 유대지파를 의지하여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윗이 자신에게 익숙한 친족과 자기 지파를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지파를 믿고서 정복전쟁을 수행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른 지파보다는 유다지파가 더욱 개방적이고 관용성이 큰 지파이다. 하지만 제국의 운영에 있어서는 그러하지가 못하다. 자신들이 지배세력이고 기타 지파들은 피지배세력이라고 하는 이상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윗역시 그러한 유다 중심의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다윗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것이다. 다윗이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의 구원문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씀하신다(삼하12:13).

그렇지만 다윗이 충신 우리야를 모살하고 부하의 아내 밧세바를 은밀하게 만나서 간통하고 그 다음에는 과부가 된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밧세바와 5년간 살면서 아들을 넷이나 낳고 있다. 첫째는 영아로 죽었으며 넷째가 다윗왕이 50세에 낳은 아들 솔로몬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밧세바를 볼 때마다 자신이 음모로 죽인 충신 우리야의 생각이 날 것이다. 그래서 밧세바가 아무리 매력적인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품에 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인생의 낙을 즐기고 있다.

자칭 여호와 앞에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고 하는 다윗왕의 행태가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 아직도 왕자무치의 사상에 젖어 있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에 입각하여 생각하여 볼 때에 비로소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1지파가 어째서 불량배인 베냐민 지파의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고 있는지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진다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하겠다(삼하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