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제3과(2:1-21)(손진길 작성)
|OBS26-3|
Q1.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아니한 이유는 무엇인가?
l 복음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임(2:3-5)
l 할례라고 하는 것은 본래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준 축복의 언약을 보증하는 육체적 징표였음(창17:4-14, 23-27). 구체적으로 그 축복의 언약 내용이 ①자손의 번성과 왕들의 탄생 ②대대로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심 ④가나안 온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줄 것임 ④자손은 물론 이방인 종까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위의 언약이 계속 발효된다는 것 등임(창17:6-12). 그런데 그 내용이 복음의 내용을 침범하고 있는 것으로 바울이 생각하고 있기에 그 멍에를 풀어 주기 위해서 헬라인 디도에게 고의적으로 할례를 행하지 아니했다는 것임. 즉 유대인 관습을 따르지 아니함으로써 디도에게 새 언약으로 말미암는 자유를 주었다는 뜻인 것임.
l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야훼 하나님께서 과거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새 언약과의 차이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임. 과거 언약이 주로 ①자손의 번성 ②땅의 차지 ③자신들만의 하나님 독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면 새 언약은 ①믿음의 자손의 생산(마28:20) ②하나님 나라의 건설(마28:18, 행1:8) ③만민 구원의 하나님 선언에(마28:19) 주안점을 두고 있음. 따라서 유대인들의 할례는 이 땅에서의 축복과 선민사상에 대한 보증수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반면에 새 언약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만민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것임.
l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유대교 식의 세상 축복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부활 승천과 영생의 믿음을 견지하고 평생 동안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할 것인가를 결심해야 할 중차대한 시간이 기독교 내 헬라파 유대인의(행6:1) 리더였던 사도 바울에게 다가오고 있었음. 바로 그 때에 바울은 그의 제자 격인 헬라 인 디도에게(고후8:23) 임의로 할례를 베풀지 아니함으로써 새 언약에 충실한 새 시대가 이미 왔음을 온 예루살렘에 알린 것임(2:3-5).
l 요컨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대속의 십자가로 구원의 감격을 맛보고 있는데 어찌하여 과거의 선민 의식에 다시 사로잡혀서 땅의 축복과 특정 집단의 독점적 이익 향유에 집착하고 있는가? 그렇게 그리스도 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구속당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는 뜻인 것임(요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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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신한지 14년 후인 AD 49년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 때의 주요 안건은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중시하고 있는 율법과 할례를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생략하고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음(2:1, 4-5, 행15:1-21). 그 때 바울과 바나바는 유력한 자들에게 사전 로비를 하고 있는데(2:2, 6-9) 그 대상은 누구이며 어떠한 효과가 있었는가?
l 겉으로 보기에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여 유력한 자로 간주하고 바울 일행이 로비를 한 것이 아님(2:6). 바울은 많은 기도를 하고서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 교회로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그가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을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협조해줄 수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을 개인적으로 먼저 만난 것임(2:1-2).
l 사도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장로 야고보를 만나서(2:9)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그리스도 복음의 내용과 이에 반대하고 있는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의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일일이 설명한 것임. 그 결과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 노선을 전폭 지지한다는 고무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음.
l 그들은 첫째로, 율법이나 할례를 의무 사항으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요구하지 아니하겠다고 했으며(2:6) 둘째로,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 사도로 인정하여 주었고(2:7-9) 셋째로, 로마 황제와 유대인들의 기독교 탄압으로 말미암아 현재 빈민구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여 가난에 직면해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에서 경제적 지원을 계속 해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음(2:10a). 이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지속적으로 이 일을 계속 수행할 것임을 약조한 것임(2:1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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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야 말로 비단 예루살렘 총회에서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중시하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도 베드로까지 책망할 정도로 권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2:11-14) 그 자초지종은 어떠한 것인가?
l 게바(‘반석’을 말함, 요1:42, 마16:18)로 불리는 사도 베드로가 바울이 담임하고 있었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였음(2:11). 그리고 그곳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음. 그런데 마침 장로 야고보가 총회장으로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유대인 성도들이 그 곁으로 오자 그만 식사를 그만 두고 피신해 버린 것임(2:12). 그러자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던 다른 유대인 성도들도 베드로처럼 몸을 피해버린 것임(2:13).
l “유대인들은 선민이므로 이방인들과 교제하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부정을 탄다”(요4:9, 행10:28, 창43:32, 애굽 인들도 그와 같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음)는 율법적 사고방식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온 본토 유대인 성도들로부터 지적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식사 도중에 베드로와 그 일행들이 모두 자리를 피해버린 것임. 이에 대하여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저버리고 율법주의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베드로 일행을 야단친 것임.
l 바울이 이와 같이 감히 열두 사도의 수장인 베드로에게까지 야단을 칠 수 있었던 것은 그 권위의 출처가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임(막7:18-23, 행10:14-15).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야단을 치신 것처럼 바울도 “베드로의 외식”을 문제 삼고서 그를 질책하고 있는 것임(2:13). 즉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동하지 아니하고 외식하고 있다는 것임(2:14).
l 이방인 성도 앞에서는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유대인 율법주의 성도들 앞에서는 또 유대인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베드로 일행은 그와 같이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복음의 진리도 지키고 동시에 율법적인 사고방식도 지키라고 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날카로운 지적인 것임(2:13-14). 본질적으로 종교는 하나의 선택인 것이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선택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닌 것임.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하면 양쪽 모두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거짓 충성이라는 외식의 비난 만을 양쪽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임. 비근한 예로 이태리 뭇소리니 정권이 노사 양쪽에서 “파쇼 정권”으로 맹비난을 받아 몰락한 경우가 이에 속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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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그리스도의 복음은 선민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별이 없이 똑 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그 점을 바울은 여기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l 본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의인이요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유대인 선민사상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음(2:15).
l 그런데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게 되자 그 복음의 진리성에 입각하여 율법을 재조명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임; ①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②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③그러므로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④율법으로 의인이 되지 못하므로 유대인들도 선민사상을 버리고 이방인과 똑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야만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⑤결국 율법 안에서 선민과 이방인이 차별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는 차별이 없고 똑 같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2:16).
l 하지만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은 초대 교회 내에서 새로운 선민 사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하여 바울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음; ①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의인이 되었는데 다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시 죄인이 되는 것이다(2:17a). ②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죄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2:17b). 그러므로 스스로 교만하여 짓는 것이다. ③복음으로 율법을 대체하였는데 다시 옛 것을 복구하게 되면 스스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2:18). ④이와 같은 선민 사상에 다시 빠져들게 되면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무효화시키는 범죄 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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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이와 같은 지독한 육체적인 소욕인 선민 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사도 바울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l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바울이 말하고 있음(2:20). 이것이 이른 바 믿음 생활이며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 있는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임(2:19).
l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은 ①그리스도처럼 사는 인생인데 ②만민 구원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삶이며(2:20) ③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준다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인생이며(2:20, 롬8:14, 19, 계21:7) ④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2:16) 율법에 기초한 선민 사상을 버리는 인생살이인 것임(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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