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스기야(손진길 작성)

소설 히스기야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3. 21. 20:14


소설 히스기야6(작성자; 손진길)

 

주전 700년 초여름 유다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을 지키기 위하여 앗수르의 군사령관 다르단 추다르단 불이 지휘하고 있는 20만 대군과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때 불행하게도 유다 성내와 성밖에서 전염병이 창궐한다. 악성 종기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출애굽 당시 애굽제국에 임한 6번째의 재앙인 악성 종기가 740여년이 지나자 다시 예루살렘성 일대에서 발생한 것이다(9:9-10). 따라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대군 20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악성 종기의 발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내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이 악성 종기의 발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 가운데 히스기야왕과 왕족인 아히멜렉이 있다. 특히 히스기야왕의 등에 난 악성 종기는 심각한 상태이다. 왕의 몸에 칼을 댈 수가 없으므로 그 병에 걸리면 죽기 십상이다.

한달만에 히스기야왕의 등창이 너무 커져서 40세의 장년인 왕이 식은 땀을 흘리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데 날씨가 자꾸만 더워져서 땀이 나니 히스기야왕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질병으로 고생하던 사촌동생 아히멜렉이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는 부고가 날아들고 있다.

유다왕국의 주인인 히스기야왕이 죽게 되었으므로 중신들은 후사를 걱정하고 있다. 히스기야왕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대신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은밀하게 히스기야왕의 동생인 브에리엘가나 가운데 한사람을 차기왕으로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논의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히스기야왕의 부친인 아하스왕에게는 아들이 5명이나 있다. 장남이 히스기야 왕자이고 차남이 마아세야 왕자이며 삼남이 엘라 왕자이고 사남이 브에리 왕자이며 오남이 엘가나 왕자이다. 그런데 주전 735년 북조 이스라엘의 군대가 남침을 했을 때에 그만 둘째 왕자인 마아세야가 죽임을 당하고 만다(대하28:7).

당시 4살에 불과한 차남이 살해를 당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아하스왕은 우상의 힘을 빌려서라도 기필코 이스라엘왕국의 침략군을 물리치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성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2살짜리 어린 왕자 엘라를 인신제물로 바치고 만 것이다(왕하16:3).

그 다음해에 아람왕국이스라엘왕국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다시 쳐들어오자 그때에는 유다왕 아하스앗수르제국에게 원군을 요청한다(왕하16:7-9). 그러나 주전 733년에 아람왕국을 정복한 앗수르의 군대가 계속 남침할 기세를 보이자 아하스왕은 주전 728년에 13세가 되어가는 세자 히스기야에게 일단 양위한다. 그리고 상왕이 되어 국정을 요리한 것이다.

그렇게 보신책에 급급한 부왕 아하스가 별세하고 나자 주전 715년부터 히스기야왕이 기를 펴고서 자신의 친정을 실시한다. 그것이 전국적으로 우상을 철폐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며 유월절을 다시 실시한 것이다. 그 때문에 히스기야왕은 유다왕국의 3대 성군으로 한때는 칭송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주전 701년에 앗수르 산헤립왕이 대군을 몰고서 침입하자 그는 여호와신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만다.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한다. 그 대신에 애굽에 원군을 청하는 사신을 보내는 한편 앗수르의 왕에게 금은을 주고서 철군을 요청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러한 히스기야왕이기에 악성 종기가 예루살렘 일원에서 발병하자 그 자신 등창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신들이 이제는 은밀하게 후사를 위하여 히스기야왕의 아우인 브에리엘가나 가운데 누가 더 좋은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와 같은 첩보를 병상의 히스기야왕이 충신인 궁내대신 엘리야김을 통하여 전해 듣고 있다. 엘리야김의 진언이 다음과 같다; “전하, 빨리 쾌차하셔야 합니다. 전하가 아니시면 왕도인 예루살렘성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아무 경험이 없는 아우분이 신왕으로 등극한다고 하면 도저히 왕국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때에는 다윗왕조가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히스기야왕이 아픈 몸을 겨우 가누어 병상에 앉아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경의 생각에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나의 병은 사람의 재주로는 이미 고칠 수가 없어요, 창조주 여호와의 은총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궁내대신 엘리야김은 히스기야왕이 왕자였을 때에 그의 사부이다. 그러므로 왕이 자신의 속내를 그에게는 털어놓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자 엘리야김이 말한다; “전하, 이제는 선지자 이사야를 불러서 기도를 부탁하고 치유를 약속하는 여호와의 신탁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을 불러서 속죄제를 당부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히스기야왕의 눈에서 생기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부, 감사합니다. 저는 사부의 말씀대로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나를 대신하여 대제사장과 선지자 이사야에게 그렇게 부탁해주십시오. 저는 여기 병상에서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히스기야왕이 신기하게도 죽음의 문턱에서 살길을 발견하고 있다.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그가 새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을 방문한 궁내대신 엘리야김으로부터 국왕 히스기야의 당부의 말을 듣자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다; “여보게 친구, 자네가 국왕 옆에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야. 그 덕분에 아직은 지상 마지막 제사장나라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지는 아니하고 이 어려운 국면에서 구원을 얻겠구만.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야… “.

개인적으로 궁내대신 엘리야김은 선지자 이사야와 절친이다. 나이도 금년에 동갑인 61세이다. 그들은 20대에 예루살렘에서 한사람은 선지자로 그리고 한사람은 서기관으로 서로 만나서 벗이 된 사이이다. 40년 가까운 친분이 있으니 그 우정이 각별하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자기도 모르게 그만 미래지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엘리야김이 정색을 하고서 이사야에게 묻는다; “자네 벌써 여호와께 기도를 한 모양이군. 그래서 그러한 좋은 신탁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구만. 그런데 훗날이 걱정이라고 하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 “.

그러자 선지자 이사야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내가 실언을 했구만. 자네는 그 말을 못들은 것으로 하게. 그리고 국왕 옆에서 많은 격려를 해주게나. 국난을 당하여 국왕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 아니겠나?... 내가 더욱 구체적인 신탁을 얻게 되면 그때 자네를 방문하겠네… “.

하지만 궁궐로 돌아가면서 엘리야김은 선지자 이사야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곰곰 생각하고 있다.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장래가 바로 명문가인 자신의 가문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주 벗 이사야를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을 귀기울여 들으라고 당부하고자 한다.

한편, 병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히스기야왕이 구구절절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기도로 아뢰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선지자 이사야의 기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 히스기야왕은 자신이 의인으로서 행한 종교개혁을 감안하여 부디 목숨을 살려 주시고 왕국도 보전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히스기야왕과 달리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이 창조주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한갓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하고 있다. 피조물에 불과한 자신을 여호와의 선지자로 불러서 사용하고 계시니 종의 잔이 차고 넘친다고 하는 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기본인식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자신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이 제사장나라 유다왕국의 왕인 히스기야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자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비극이다. 왜냐하면 신하들과 백성들의 신앙수준이 히스기야왕의 경우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여호와 앞에서 대단한 종이며 큰 일을 행했다고 자랑하고 있다고 하면 죄인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의 은혜가 그러한 자에게 임할 수가 없다. 훗날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사회에 오게 되면 그가 자칭 율법선생이며 의인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의 행태를 엄청 질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나중에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히스기야왕에게 전달할 때에 한가지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그것이 여호와의 이름과 다윗왕의 이름을 위하여 다윗의 성을 구원하여 주겠다는 것이다(왕하19:34).

다윗의 일생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이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첫째로, 두번이나 자신을 추격하고 있는 사울왕을 암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그것을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자신의 주인인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종으로 삼은 자를 주인의 허락없이 결코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울왕을 암살하고 편하게 왕국을 얻는 것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처분을 믿음으로 기다린 것이다. 그 결과 다윗의 믿음을 마음에 들어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작은 이스라엘왕국을 다윗왕이 이스라엘제국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둘째로, 제국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다윗왕이 그만 교만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군사령관인 조카 요압 장군에게 암몬의 도성 랍바를 치도록 조치하고서 그는 편하게 왕궁에서 인생을 즐기고자 한다.

그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게 되고 마침내 충신 우리야를 흉계로 죽이고 만다. 그 사실을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질책하자 다윗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한다. 그는 자신이 죄악을 범한 죄인이며 여호와의 은총이 아니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속죄하는 삶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다윗왕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고백과 결심을 지킨다. 그것을 귀하게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성을 히스기야 시대에도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믿음의 정수를 다윗의 후손 히스기야가 미처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병상기도가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20:3).

그러한 기도를 하면서 의인사상에 젖은 히스기야왕이 스스로 억울하다고 통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한번의 살길을 열어 주신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왕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만 하는가?

자신이 여호와 앞에서는 죄인이며 자랑할 것이 없는 종이라는 사실을 그는 과연 깨닫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자랑만 하고서 현세적인 여호와의 축복만 즐기다가 생을 마치고 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