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스기야(손진길 작성)

소설 히스기야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3. 24. 08:12


소설 히스기야8(작성자; 손진길)

 

라기스 요새를 점령하기 위하여 앗수르의 황제인 산헤립이 전력투구한다. 그는 일년 동안이나 16만명의 대군에게 한손에는 무기를 들고 나머지 한손에는 건설장비를 쥐고서 적을 방어하는 한편 토성을 쌓도록 독려한다.

그 결과 천하의 요새지인 라기스성이라는 절벽 옆에 또 하나의 라기스성이 완공이 된다. 그것은 자연적인 요새가 아니라 인공적인 요새이다. 그 높은 곳에서 산헤립왕은 같은 눈높이에 있는 삼손 성주의 라기스성을 바라본다.

강궁으로 화살을 쏘면 닿을 것만 같은 저편에 유다왕국이 자랑하는 철옹성 라기스 요새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남서쪽에는 산헤립왕이 쌓아 올린 또 하나의 라기스성이 존재하고 있다.

산헤립왕의 라기스성만 하더라도 그 높이가 260미터나 된다. 일년동안 토성을 쌓는 일에 매어 달렸더니 처음 유다왕국을 침입한지 3년이 지나 벌써 주전 699년이 되어 있다.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그래서 산헤립왕은 하나의 기념물을 그곳에 남기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토성위에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유다의 라기스성과 비교하여 별로 손색이 없는 작은 도시이다. 그곳에는 황제가 거처할 수 있는 왕궁도 마련했다. 그리고 군사들과 성읍을 보호할 수 있는 성곽도 지었다.

그 일을 완공한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은 도면을 그리도록 하고 그것을 니느웨로 가지고가서 부조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앗수르의 유물을 찾아오면 그들이 산헤립왕의 라기스 요새라고 부르고 있는 그 토성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옛날의 도면에서 볼 수 있는 그 토성을 오늘날 라기스 일대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전쟁이 끝나고 산헤립왕이 도망치고 나자 유다왕국에서 산헤립왕이 쌓은 그 토성을 전부 허물어버리고 말았기 대문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돌이 많은 라기스의 절벽에 난데없이 흙이 많이 쌓여 있는 완만한 비탈을 남서면에서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사람들이 흙이 많은 그곳 완만한 경사면을 개간하여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라기스 요새에서의 혈투로 히스기야왕 때의 그 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삼손 성주가 죽기 살기로 라기스성을 방어한다고 해도 왕도인 예루살렘성이 앗수르 원정군에 의하여 정복을 당하고 히스기야왕이 잡히게 되면 다윗왕조 유다왕국은 끝장이 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왕의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성을 3년간 포위하고서 성안 백성을 전부 굶겨 죽이려고 하는 산헤립왕의 앗수르 군대를 모두 물리쳐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은 히스기야왕이나 그의 군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선 군대의 규모에 있어서 앗수르가 두배나 되기 때문이다.

비록 예루살렘성에 거주하는 주민이 10만명이고 정예병과 예비군을 합하여 10만명에 가까운 방어병력이 집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산헤립왕이 파송한 군대의 병사는 20만명이나 된다. 공격군이 수비병에 비하여 2배에 불과하다고 하면 사실 방어만 하는 적의 성을 차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성을 포위하고 양식과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만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결국 성문을 열고 성안의 군대가 들판으로 나와서 마지막 승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왕이 버티고 있는 동안에 기적이 발생해야만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 변수가 몇가지 있다;

첫째로, 지방에서 유다왕국의 군대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성을 구하고자 달려오는 경우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앗수르의 군대가 벌써 유다왕국의 지방 성읍의 대부분을 초토화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서에서는 그 성읍의 수를 46개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로, 애굽제국에서 바로가 다시 구원군을 보내어주는 경우이다. 그러나 주전 701년 가을에 바로가 자신의 아우인 구스왕 디르하가를 보내어 10만명의 대군으로 유다왕국을 도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라고 벌써 조치했지만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다(왕하19:8-9).

양편산지에 매복한 산헤립왕의 군대에 의하여 립나계곡을 통과하던 애굽의 군사가 무려 7만명이나 희생되고 말았다. 이제는 애굽의 황제인 바로도 추가로 파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이다.

셋째로, 전염병이 크게 발생하는 경우이다. 앗수르 군사들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모두 죽게 되면 자연히 예루살렘성의 포위가 완전히 풀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평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앗수르 진영에만 전염병을 발생시키지는 아니하신다. 똑같이 우상을 섬긴 예루살렘성의 히스기야왕과 그의 신민들도 동시에 처벌을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사는 발생할 수가 없다.

넷째로, 하나의 방법이 더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발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대를 전멸시켜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사상 유례가 없는 그러한 특혜가 과연 히스기야의 다윗왕조에서 발생할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언뜻 여호와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는 그 일에 대해서는 좀더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만약 예루살렘 성안에서 양식과 물이 떨어진다고 하면 히스기야왕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앗수르 군대의 지휘관인 2명의 다르단이 열심히 그 샘의 근원과 수로를 찾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으로 올라가는 비탈의 끝자락에서 기혼샘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샘물을 성안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수로를 전부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사전에 히스기야왕이 전쟁에 대비하여 지하수로를 뚫어 놓았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바위굴을 파서 기드론골짜기에서 솟아나는 기혼샘물을 왕성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 공법이 현대기술로 보아도 너무나 대단한 것이어서 사람들이 경탄한다. 양쪽에서 동시에 바위굴을 뚫는 지하공사를 시작하여 533미터의 중간지점에서 서로 만나도록 하는 공법이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지하수로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수십 미터 아래의 물을 어떻게 수압을 걸어서 예루살렘 성안으로 솟아나오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것이다.

사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적으로 하여금 자연적인 기혼샘물의 흐름을 전부 막아버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적들이 그러한 행패를 부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의 외성 바깥에 의도적으로 기혼샘물의 지상수로를 노출시키고 있다. 그것은 적을 속이기 위한 놀라운 기만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산지의 중간에서 발견되는 기혼샘물이 성내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앗수르군대는 열심히 지상의 자연수로를 막아버린다. 그리고 이제는 예루살렘 성내의 주민들이 물이 없어서 항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결과가 발생한다. 지상으로 분출이 되지 못하는 기혼샘물은 그 샘솟는 힘으로 이제는 지하수로를 타고서 성안으로 유입이 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샘물의 줄기가 마치 옛날 사람들의 우물물과 같아서 자꾸만 차 올라 히스기야왕이 따로 마련한 성안의 저수조에 가득 차게 된다. 그 물을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안의 백성들이 갈증을 면하고 끝까지 연명한 것이다.   

이제는 라기스요새의 이야기를 더 해야 할 차례이다. 산헤립왕이 오기로 토성을 계속 쌓고는 있지만 삼손 성주의 유다병사로 말미암아 엄청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성주 삼손이 기병대를 내보내어 수시로 앗수르 보병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우물물을 차단하기 위하여 산헤립왕이 군사를 보냈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왕국이 자랑하는 기병대가 잇대 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8군단이다. 무려 24천명의 기마병이 삼손성주의 명령에 따라 라기스 요새에서 출병하여 비탈길을 타고 내려와서 앗수르 군대를 들이친다.

처음에는 토성에서 공사하고 있던 앗수르의 보병들이 엄청 희생되었다. 그것을 보고서 산헤립왕이 자신의 기마대로 하여금 토성의 주위를 지키도록 했다. 그 결과 앗수르의 2만명의 기병들이 공사에 동원되지를 못하고 순찰만 돌고 있다.

그렇게 삼손 성주는 영리하게도 토성의 건설을 지체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그도 한가지 큰 고민이 있다. 요새 안에는 군량미와 백성들의 양식은 충분히 저장이 되어 있는데 저수조의 물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라기스 요새의 주변에는 샘물과 우물물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들판의 물을 길어오는 것이 어렵다. 앗수르의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손 성주가 비상수단을 동원한다.

그 방법은 자신의 아들 브나야 천부장을 대장으로 하는 1,000명의 결사대를 파송하여 우물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업은 목숨이 걸려있는 위험한 도박과 같다. 어떻게 1,000명의 결사대가 16만명이나 되는 앗수르의 군사를 막고서 그 물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일까?

삼손 성주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서 그러한 전략을 펴고 있는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 옛날 전장의 신으로 불린 여분네의 아들 갈렙 장군의 상승무예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주전 15세기말 갈렙 장군의 직전 제자가 6명이나 된다; 가람 장군, 아비노 장군, 창기스 장군, 엘라 장군, 살몬 장군, 옷니엘 사사이다. 그들의 비기가 두 줄기로 흘러오고 있다; 하나가 살몬에 의하여 이새의 아들들에게 전수가 된다. 또 하나는, 아비노에 의하여 그의 가문에 전수가 된다.

역사적으로 이새의 삼남 삼마의 장자인 요나단이 가문의 비기를 익혀서 블레셋의 거인용사를 죽이는 등 다윗왕을 돕는 용장이 되고 있다(삼하21:21). 지금은 그 후손인 군부대신 엘리사마가 그 비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제자 가운데 라기스 요새를 지키는 수비대장 후새와 기마대장 잇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아비노의 자손인 아디노가 집안의 비기를 익혀서 다윗시대의 최고의 용장이 된다(삼하23:8). 지금 히스기야 시대에 있어서는 라기스 성주인 삼손 장군이 그 비기를 익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라기스성을 지키는 예비군 사령관 아비새와 자신의 아들이며 천부장인 브니엘이다.

그러한 상승무예의 전수상황을 참조하면 라기스 요새를 지키고 있는 장군들이야 말로 다윗왕조 유다왕국에 있어서는 최정예들이다. 그러한 내부사정을 전혀 모르고 산헤립왕이 앗수르군대의 선진무기체계와 숫자로만 밀어붙이고 있으니 그것이 딱한 노릇인 것이다.

무기의 우열과 군사의 수를 뛰어넘어서 그들은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그 앞길을 앗수르의 기마병조차 감히 막아 설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판의 우물을 지키는 한편 앗수르 군사들이 토성을 쌓는 일을 계속 방해하고 있으니 산헤립왕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앞날이 과연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