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복음 제 48과(19:17-30)(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0. 14. 09:54

요한복음 제 48(19:17-30)(손진길 작성)

|OBS20-48|

 

Q1.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과 운명의 순간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여 ①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골짜기 언덕위에 다다라 그 곳에서 못 박히셨다(19:17-18) ②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로 각각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힌 패가 있었고 좌우편에는 두 사람이 또한 못 박혔다(19:18-20) ③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정정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19:21-22) ④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 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서로 차지해 버렸다(19:23-24) ⑤ 예수님은 십자가 곁에 까지 따라온 친척들을 보시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종 동생이며 막내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신 후 운명하셨다(19:25-30) ⑥ 그리고 운명 직전에 의미심장한 네 마디의 말을 부르짖으신 것으로 기록되어지고 있는 것임(19:26-30). 그러면 우선 십자가, 해골 골짜기, 못 박히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Ø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요소들이 여기에 집합되어 있는 것임.

Ø  첫째로, 십자가 처형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팔과 다리에 대못을 박아버림으로써 피가 서서히 누출되어 말 그대로 피가 마르는 죽음을 맛보게 하며 동시에 온몸의 체중을 대못 세 개로 지탱시켜버림으로써 숨이 막히는 고통을 죽는 순간까지 맛보게 하는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인 것임. 따라서 로마인에게는 절대 사용금지된 이 극형을 로마 제국의 반역자로 낙인 찍힌 자들에게 국한하여 시행토록 한 것인데 이와 같은 최대한의 고통을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서 감당하셨다는 것임.

Ø  둘째로, 인간이 죽는 순간까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인데 ① 두뇌 ② 심장 ② 피돌기인 것임. 왜냐하면 피가 빠져나가게 되면 심장이 멈추게 되고 이에 따라 두뇌 활동이 중지됨으로써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정보가 의식적으로 사라져버리게 되기 때문인 것임.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모든 존재론적 관계성을 상실해버린다는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임.

Ø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이 두려워하는 그것을 주님이 감당하셨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이와 같은 극심한 고통이 찾아 올 때에는 멍에를 함께 매신 주님이 먼저 큰 몫을 담당하여 주실 것이며 주님의 제자는 작은 몫을 담당하도록 보호해주시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임(16:7, 11:28-3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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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자신들의 유대교와 민족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넘겨준 결과 대제사장과 유대교 지도자들이 상실하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Ø  유대인의 왕이 로마 반역자 두 사람과 함께 동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로마 총독에 의하여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됨으로써 이 사실이 전 세계에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로 동시에 공포되어버린 것임.

Ø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그들이 지키고자 한 혈통과 선민 사상, 그리고 시오니즘 등이 오히려 국제적으로 역사적 고립과 후회에 직면하게 된 것임.

Ø  뒤늦게 이와 같은 실수를 깨달은 대제사장들이 빌라도 총독의 정치적 음모를 눈치 채고서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정정 요구에 나섰으나 이를 로마 총독이 허락해줄 이유가 없었던 것임. 왜냐 하면,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몰아 부쳐서 로마 제국의 반역자이므로 부디 처형해 달라고 요청한 사안에 대하여(19:12-15) 빌라도가 그대로 처리해 버림으로써 유대인들이 말한 바와 같이 이제는 유대인의 왕이 사라지고 오로지 로마 황제만이 유대인을 통치한다(19:15) 정치적 명분이 보다 확실해지기 때문인 것임. 빌라도에게는 이와 같이 생생한 정치적 이익을 대제사장의 정정 요구에 따라 희석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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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으로 로마인들이 얻게된 또 다른 이익은 어떻게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Ø  다윗의 뒤를 이은 메시야를(2:1-8, 유대인의 왕) 유대교 지도자들의 소원대로 십자가 처형시켜 줌으로써 이제는 유대인들의 왕은 로마 황제 뿐임을 확실히 했을 뿐 아니라(19:15, 19-22) 상징적으로 유대인의 왕의 재물을 그 겉옷 뿐 아니라 속옷까지 모두 로마인들이 차지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임(19:23-24).

Ø  이는 역사적으로 유다 왕국의 재물을, 그들의 진짜 왕인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까지 바쳐진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가져가 버린 바벨론의 횡포가 재현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왕하2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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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죽음이 임박하자 예수님이 그의 모친 마리아를 친 동생이 아닌 이종 동생인 요한에게 부탁하신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가?

 

Ø  마침 예수님의 처형대 근처에 남자 친척으로는 유일하게 사도 요한이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손쉽게 풀이해 볼 수도 있으나 그래도 그 이유는 석연치 아니함. 왜냐 하면, 어머니를 친동생인 야고보나 유다에게(6:3) 잘 부탁한다는 전언을 요한으로 하여금 전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인 것임.

Ø  그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은 의미 해석이 가능해짐: 첫째로, 예수님은 그의 죽음으로 인간의 혈통이나 인간적인 가족 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1:13) 둘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혈통이나 친척 관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경속에는 ① 가급적이면 가까운 친척인 이웃을 먼저 돌보며(19:26-27, 2:1, 4:9-22) ② 이방 사도인 바울조차 자신의 동족 사랑이 넘쳐 흐르고 있고(11:11-15, 24-36, 16:7,11,21) ⑥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과 열두 사도의 이름이 나란히 나타난다고 까지 예언하고 있는 것임(21:12-14).

Ø  요컨대, 하나님의 뜻은 만민 구원의 뜻과 이웃 사랑이 결코 동족 사랑을 외면하지 아니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친척과 동족의 구원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 하나님이 그 일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처리해 주신다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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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육체적인 그리고 혈통적인 한계속에 갇혀 있던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새로운 역사적인 발전을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이루어 나간다는 대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주님의 마지막 세 마디는 무엇인가?

 

Ø  그 세 마디는 ① 보라 네 어머니라(19:27) ② 내가 목마르다(19:28) ③ 다 이루었다(19:30) 등인 것임.

Ø  첫째로, “보라 네 어머니라는 말속에는 나의 어머니가 너의 어머니도 된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관계성이 담겨있는 것임. 따라서 다른 족속의 어머니까지 나의 어머니로 대접해주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예수님의 유언을 통하여 인류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임.

Ø  둘째로, 새 시대를 갈구하는 마지막 육체적 고통과 외침의 소리가 내가 목마르다!”는 절규속에 숨어 있는 것임. 이 육체적인 옷을 벗고 저 높은 하나님의 진리와 자유를 이 땅위에 새로이 구축하고 실현하고 싶은 마음은 부활의 그 날을 꿈꾸게 되는 것임(2:28, 8:21).

Ø  셋째로, 다 이루었다!는 뜻은 그 간절한 만민 구원의 바람마저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다 맡기었다는 뜻임. 이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것으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임(42:5-6,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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