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복음 제 47과(19:2-16)(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0. 13. 17:53

요한복음 제 47(19:2-16)(손진길 작성)

|OBS20-47|

 

Q1. 빌라도는 왜 예수를 살려주려고 애쓰고 있으며(18:38, 19:4,6,12)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은(18:40, 19:6,12,15, 22:66, 23:25) 왜 그토록 예수를 죽여 버리려고 애쓰고 있는가?

 

Ø  빌라도 총독은 예수가 로마 제국을 위협하는 통치 차원의 위협 요인이 되지 않음을 인지하였으며(18:36-38) 오히려 예수를 살려 줌으로써 유대교도들과 유대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슴을 알아 채고 있었던 것임.

Ø  유대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통치해야하는 빌라도 총독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종교적 갈등, 특히 전통적인 시오니즘과 예수의 복음적인 만민구원사상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대립은 식민지 분열 정책(divide and rule)에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슴. 그 값어치는 당시 반란 세력의 괴수였던 바라바를(23:19) 방면해주어도 아깝지 아니할 정도로 판단되어졌던 것임(18:39-40).

Ø  반면에 유대인 사회의 국론 분열을 두려워했던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유대교와 유대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예수를 어떠한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전격적으로 그것도 로마 총독의 결정에 위탁하여 로마인의 손으로 죽여 버려야만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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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까지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이 지키고자 애쓴 유대교와 유대 민족주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Ø  유대교는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이 그 이름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셨으며(왕상9:3)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영원히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누리게 된다는(왕상9:4-5, 28:1-14) 종교적 하나님 독점주의였던 것임.

Ø  여기에서 비롯된 유대인들의 사상인 시오니즘(Zionism)① 하나님과의 계약의 표시인 할례와 율법만 지키면 유대인들은 선민이 되고(15:1-5) ② 선민인 유대인은 모든 민족을 굴복시키고 그들을 시온 산의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릴 수 있는(11:10-12:6, 66:20-24) 특권과 특혜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임. 요컨대,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대대로 이어오는(12:17,24) 민족 우월주의이며 이방인들을 차별하면서 자신들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삐뚤어진 구원 독점주의 사상이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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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무엇인가?

 

Ø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종교적으로 하나님 독점주의가 아니고 하나님 공평주의였으며(17:20-26, 24:45-48, 9:7, 19:19-25) 선민 유대인만 구원받는 사상이 아니라 만민 가운데 믿는 자를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이른 바 만민구원 사상이었던 것임(3:16, 4:20-26, 28:18-20).

Ø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유대교 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사상적 기반까지 송두리채 무너뜨리는 정반대의 사상이었으며 유대 사회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주범이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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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아기 예수를 죽일려고 노력했던 헤롯 대왕과는 달리(2:1-18) 그 아들인 갈릴리 분봉 왕 헤롯은(14:1-14,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는 AD 4-39년 사이에 갈릴리 지방과 요단 강 동쪽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 왕이었슴) 어찌하여 예수를 직접 처형하지 아니하고(23:6-12) 빌라도 총독에게 되돌려 보냈는가?

 

Ø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임; ① 예수의 사상이(18:11, 26:52) 정치적으로 헤롯 왕가에 대항하거나 위협하는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구태여 예수를 갈릴리 출신이라고 하여 헤롯이 떠맡아서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었던 것임 ② 이두매 출신 왕조인 헤롯 왕가 입장에서는 유대인들 사이의 국론 분열은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제거할 이유가 없었던 것임  ③ 사건 발생 지역이 예루살렘이므로 다시 관할권을 가지는 빌라도 총독에게 이 사건을 넘겨버림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갈릴리 사람들과 로마 총독 사이에 갈등을 조성시키고자 한 것임. 이 경우 갈릴리 지역에서 헤롯 왕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는 반사적 이익이 있었던 것임.

Ø  빌라도 총독은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를 빌미로 하여 그 신변을 마침 유월절 행사에 관심을 표명하고자 헤롯 별궁에 머무르고 있었던 헤롯 분봉 왕에게 얼른 인도해 버렸는데 빌라도의 내심을 눈치 챈 약삭빠른 헤롯이 예수의 관련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로 그 신변을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내는 조치를 취한 것임. 두 사람의 핑퐁 게임을 보면, 그들은 모두 남의 땅인 유대 땅에 뿌리를 내리고서 갈릴리와 유대 땅을 각각 통치하면서 평소 서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한편 예수 재판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정치적 이해 득실을 따지고 군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차원에서 의사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슴. 따라서 그들은 소위 정치 10단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23:12) 그렇지만 한결같이 주님의 말씀을 깊이있게 들여다 볼려고하는 노력이 전혀없는 인물들인지라 영적으로는 캄캄한 사람들이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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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유대교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19:7) 존중해야 하며 유대 민족주의 입장을 생각하더라도 유대인의 왕을(19:15) 석방시켜야 했는데 유대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대신에 바라바를(18:40), 유대인의 왕 대신에 로마 황제의 이름인 가이사를(19:15) 선택해버렸던 것임. 이에 따라 훗 날의 역사 가운데 유대인들의 비극은 어떻게 연출되어지고 있는가?

 

Ø  바라바를 선택함으로써(18:39-40) 무장 투쟁 노선이 부활하여 가까운 장래인 AD69년에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독립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이에 따라 로마의 진압군에 의하여 AD 70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되었을 뿐 아니라(19:41-44)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대 비극이 연출되게 된 것임.

Ø  자신의 땅과 나라를 갖지 못한 채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를 섬기며 이방 땅에서 유리방황하게 되는데 그 세월이 쭉 이어져서 나라없이 무려 1900년이나 지내왔던 것임. 드디어 1948년 세계 제2차 대전 후 팔레스틴 땅에 영미연합국의 협조로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하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슴. 그렇지만 아직도 이스라엘 나라 바깥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유대인 수가 더 많으며 그들의 나라는 교포들의 후원금과 세계 패권국의 보살핌이 없으면 그 안보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흔들리고 마는 신세인 것임.

Ø  더욱 기가 막힌 현실은 유대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해버린 결과 기독교가 유대 땅을 떠나서 이방 땅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임(9:30-33, 11:25). 이 점을 미리 엿보게 해주는 장면이 빌라도의 판결 장면인 것임. 비록 빌라도 총독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 무리들의 시위를 진정시키고자 정치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결정하였지만(19:15-16) 그 본심은 ① 평화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주장하는 예수에 호의적이었으며(18:36-38) ② 하나님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고(19:7-9) ③ 여러 번 예수를 방면해 줄려고 노력하였으며(18:38-40, 19:6, 12) ④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로마 총독인 자신 앞에서도 당당하게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집행되어야 마땅하며 그러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그 죄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19:11) 라고 가르침을 베푸는 예수에게 동의하고 있었던 것임.

Ø  이와 같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로마인들이었기에 훗 날 그들에게 ① 바울의 로마서가 주어지고 ② 그 곳에서 기독교를 국교화하는 정책이 AD 323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틴에 의하여 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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