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15강(창3:12-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0일(화)
하나님의 진단에 따른 처방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3:11)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하여 아담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잘못의 근본원인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질문을 하셨는데 아담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아내의 잘못이라고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그 여자를 자신에게 아내로 데려다가 준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적반하장(賊反荷杖, 도적이 도망을 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인을 도적으로 몰면서 몽둥이를 들고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외로운 처지를 동정하여 하나님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창조하여 아내로 삼아 주었더니 아담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고자 지극히 배은망덕(背恩忘德, 은혜를 배반하고 베푼 덕을 잊어버리는 것)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창2:20-25, 3:12).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그를 돕고 있습니다(창1:26). 그러나 아담은 그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당장의 책임추궁을 면하고자 약은 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목숨 하나 살리겠다고 남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는 육신적인 삶의 특징에 해당합니다. 한 마디로, 아담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유한한 육신적인 삶을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판정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에덴동산의 맛있는 과일을 그냥 따먹을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득세하고 있는 동산 바깥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육신적인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창3:23). 그 결과는 실로 허무합니다(전1:2-4, 3:20). 육신적인 삶의 결과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처참한 말로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공간에서 평생을 지내야만 하는 아담의 운명입니다(창2:7-8, 3:22-24). 그렇다면,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떠한 한 가닥의 구원의 길을 마련해주실 것인가요?
아담의 답변이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로지 그의 아내 하와가 주는 과일을 먹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창3:12). 과연 그러한지 하나님께서 진범을 가려내고자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창3:13a). 하와가 즉시 답변을 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3b). 책임의 소재는 다시 사탄의 화신인 뱀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렇지만 유혹을 받아들인 하와의 책임도 만만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처벌이 임합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 본래 약간의 고통으로 아기를 낳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 고통을 엄청나게 크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남편이 없이는 살 수가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남편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한평생 남편의 종이 되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의 여성의 지위는 사실 그러합니다.
실로 가혹한 처벌입니다. 매우 맛있어 보이고 지혜를 줄만큼 아름다운 선악과 하나를 따먹고 맛이 좋아서 하나를 더 따서 사랑하는 남편에게 주었을 뿐인데 그 처벌이 극히 심한 것입니다(창3:6, 16). 왜 하와가 아담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녀가 먼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창3:5-6).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고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입니다(창2:17, 3:5). 결코 죽지 아니하고 도리어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한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와는 목숨을 걸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자녀를 생산하여 남편에게 바치고 남편의 종으로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안게 된 것입니다(창3:16). 비록 자업자득(自業自得, 스스로의 잘못으로 얻게 되는 처벌)이기는 하지만 아직 진범이 남아 있습니다. 그 진범과 꼬임을 받은 억울한 여자와의 한판 승부가 훗날의 역사 가운데 드라마틱하게 펼쳐질 것입니다(창3:15).
드디어 진범을 추적하시는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사탄의 화신인 뱀에게 처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일일이 질문을 하시고 그 책임의 소재를 추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유독 뱀에게만은 그 행위에 대한 질문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변명의 기회를 주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담과 하와의 답변으로 뱀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하나님이 스스로 존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 가운데 뱀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뱀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주인의 증언을 들었기 때문에 뱀의 변명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뱀의 속에 사탄이 들어가서 역사를 한 결과라는 사실까지 하나님이 이미 파악을 하시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담과 하와의 답변을 듣기 전에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 어떻게 시작이 된 것인지 모두 통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그냥 에덴동산 중앙에 심어두신 것이 아닙니다. 청지기 교육을 받고 있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지를 눈이 따갑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섬기며 아담부부가 종의 법도를 지키고 있는지를 감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를 채점하여 합격여부를 판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청지기교육의 합격자를 가려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합격자는 우주만물의 관리자로 온 세상으로 파송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걸작품인 아담과 하와가 탈락을 하고 있습니다. 분수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감히 피조물인 주제에 스스로 창조주처럼 되고자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그렇게 도를 넘고 있는 아내 하와를 통제하지 못한 아담의 죄도 큽니다.
이제는 사탄의 화신인 뱀에 대하여 강력한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걷거나 달리지를 못하고 배로 기어 다닌다고 하는 것은 벌레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교한 꾀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창3:1). 흙으로 된 고기덩어리를 집어 삼키는데 평생을 바쳐야만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뱀은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 때부터 뱀은 아름다운 다리도 사라지고 영민했던 두뇌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진범이 남아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은 항상 사탄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욥1:9-12, 2:5). 그와 같은 문제의 핵심을 하나님이 정확하게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탄의 도구에 의하여, 그 흉계에 휘말려서 처참한 처벌을 받게 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을 이제는 구원해야만 하는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 구원의 방책이 다음과 같이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완전한 여자의 후손은 역사 가운데 마리아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인 부모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남자와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렇지만 나사렛 예수만은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습니다. 남자가 없이 오로지 성령으로 여자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마1:18).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눅1:26-27). 처녀인 마리아가 잉태를 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눅1:31-33). 마리아는 반문을 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천사가 답변을 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완전한 여자의 후손으로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될 그리스도 예수가 사탄의 머리가 되고 있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마27:50-54, 롬8:1-2). 그 일은 사탄이 예수님의 발에 못을 박음으로써 성사가 될 것입니다(창3:15, 마27:35). 그 예언이 약 4,000년 후에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어집니다(요19:17). 그 결과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성령의 강림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의 기운을 얻게 됩니다(행1:8, 2:1-4). 다시 에덴동산에서처럼 청지기의 교육이 시행이 됩니다. 교회가 그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마28:18-20). 성도들은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고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성이 됩니다(요6:39, 10:10, 21:15-19). 드디어 온 세상으로 파송이 됩니다. 우주만물에게 하나님 앞에서 법도와 분수를 지키며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청지기를 통하여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완성이 되어나갈 것입니다(고전15:24-26). 결론적으로 그러한 내용이 바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매우 장기적인 종합처방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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