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9강(창2:1-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9. 19:55

창세기 강해 제9(2:1-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95()

 

창세기 제1장의 인류의 창조와 제2장의 아담의 창조와의 차이는 무엇인가?(1:26-31, 2:4-8, 15-17)

 

창세기 제1장의 내용을 제2장에서는 단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2:1). 그 다음에 제1장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2).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창조를 6일동안에 마쳤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만물이 창조의 질서에 맞게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마무리하시고 편히 쉬시는 날이 일곱째 날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안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2-3). 하나님도 안식을 원하고 있습니다. 안식을 즐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의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2:3).

왜 안식의 날 제7일이 그토록 복되고 거룩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이 함께 거처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에덴동산에서 함께 동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 신앙이 특출한 자를 선발하여 거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선발된 자가 청지기 교육을 제대로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주인의 뜻대로 천지만물을 잘 운영하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복이 온 우주에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창조물들이 설계도대로 제대로 작동이 되고 있는 것을 점검하고 그들이 상부상조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돌보며 경영하고 있는 청지기를 바라보는 창조주의 마음은 흡족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편히 쉬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청지기들이 주인에게 운영의 결과를 보고할 것입니다. 마치 전문경영인을 내세운 기업의 오너와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을 할 수 있는 일곱째 날이 참으로 복되고 좋은 날입니다.

따지고 보면, 창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상적인 운영이 더 중요한 법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의 건물만 거창하고 아름답게 지어놓으면 무엇을 합니까? 그 건물은 자신을 보람 있게 사용하고 제 값어치를 발휘하게 해주는 운영이 있을 때 비로서 빛이 나는 법입니다. 영국에서는 옛날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대저택이나 궁전이 오늘 날 다른 용도로 많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토지생산에 의존하고 있던 귀족들이 자본주의 산업시대가 도래하자 그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줄어들어서 그들의 궁궐과 같은 대저택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서구의 웅장한 예배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건물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분을 하고 있습니다. 팔린 후에는 회교사원이 되든지 술집이 되든지 상관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인 성도들도 대형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큰 건물만 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서구의 전철을 밟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6일까지의 창조가 결코 사역의 마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과 거룩하심을 성도들이 받아서 누리며 이 땅 모든 피조물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8:19-21).

어떻게 경영을 할 것인지? 어떻게 창조의 목적대로 사용할 것인지? 그 과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컴퓨터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드웨어가 중요하지만 나중에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지는 법입니다. 그 점을 이미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3).  

여섯째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땅 위에서 번성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땅을 다스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창조를 한 순간에는 심히 좋은세상이었습니다(1:31).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제대로 발휘하여 만물의 관리자인 청지기의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따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을 불러서 새로이 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2:8). 교육의 내용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먹도록 허용한 과일만을 따먹고 먹지 말라고 금지한 과일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2:9, 15-17).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기거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그곳에서 과수원지기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2:10-15). 동산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까지 돌보고 있습니다(2:9, 16-17). 그런데 가장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나무의 과일이 선악과입니다(3:5-6). 자꾸만 눈이 갑니다. 그래도 참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거를 하자면 창조주의 말씀을 지켜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주인과 종의 구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도(法度)입니다. 그 경계선을 범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던 루시엘이 그 경계선을 침범했습니다(14:12-14). 그래서 천상에서 내쫓기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14:15-17). 아담이 사탄의 전철을 밟지 아니하면 됩니다. 그것이 청지기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철칙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검토해보면 창세기 제1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처음의 인류는 모두 타락한 존재로 보입니다(1:26-30). 오직 아담만이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에덴동산으로 옮겨져서 청지기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2:7-8). 그렇다고 구 인류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4:14). 에덴동산 가까운 곳에서 더 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되는 카인이 사람들에게 맞아 죽지나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3:24, 4:12). 에덴의 동쪽 그 먼 곳 땅에는 수많은 구 인류의 자손들이 아직도 남아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4:16). 그렇지만 그들은 족보도 이름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존재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경영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6:1-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종으로서의 법도를 어겼기 때문입니다(26:4-5, 왕상9:6-9).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라면 여덟째 날은 왜 없는가?(2:1-3)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경영을 청지기에게 맡기고 안식하고 계십니다. 그 날이 일곱째 날입니다. 그렇다면 여덟째 날은 없는 것일까요? 그 날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창조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글과 사도 베드로의 글, 그리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의 창조가 다음과 같이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65:17-18)“,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2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것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1:1-2).

여덟째 날 대신에 새로운 첫째 날이 다시 시작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재창조까지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모태에서 태어난 자가 물과 성령으로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중생의 은혜도 존재하는 것입니다(3:3-12). 구체적으로, 인생 가운데 새로운 운명도 창조하시며, 고대사회와 같은 서열이 엄격한 사회에서 둘째가 첫째가 되는 변화의 역사도 창조가 된다고 하겠습니다(25:23). 그러므로 이미 굳어진 틀을 보고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짐을 바라보고 사는 믿음의 삶이 훨씬 역동적인 인생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창조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새로운 인생을 주님 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