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8강(창1:26-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9. 19:52

창세기 강해 제8(1:26-3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94()

 

사람이 모든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1:26-30)

 

사람은 기타 생물들과 다르게 다음 세 가지의 차이를 가지고 창조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고 있습니다(1:26-27). 둘째, 다른 생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고 있습니다(1:26, 28). 셋째, 푸른 풀만을 먹거리로 얻고 있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채소와 과일 등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한 고급의 식()재료를 공급 받고 있습니다(1:29). 위의 세 가지의 내용을 잘 묵상해보면, 사람이 모든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가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고급의 양식을 제공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다른 짐승들에 비하여 육체적인 힘이 강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강한 이빨도 없으며 손톱과 발톱도 약한 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 비결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주신 지혜와 지식 때문입니다. 지식은 창조의 이치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입니다. 반면에, 지혜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창조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식으로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과 의도 그리고 세상경영의 철학에 대한 파악은 영성과 지혜로서만 가능합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지식은 학습의 결과 풍성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갈 때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지혜와 지식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형상이 이미지’(image)이고 모양이 닮음’(likeness)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미지가 같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내부에서 풍겨 나오는 성품과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이 그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과 분위기가 사람에게만 전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내부에 저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창조주만이 피조물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포용하며 어루만질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능력이 지혜로서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을 비슷하게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듯이 사람이 비슷하게 공작을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했다는 뜻은 하나님을 닮아서 비슷하게 무엇인가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부여를 받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일찍이 칼 마르크스와 같은 학자는 사람을 공작하기를 즐거워하는 자’(homo faber)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인간의 천부적인 공작의 즐거움을 빼앗고 오로지 상품생산의 노예로 사람을 부리고 있기에 악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어쨌든 결론을 맺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형상은 통찰력을 가지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을 닮도록 했다는 것은 비슷한 공작물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인간에게 주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었기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기에 인간은 영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두뇌를 원활하게 가동할 수 있는 에너지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그것은 푸른 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고단백 높은 칼로리의 양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맛있는 채소와 영양이 풍부한 과일을 먹거리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먹고 신진대사를 잘 해야만 사람의 머리가 영민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 결과 지식이 풍부해지고 영성 또한 맑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성적인 활동과 영성 생활이 모두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때에 비로서 다른 모든 생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돌볼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서 창조를 하신 이유(1:27)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단순한 것이 아니고 복잡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때에 절대선으로 행사가 될 수 있는 것임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도 어느 한편에게만 전부를 부여해줄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싱글로서는 아니 됩니다. 그래서 복수인 남자와 여자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나누어져서 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남자와 여자에게 나누어져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일이 남자만으로써는 아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만 가지고서도 아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창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협력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 편과 하나가 되어서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복의 이치를 하나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나와 의견이 틀리고 모양이 틀리며 성품이 다른 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도 나와 똑 같은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사랑하며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의 복을 온 세상이 누리게 됩니다. 생육과 번성의 축복 그리고 올바른 세상의 경영은 모두 공존공영(共存共榮)과 상생(相生)의 정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축복을 그들에게 주신 이유와 ‘integrity’의 의미(1:27-31)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 실로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까지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첫째, 창조물을 통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혜안을 준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의 모양을 모방하여 비슷하게 각종 도구와 공작물을 만들고 문명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몸에도 좋고 식욕도 돋울 수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까지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한 세상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모두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엄청난 축복을 선물로 받은 인간이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기준이 본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쏙 빼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으신 모든 것들을 한 눈에 보고 계십니다. 우주와 천체, 오대양 육대주와 각종 식물들, 육해공군의 동물들, 마지막으로 사람들, 그렇게 일렬로 보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들이 생명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생기와 하나님의 복이 그 풍경 속에 고스란히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은 안식을 하시고 대신하여 인간들이 선한 청지기가 되어 잘 경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합니다. 그래서 극히 만족한 평을 하고 있습니다; “심히 좋았더라!(it was very good!)”(1:31).

인간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것입니다. 자연환경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서로가 공존하면서 번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integrity’의 개념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선한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일을 담당할 만한 자가 바로 아담입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거를 하면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종으로서의 분수를 지키며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을 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는 시간이 안식’(安息, sabbath)의 날 일곱째 날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물을 복되고 거룩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가 있는지를 배웁니다(2:3). 그래서 배운 그대로 실천을 합니다. 그리하면, 만물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그대로 심히 좋은 상태로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