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22(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8. 22:57

선더말 아재22(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그날 밤 안춘근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본다; “춘근이 형, 제가 오늘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동경시내로 들어오면서 보니까 그 옛날 일제시대와 비교하여 더 발전이 된 것으로 보였어요. 전후 20년동안 어떠한 경제적인 변화가 있은 것입니까?”;

 

안춘근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조목조목 상세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째로, 1945년에 일본제국이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그때부터 ‘맥아더 사령관’이 군정을 실시하였지. 일본정부를 활용한 간접통치의 방법이기도 해. 어쨌든 맥아더는 일본제국의 민주화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애. 첫째, 다시는 일제가 외국을 침략할 수 없도록 ‘평화헌법’을 만들었지. 그것이 이름하여 ‘맥아더 민주헌법’이야”;

 

 “둘째, 전범재판을 실시하고 1946년 정초에는 현인신으로 신사참배의 대상이던 일본 천황이 신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하는 ‘인간선언’을 스스로 하도록 만들었지”;

잠깐 숨을 돌린 안춘근이 이어서 설명한다; “셋째, 수석이 자네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경제정책’은 군벌과 군수산업을 전부 해체하고 당분간 미국의 원조로 먹고 살도록 한 것이지. 사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이 많았기에 전후에 그것을 복구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었지… 그리고 해외의 식민지가 사라졌기에 귀국을 한 일본인들이 너무 많아서 먹고 살기가 참으로 힘들었어. 우리집은 다행히 수석이 자네가 벌어준 돈으로 그나마 잘 살았지”.

안춘근이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의 설명을 시작한다; “둘째로, 맥아더 사령관은 미국의 원조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1947년부터 일본이 자력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민생산업을 합리화하고 진흥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했어. 미국정부도 같은 생각이므로 1949년 2월에 경제관계 전문가인 ‘닷지’를 공사로 동경에 보냈지. 그는 일본의 재정적자를 없애기 위하여 긴축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는 한편 군수산업이 아니라 민생산업을 부흥하여 일본이 자력 갱생하도록 인력과 기술을 합리적으로 조정했지”.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안춘근이 이어서 설명한다; “그런데 일본의 민생산업의 합리화와 부흥만을 위하여 설계가 된 소위 ‘닷지 라인’이 크게 수정이 될 수밖에 없는 국제정세가 숨가쁘게 전개되었어. 1949년 말에 장개석의 군대가 중국본토에서 대만으로 내몰리고 중국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정복하고 말았거든. 그리고 반년후에는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고 말았지”.

안춘근의 설명이 계속이 된다; “미국은 힘이 강화된 공산진영 곧 소련과 중공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의 경제부흥과 방위산업의 재생이 필요해졌어. 더구나 3년간 지속이 된 한국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먼 미국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서 조달하고자 한 것이야”.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경청하자 안춘근이 신이 나서 계속 설명한다; “셋째로, 한국전쟁동안 일본이 병참지원을 통하여 얻은 흑자가 엄청났지. 일본의 정부예산의 몇배나 되는 금액이었어. 그것을 활용하여 일본정부는 고도경제성장을 위한 장기계획을 실시한 거야. 때마침 일종의 외생적인 ‘3저현상’이 지속이 되어서 대성공을 했지. 구체적으로, 세계적인 저금리, 석유와 자원의 낮은 가격, 그리고 엔저현상 등이 일본의 고도성장과 수출증대의 환경요인이 된게야”;

안춘근의 설명이 굉장히 유식하다; “일본의 경제성장계획의 핵심은 민생산업기술을 고도화하여 전기, 전자, 기계, 화학제품을 해외에 대대적으로 수출하는 것이지. 그 수출주도형 중화학 중공업 정책이 지난 10년간 거의 두 자리 수에 이르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일본에 가지고 온거야. 이제 일본은 작년 1964년에 ‘동경올림픽’을 치루고 세계에서 다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되었어”;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한국전쟁후에 일본정부가 시행한 고도경제성장전략을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이 한국에서 재현하고자 하는구나. 일본이 지난 10년동안 이룩한 성취를 한국이 이제는 똑같은 전략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선 모델이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경제개발 정책이구나. 그렇다면, 문제는 일본이 한국전쟁의 병참을 통하여 얻은 그 자본을 한국은 차관 등을 통하여 얻어야만 한다는 것이네…”.

그쯤 설명을 듣고서 손수석은 만족한다. 그러면서 안춘근에게 말한다; “춘근이 형, 고마워요. 형의 체계적인 설명을 들으니 내 눈이 번쩍 떠지고 있어. 그런데 나는 내일 동경 항 인근에 있는 수산물 냉동창고에 좀 가보고자 하는데 형이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네. 좀 부탁해도 될까?”.

조심스러운 손수석의 말에 안춘근이 껄껄 웃으면서 답한다; “하루 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데리고 다녀 달라고 말해도 된다, 수석아… 너는 20년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이 형이 어색해 보이냐? 나는 옛날 그대로이다. 수석이 너는 아직도 변함없이 내 동생이지…”.  선더말 아재가 얼른 대꾸한다; “그것이 아니고 내일 형은 쌀가게에 나가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런거야…”.

안춘근이 다시 웃으면서 말한다; “수석아, 네가 그 옛날 나에게 석탄회사에 쌀을 공급하여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니? 그래서 일본의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켜자 나는 다시 그 일을 시작했어. 그래서 지금은 쌀가게는 직원들이 맡아서 경영을 하고 나는 엄청 부자로 살고 있다. 이것이 모두 수석이 너의 공로이지. 그러니 나는 시간이 많아. 원한다면 일본 어디라도 너와 함께 여행을 할 수가 있단다”.

그때서야 손수석이 안춘근에게 묻는다; “춘근이 형, 그런데 자녀들은 모두 결혼하고 분가를 한거야? 집에는 형수님 밖에 아니 보이시던데?…”. 안춘근이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한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이곳 동경에서 대학까지 공부하고 대기업에 모두 취직하고 결혼들을 잘했어.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의 결과 젊은이들에게 좋은 직장이 활짝 열려 있지. 참 좋은 시대야. 그래서 벌써 자신들의 집을 지니고 따로들 살고 있단다”.

그 말을 들은 손수석은 한국의 미래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라는 그 미래가 한국에도 10년후에 도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손수석은 안춘근과 그 옆에서 과일과 차를 대접하고 있는 안춘근의 부인에게 잘 주무시라고 인사를 하고서 그 집에서 일박을 한다.

다음날 안춘근은 선더말 아재를 데리고 동경 항구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어느 냉동창고로 간다. 그는 서슴없이 그 냉동회사의 사장실로 들어선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깜짝 놀라서 안춘근의 소매를 잡으면서 말한다; “춘근이 형, 사장실로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해. 모르는 회사의 사장실로 들어가면 실례이지?...”. 그 말을 들은 안춘근이 미소로 답하며 그냥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자 사장실 책상에 앉아 있던 머리가 벗겨진 일본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안춘근에게 깍듯이 절을 한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그 모습을 보고서 놀란다. 그 다음 그 사장의 말이 손수석을 더 놀라게 한다; “아이구, ‘쯔끼모도 회장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방문을 하셨습니까? 사전에 전화라도 한통 주시지 않으시고요…”.

안춘근이 자기보다 10살 정도 연하로 보이는 그 일본인 사장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면서 사장실 소파의 상석에 덥석 앉는다; “한국에서 내 아우가 왔길래 자네에게 소개를 시켜주고자 갑자기 기별도 없이 찾아왔네. 미안하이”. 그 말을 듣자 그 사장이 소파 옆으로 와서 손수석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 바르게 말한다; “저는 이곳 안 회장님의 냉동공장을 맡아서 경영하고 있는 사장 ‘마쯔다’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마쯔다 사장이 책상에서 가지고 온 자신의 명함을 손수석에게 내밀면서 악수를 청한다. 손수석도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그에게 주면서 마주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온 손수석입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에는 ‘쯔끼모도’입니다. 여기 계시는 ‘쯔끼모도 상’의 의동생이지요”. 그 말을 듣자 마쯔다 사장이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아 그렇습니까? 잘 부탁합니다”.

손수석과 마쯔다 사장이 명함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자 안춘근이 일본말로 말한다; “수석아, 나는 지난 20년 동안 일본의 재건과 경제성장을 위하여 일선에서 뛰었어. 그 결과 조그만 성공을 했지. 전후에 전쟁재벌이 사라진 일본땅에서 나는 민간인 재벌이 된 셈이지. 그래서 이러한 냉동회사를 전국에 여러 개 소유하고 있어. 이것이 그 중에 하나란다. 수석이 네가 수산물 냉동창고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내가 바로 여기에 데리고 온 거란다”;

그러면서 안춘근이 웃는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도 따라서 웃는다. 너무나 기분이 좋은 것이다. 한국사람인 안용운 숙부의 아들 안춘근이 일본에서 성공하여 재벌 회장이 되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축하를 할 일이다. 그래서 한국말로 말한다; “춘근이 형, 나는 눈물이 나려고 한다. 형은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진짜 일본사람이지. 그러나 내게는 항상 안용운 숙부와 박미자 숙모의 아들 조선인 춘근이 형이었어”.  

안춘근도 따뜻하게 손수석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그래 맞다. 수석이 너를 보고 있으면 나는 나의 뿌리의식을 느낄 수가 있다. 나의 부모님이 모두 조선사람이었으니 나도 조선사람이 맞지.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일본사람이기도 해. 그러니 두개의 정체성을 가진 내가 수석이 너를 통해서 이제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고 싶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께”.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말한다; “춘근이 형, 나는 수산물을 냉동창고에서 어떻게 저장하여 일년사철 시장에 내다 파는지 그것이 궁금하여 냉동창고를 보고 싶어.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그러한 ‘수산물 냉동창고’를 하나 지어보고 싶거든. 그러니 좀 가르쳐주어”. 안춘근이 즉시 마쯔다 사장에게 일본말로 지시를 한다. 그러자 공장장이 사장실로 와서 손수석을 데리고 나간다.

그날 손수석은 그곳 수산물 냉동공장을 자세하게 시찰하면서 궁금한 것을 공장장에게 상세하게 물어본다. 그 공장장의 설명이 참으로 친절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냉동공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냉동기계’를 한국에서도 구할 수가 있는지 그것이다. 그래서 그 공장장에게 질문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냉동기계’를 구할 수가 있을까요?”.

그 공장장이 참으로 중요한 정보를 하나 제공한다; “한일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자 저희 회사에서는 한국의 수산물 냉동공장의 실태에 대하여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에 있는 ‘조선냉동’에서 자체적으로 냉동기를 조립하여 만들어 인천과 부산 등지의 냉동공장에 보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한국에서 얼음공장을 지어주고 아이스케키 공장을 지어주던 회사입니다.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그 기술을 배웠다고 하는데 꽤 ‘냉동기계’를 잘 제작하고 있더군요”;

참으로 좋은 정보이다. 친절하게도 그 공장장이 서울에 있는 ‘조선냉동’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찾아서 손수석에게 적어준다. 선더말 아재는 뜻밖에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고 그날 안춘근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날 안춘근의 저택에 일찍 돌아와서 두 사람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정종 사께를 나누어 마시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눈다. 안춘근이 돈을 벌어 재벌이 된 이야기가 정말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동경에서 이틀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