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19(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장남 손진목과 차남 손진길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손수석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자수성가를 하여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 그러한 인물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형제들이 그 모범을 보고서 집안을 바로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물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집안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더욱 번영하는 법이다;
그와 같은 인물로 자라나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손수석은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일찍이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그러한 인생을 살아온 이유는 다분히 조모인 서배 할매 이채령의 가르침 덕분이다. 이채령은 천석꾼 집에 외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남편 손상훈이 진짜 농사꾼이며 그 생활이 건실했다. 그러나 1925년 을축년에 대홍수가 나자 그만 천석꾼의 전답이 절반 이상 큰물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양자로 들인 손영주가 마음씨는 착한데 남을 돕는 것만큼 여물게 살림을 살지를 못한다. 한마디로, 자수성가를 할 수 있는 인물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1930년대에 들어서자 그나마 지니고 있던 400석지기의 살림도 없어진다. 결국은 큰 손자와 둘째 손자를 심상소학교에도 보내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이채령은 셋째 손자인 손수석에게 ‘너는 그렇게 살지를 말아라’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을 품고 가르친 것이다.
서배 할매 이채령이 사전에 ‘심상소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대주고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는 여비를 죽기 전에 셋째 손자인 손수석에게 주었기에 그의 인생이 형제들과 달라진다. 그는 홀로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학을 했다. 그 추운 일본의 북해도 석탄회사에서 젊은 날 경리로 일하면서 죽기 살기로 사업을 병행하여 돈을 벌었다.
해방이 되자 조국에 돌아와서도 무려 14년간이나 경찰관생활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후방에서 공비들이 8년간 준동을 했다. 그 공비들을 토벌하는 일에 오래 참전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다;
그러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손수석은 자신의 아들 가운데 한두 명이라도 그러한 근성을 가지고 자수성가를 하여 후대에 집안과 온가문을 융성하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는 척해도 사실은 그들의 행동과 발달과정을 눈여겨 지켜보고 있다. 물론 그는 혼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수성가를 한 인물이므로 성격상 친지에게나 자식에게 사업상의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사업관계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지만 그러나 은밀하게 그들의 성격이 어떤지 그리고 위기를 당하여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고자 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선더말 아재의 눈에 장남 손진목은 공부도 잘하고 도전정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남은 1964년 초에 과감하게 대구의 ‘사대부고’에 응시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낙방이다. 어쩔 수가 없이 2차인 명문 ‘대구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고교입시에서의 시련은 장남 손진목이 일찍이 국민학교 5학년 때 전교학생회장이 되겠다고 출마를 했다가 떨어진 후 처음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그렇다면 3년 후에는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진학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남 손진목의 모든 학자금과 하숙비를 지원하면서 선더말 아재는 그것을 지켜보고자 한다. 입시에서 한번의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치더라도 몇 년 후에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다음해인 1965년초가 되자 차남 손진길이 황남국민학교에서 성적이 좋아 학교장의 추천으로 ‘경북중학교’ 입시에 응한다. 그러나 낙방이다. 장남에 이어 차남도 불합격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역시 한번의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런데 차남 손진길이 2차인 ‘대구중학교’에 응시를 하고서 경주 황오동 집에서 합격통지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선더말 아재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장남과 차남 두아들을 2차인 ‘대구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에 모두 다니게 할 수는 없다. 그곳에서 편하게 공부하여 장남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로 진학하고 또한 차남이 대구에 있는 ‘경북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를 하는 그러한 값진 인생이 되지를 못할 것이다. 그저 선더말 아재 자신이 애써 일구어 놓은 그 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유약한 부잣집 도령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부친인 선더말 아재 자신이 자식들에게 독하게 칼을 뽑아야 한다. 우선 ‘대구중학교’에 응시한 차남 손진길부터 경주에 두고서 철저하게 아래에서부터 기어올라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녀석은 보기보다 속으로 자존심이 강한 놈이다. 무자비하게 짓밟아 놓으면 어떻게 반응을 할까? 평소 또래보다 그 성격이 칼날 같고 다부지다고 하여 ‘앙발구’ 또는 ‘독한 악바리’라고 불리고 있는 차남 손진길이다. 그는 공부에 있어서도 악바리이다. 그러므로 선더말 아재는 차남에게 은연중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가 과연 대구가 아닌 경주에서 그것도 ‘삼류중학교’에 다닌다고 하는 그 수모를 이기고 떳떳하게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가 있을 것인가? 그 점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손수석의 속마음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도 차남의 재수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보결로 ‘문화중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만다.
대구에서 비싸게 공부하고 있는 장남 손진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여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떳떳하게 합격하기를 선더말 아재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래야 2차인 ‘대구고등학교’에서 공부하여 1차인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을 했다는 성취감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심층적인 의도를 장남과 차남이 깨닫고 이해를 해줄 것인가? 그것은 시간이 지나보아야 아는 일이다.
선더말 아재의 그러한 독한 면모를 그와 함께 젊은 시절 일본 북해도에서 동지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친지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선더말 아재가 자신의 아들들에 대해서도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한번 살아보고 거기에서부터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여 달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그것은 시대가 달라진 오늘날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먼저 친형인 손수상이 동생 손수석에게 술자리에서 말한다; “동생, 지금은 시대가 달라. 우리 자식들은 옛날 머슴살이 하던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 그러니 너무 자식들을 다구치지 말게나”.
친동생인 손수권도 두사람만 있을 때에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형, 우리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일제시대와 경제개발을 한창 부르짖고 있는 1960년대 지금의 한국은 확연하게 환경이 달라요. 그런데 어떻게 그 옛날의 간난신고를 자식들이 그대로 겪고 거기서 일어서도록 그렇게 강요하고 있어요? 그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그러한 취지의 말은 선더말 아재가 형제들이 아닌 지인으로부터도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다. 그럴 때마다 손수석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처지와 형편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본연의 마음자세는 같아야 합니다. 뜻이 굳건한 자가 되어야 요즘 말로 시베리아나 사막 한복판에 가져다 놓아도 살아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만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가족과 가문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선더말 아재가 조국에 돌아와서도 그러한 돌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경찰관생활을 하고 이제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와 함께 일본 북해도에서 함께 고생한 동지들이 두루 알고 있다. 그래서 경주 팔우정에 살고 있는 고민달, 사리에 살고 있는 장기동, 경주 금관총 부근으로 이사를 한 이도성 등이 어째서 손수석이 차남 손진길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하고 있는지를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손진길은 그러한 사실을 먼 훗날에야 깨닫게 된다.
선더말 아재는 ‘경북상호신용금고’의 총무로 일하면서 많은 상인들은 물론 여러 유명인들을 사귀고 있다. 처음 그들과의 관계는 직업적인 것이다. 그들이 대부를 받기 위하여 신용금고를 찾아왔으므로 총무인 손수석이 그들의 신용정도와 내력을 먼저 조사한 것이다.
그런데 몇 번 만나다가 보니까 그들의 인간성이나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상당히 파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업관계를 떠나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특이한 두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문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최영래’ 교장이다. 그는 학교를 반석위에 올려놓고자 참으로 열심이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미국의 교계를 방문하여 미션 스쿨인 문화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기부를 많이 해달라고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후원금을 받아왔기에 문화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후원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경우에는 최교장이 융자 받기에 편리한 ‘경북상호신용금고’를 찾아온다. 총무인 손수석은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 학원사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되도록 빨리 융자를 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최교장은 기한내로 반드시 융자금을 상환하고 있다.
또 한사람은, 정치 지망생인 ‘심봉섭’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판에 뛰어 다녔다. 그러더니 이제는 자신이 국회의원에 출마를 한다고 한다.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니 집을 팔고 친지들에게 빚을 지게 된다. 그리고 낙방을 하게 되니 그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선더말 아재는 ‘그 나름대로 끈질긴 근성을 가진 인물이구나’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 용돈도 주고 때로는 필요한 작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내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그가 꼭 먼저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는 신나게 정치마당의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언제나 손수석은 잠잠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면서 선더말 아재는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있는 정치지망생 ‘심봉섭’의 꿈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이 경주에서 박씨가 국회의원이 되도록 일종의 선거구조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박정희가 고령 박씨인데 그는 신라의 초대왕 박혁거세의 후손임을 엄청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신라문화제’를 만들어 각종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신라의 창건왕 박혁거세와 신라육촌의 귀족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장 먼저 박혁거세의 영전 앞에 술을 따르게 되는데 그것이 ‘서제’이다. 그 술을 따를 수 있는 자가 경주의 국회의원이다. 그 다음에는 신라의 육촌장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그것이 이름하여 ‘신라 육촌제’이다;
그런데 경주와 월성에는 박씨의 수가 적다. 그러므로 박정희 대통령은 박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청도군을 경주 월성과 하나의 선거구로 조정하여 박씨 성을 가진 자가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도록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국이므로 ‘심봉섭’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선더말 아재가 보고 있다.
때로는 손수석 자신이 ‘신라문화제’ 때 ‘육촌제’ 행사에 참석한다. 그때 경주 월성 손씨를 대표하여 시조인 신라 육촌 모량부 촌장 구례마에게 술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포기를 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도전하고 노력한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먼 훗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자 ‘심봉섭’이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고등학생, 중학생, 국민학생에 불과한 손수석의 자녀들은 부친인 선더말 아재가 강인한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한 부친의 마음을 그들은 더 성장을 해야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그러한 때가 빨리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자신이 없더라도 그의 자녀들이 하나같이 오뚝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 주기를 소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부인인 고복수는 남편의 그러한 깊은 속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손수석에게 시집와서 몇 달 시집살이를 하면서 보니 남편이 그 지역의 대지주이며 가주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집살이를 한지 3달 만에 남편이 경찰에 투신한고로 남편을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살았다.
그리고 남편은 한국전쟁 3년 동안에 진급이 빨라 경사가 되고 지서장이 된다. 그때부터 고복수는 천석지기 대지주의 안방 마님일 뿐만 아니라 지서장 사모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순조롭게 자녀도 아들 다섯에 딸을 하나 낳았다. 그녀야 말로 복이 넘치는 여인이다. 그 복을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넓은 이해심이 필요한데 그러하기에는 너무 일찍 남편을 잘 만나 일약 출세를 해버린 고복수이다.
그것은 마치 소싯적에 과거를 하고 일찍 ‘영감’ 소리를 들으면서 귀족처럼 살아간 사람과 같은 운명이다. 그것이 세상물정을 어둡게 하고 자수성가의 근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더구나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이상한 습성을 후천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내의 심성을 살피면서 손수석은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나 조강지처이며 5남1녀의 어머니인 고복수는 언제나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유일한 아내인 것이다.
'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더말 아재21(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8 |
---|---|
선더말 아재20(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8 |
선더말 아재18(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8 |
선더말 아재17(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8 |
선더말 아재16(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