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17(작성자; 손진길)
1963년 12월에 아내 고복수가 남편 손수석에게 말한다; “여보, 맏이 진목이가 공부도 잘하고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 싶어하니 그렇게 하도록 지원을 해주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들은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아내에게 묻는다; “그래, 대구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 입시원서를 내고 싶다고 말하던가요?”.
고복수는 대구에 어떤 명문고등학교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말한다; “자세한 것은 진목이를 불러서 한번 물어보세요”. 부모님이 거처하고 있는 안방으로 불려온 손진목이 대답한다; “저는 대구에 있는 ‘경대사대부고’에 진학을 하고 싶어요. 입시원서를 그곳에 내고 싶습니다”. 손수석이 순순히 허락한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지난 여름에 벌써 손진목의 담임선생을 만나서 ‘경북고등학교’와 ‘경대사대부고’의 차이점을 파악한 바가 있기에 ‘사대부고’ 정도의 명문이면 한번 입시원서를 내어 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친의 허락을 얻은 손진목은 입시원서를 제출하기 위하여 경북여객 버스편으로 대구에 간다;
일이 그렇게 되자 대구에 자주 들르고 있는 손수석이 사전에 경북여객 본사에서 전무 장경국을 만나서 말한다; “장 전무, 우리집 아들이 대구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디 믿을 만한 좋은 하숙집이 시내에 없을까?”. 장경국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답한다; “한 군데 있기는 하지. 내가 아는 그 집에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전부 학생들이야. 집도 반월당에서 가까운 남산동이라 학군의 중심지역이지. 어디 하숙 칠 방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아 줄까?”.
손수석이 좋다고 하자 그는 선더말 아재를 시내에 있는 작은 요리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면서 방에 자리를 잡는다;
한식을 잘 차린 상이 들어오고 그 집 마담이 들어온다. 그런데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인다. 그 마담이 반갑게 장 전무에게 인사를 한다. 단골인가 보다. 그러면서 선더말 아재를 처음 보는지라 눈인사를 하면서 장 전무에게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장 전무가 웃으면서 말을 시작한다; “허허, 나는 월성 손씨들은 양반이라 타지에서 살더라도 서로 일가들은 핏줄이 당겨서 단번에 알아보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지요?... 자, 서로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 손님은 경주에서 온 버스회사 손 사장이시고 또 이쪽은 이 요정의 주인이신 손 여사이시지요”.
서로 일가라고 하니 선더말 아재가 반가워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손 여사가 말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 되어서 미처 알아 뵙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대구에 시집와서 살다가 그만 혼자가 되고 이제는 이 조그만 요정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또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냥 ‘손 마담’이라고만 불러주세요”.
그러자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장 전무가 손 여사에게 한가지를 물어 본다; “예전에 제가 부친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손 여사께서는 그동안 번 돈으로 남산동에 큰 집을 사서 세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다면서요? 그 집에 혹시 빈방이 하나 있습니까? 여기 손 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대구로 진학시키고 싶다고 하면서 하숙집을 찾고 있어서 제가 여쭈어 봅니다”.
그 말을 듣자 손 여사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어째, 오늘은 부친이신 장 사장님이 아니 오시고 장 전무님이 오셨나 했더니 그 용건 때문인가 봅니다. 비싼 요리를 시키시고 일부러 물어보시니 제가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리지요. 네, 제 집에는 방이 여럿이라 빈방이 하나 있고요, 제가 주로 요리집에 나와 있기 때문에 식사는 저의 친정어머니께서 챙겨주고 있습니다. 그 방에 두 사람 정도 하숙을 칠 수는 있지요…”.
그 날 선더말 아재는 비싼 요리를 먹고서 그 값을 치룬다. 그리고 장경국이 회사로 돌아가고 나자 잠시 짬을 낸 손 여사를 따라 그 집을 방문해본다. 깨끗한 집에 방이 여럿이다. 자녀들은 학교에 간 모양인데 친정 모친으로 보이는 순하게 생긴 할머니가 반갑게 딸을 맞는다. 손 여사가 모친에게 선더말 아재를 소개한다. 경주에서 온 ‘월성 손씨’라고 하니 모친이 그렇게 반가워한다;
경주 손씨는 신라 건국초기(서기32년) 3代 유리왕9년에 6촌 중 하나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 (俱禮馬)께서 손씨로 사성(賜姓)받은 것이 손씨의 시작이다.
그 후 신라 42대 흥덕왕(興德王AD826-835)石鍾古事의 주인공인 國孝 孫順을 中祖로 하고 경주(慶州)밀양 (密陽) 평해(平海)삼파(三派)로 갈렸으니 경주가 그 주류(主流)이다. (三國遺事 朝鮮氏族通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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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고인이 된 내 남편이 ‘월성 손씨’이지요. 제가 그이와 혼인하고 월성 양북에서 시집살이를 했는데 그만 딸아이 하나만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이 애가 결혼을 대구에서 했는데 공교롭게도 ‘안동 손씨’하고 했어요. 그래서 딸 둘 아들 하나가 모두 ‘일직 손씨’입니다. 사위 역시 여러 해 전에 죽고 지금은 이 애가 작은 요리집을 운영하여 온 식구가 먹고 살고 있지요”.
짧은 시간에 집안의 내력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는 할머니이다. 그 인상이 마치 시골할머니처럼 순박해 보인다;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금방 이해를 한다. 본래 족보에 따르면, 월성 손씨의 시조는 ‘신라의 손순’이고 안동 손씨의 시조는 ‘고려의 순씨들’이다. 순씨가 손씨로 바뀐 연유는 고려의 8대 왕 현종의 이름이 ‘왕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씨의 성을 손씨로 왕이 바꾸어 버린 것이다.
왕명에 의하여 손씨로 바뀐 그 순씨들이 ‘안동의 일직면’에 집성촌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흔히 일직면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안동 손씨’를 달리 ‘일직 손씨’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안동 손씨’가 한자로 ‘손’ 자를 쓸 때에 위의 점을 일직으로 가로 쓰기 때문에 ‘일직 손씨’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면이 ‘일직 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동 손씨의 연원---------------------------------------------------------------------------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손홍량 유허비에 의하면 시조 손응(孫凝)은 원래 성은 순(筍)이었는데 고려 8대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다하여 손(孫)으로 사성되었으며 신라왕을 따라 일직현에 갔다가 일직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의 세계는 분명하지 않으며 후손들은 손홍량을 일직손씨의 중시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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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손씨’를 ‘고려 손씨’ 또는 ‘일직 손씨’라고 부르고 ‘경주 손씨’에서 갈라져 나간 모든 파벌의 후손들을 ‘신라 손씨’ 또는 ‘빼칠 손씨’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게 달리 부르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신라 손씨와 고려 손씨는 조상이 전혀 다르므로 혼인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라 손씨의 한자와 고려 손씨의 한자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실 사’ 자를 글자로 쓸 때에는 위의 획을 비스듬히 빼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실 사’ 자의 본래 형태이다. 그것을 역사적으로 ‘신라 손씨’들이 먼저 사용하고 있으므로 ‘고려 손씨’들이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법으로 ‘아들 자 옆에 실 사’ 자를 붓으로 쓸 때에 ‘빼치는 획’이 아니라 ‘한 일 자로 가로 쓰는 획으로 실 사’ 자를 그린다. 그러한 의미에서 ‘안동 손씨’를 ‘일직 손씨’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날 손수석은 손 여사의 모친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어 인사한다. 그리고 빈 방을 자세히 살펴본다. 양지가 바르고 통풍이 잘 되는 방이다;
그래서 그 방에 아들 손진목이 하숙을 들어올 수 있도록 미리 석 달치의 하숙비를 선납한다. 선더말 아재는 그 집의 주소를 적고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약도까지 그려서 품 안에 넣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 여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면서 한마디 한다; “손 사장님은 아들 사랑이 각별하십니다. 그렇게 약도를 그려주고 또한 3달치 하숙비를 선납하면서 방에 통풍이 잘되는지를 미리 점검까지 하시니 말씀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이 알아 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가 대답한다; “저야 이제 객지인 대구에서 혼자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아들을 위해서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손 여사는 세 자녀를 혼자서 잘 키우기 위하여 여자의 몸으로 손수 요리집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으니 그 모정이 더 대단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하숙집을 미리 구해 놓고 경주로 온 선더말 아재는 입시원서를 내기 위하여 대구로 가는 아들 손진목에게 그 약도와 주소를 준다. 그리고 벌써 하숙비를 지불했다고 알려준다. 그러한 배려 덕분에 손진목이 1964년 1월에 ‘경대사대부고’에서 무사히 입학시험을 치룬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발표가 된 결과를 보니 낙방이다.
손진목이 실망을 크게 한다. 그러나 선더말 아재는 그러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손수석은 지난 여름에 담임선생을 만나 면담을 할 때에 장남 손진목의 성적이 경주중학교에서 10등 안에 든다고 하더라도 그 성적으로는 ‘경북고등학교’나 ‘사대부고’에는 입학이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를 벌써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실망하지 말고 2차 명문인 ‘대구고등학교’에 입시를 쳐보라고 말한다.
다행히 ‘대구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는 합격이다. 그런데 손진목과 함께 같은 학년으로 ‘고현우’가 있는데 그가 고민달의 장남이다. 그도 학교성적이 손진목과 비슷하다. 그래서 같이 2차인 대구고등학교에 합격하여 학교를 함께 다니게 된다. 손진목은 부친 덕택에 좋은 하숙집에서 ‘대구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매우 편리하다.
선더말 아재는 그렇게 자식을 위하여 먼저 조치를 해주고 배려를 해주면서도 그것을 겉으로는 티를 내지를 않는다. 자식들에게 별로 말이 없고 과묵하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부친인 봉천 할배로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런 모양이다. 그 대신에 손수석은 할머니인 서배 할매 이채령의 따뜻한 보호와 배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상했던 조모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젊은 나이에 노력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가 또 머리가 좋았다.
모친은 손수석이 일본에서 벌어온 돈을 잘 운용하여 주었다. 그리고 손수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고자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의 절친인 오예은 간호사와 접촉을 많이 했다. 오예은이 의붓아버지인 미국선교사로부터 얻어 들은 국제정세는 참으로 일제시대에 중요한 고급 정보였던 것이다.
무너진 천석지기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아들 손수석을 도와 여장부로서 함께 노력한 분이 바로 모친 봉천 할매 정애라이다. 그러므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그러한 집안의 좋은 전통을 장남인 손진목이 이어받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과연 선더말 아재의 소망이 이루어 질 것인가?
그해 1964년 가을에 예천 용궁에서 살고 있던 이도성이 경주 황오동으로 손수석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그 옛날 젊은 시절 일본에서 오래 동지로 일한 사이이므로 참으로 서로 반가워한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묻는다; “매형, 어떻게 이렇게 오래간만에 경주에 들리신 것입니까?”. 이도성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답한다; “처남, 이번에는 내가 아주 보따리를 싸가지고 경주에 왔네. 앞으로 이곳에서 쭈욱 살고자 하네”.
손수석이 급히 묻는다; “매형, 그러면 예천에 있는 식구들은 어떻게 하고요?”. 그러자 이도성이 단숨에 말한다; “전처는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들은 모두 성가하였으니 내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이제는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자네 누나와 조카들을 데리고 이곳 경주에서 터를 잡고 살 생각이야. 처남이 좀 도와 주게나…”.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자신의 누나인 손해선과 그 자녀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한다; “매형이 경주에서 앞으로 사시겠다고 하시니 제가 집과 점포가 함께 있는 건물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살 방도가 마련이 되면 그때 너븐들에서 경주로 이사를 하시면 되겠네요. 그래 어떤 업종을 원하십니까?”.
이도성이 대답한다; “시골인 예천 용궁에서 오래 살다가 보니 가진 재물이 그리 많지는 않아. 그러니 작은 담배포나 하나 사서 운영해보고자 하네. 방이 두개 정도 딸려 있으면 되고…”. 매일같이 식전에 자전거를 타고서 경주시내의 매물을 살피고 있는 손수석이다. 그러므로 어렵지 않게 말한다; “매형의 의도를 알겠으니 저와 함께 금관총 근처에 있는 담배포를 하나 보러 가도록 하십시다”;
그 말을 들은 이도성이 말한다; “처남은 어떻게 그곳 담배포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가? 이 경주시내에서 자네의 눈을 피해가는 매물은 없는 모양이구만. 참으로 대단하이…”. 선더말 아재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알고자 하여 안 것이 아니라 저의 집에 자주 출입하는 복덕방 인사가 그러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고 있지요. 마침 그런 매물이 있으니 잘 되었지 않습니까?”.
이도성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따라나선다. 그 담배포와 안채의 집이 위치도 좋고 깨끗하며 단단한 건물이다. 그래서 이도성이 마음에 크게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상당히 비싸다. 이도성이 난색을 표한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무리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손수석이 말한다; “매형, 제가 보태겠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시면 계약을 하시지요”.
이도성이 한마디를 하면서 그 매물을 구입한다; “처남이 부자이니 내가 참으로 신세를 많이 지게 되는구만, 일본에서도 신세를 지고 또 조선에서도 신세를 지고 있으니 말이야…”. 손수석이 말한다; “매형은 누나의 신랑이기 이전에 저와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동지이지요. 북해도의 혹한을 무릅쓰고 큰 삼판을 맡아서 일본사람의 돈을 함께 벌었지 않습니까? 그 옛정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도성이 울컥하는지 갑자기 눈시울을 적신다. 그리고 말한다; “처남, 자네는 사실 의리로 맺어진 내 동생이며 동지이지. 그리고 일본에서는 나의 우상이고 대장이었어. 그러니 내가 자네를 믿고 이렇게 살고 있는가봐. 내가 벌써 50줄이 되었어. 사는 날까지 처자식을 책임지고 먹여 살릴 것이니 이제부터는 자네 누나와 조카에 대하여 너무 걱정을 말게나…”.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매형 이도성의 손을 마주 잡는다. 그리고 그 손에 힘을 준다. 두사람이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 마음만은 여전히 동지애로 뭉쳐 있는 젊은이와 같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젊은 시절 제국주의의 나라 일본의 그 추운 북해도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서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을 이기면서 돈을 벌고 자신들의 앞길을 개척해온 그들이 아닌가? 그 의기와 혈기가 이곳 경주에서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살아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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