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1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7. 22:29

선더말 아재14(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큰형인 손수정이 1962년에 장남 ‘손진화’를 장가보낸다. 1939년생인 아들이 24살이나 되었기에 더 이상 혼사를 미룰 수가 없는 것이다. 신부는 신라 왕손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월성 김씨 김영호의 딸인데 그 이름이 김옥분이고 나이가  21살이다;

다음해 정초에 신행을 온다고 하여 선더말 아재는 가족과 함께 아침에 자신의 버스로 고향으로 간다. 비록 추운 날씨이지만 온 대소가의 첫번째 며느리를 시집으로 맞아 들이는 행사이므로 특별히 축하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용산을 지나 이조천변을 통과하다가 그만 버스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혹한의 날씨에 엔진이 멈추자 식구들이 차내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운전석 뒤에 불쑥 솟아 있는 엔진장치의 덮개가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2학년인 손진학과 4학년인 손진길은 물론이고 중학교 2학년인 손진목 마저 추워 죽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운전기사인 한영석과 조수 이만웅이 안절부절이다.

시동이 꺼진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래된 미제 ‘지엠시’ 트럭의 엔진을 사용하여 개조한 버스이므로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한기사와 조수 만웅이는 빨리 시동을 다시 걸어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그 추운 아침 겨울바람이 매서운 이조천변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노력 중이다.  

버스 앞에서는 조수가 ‘니은 자에 다시 기억 자로 휘어진 철막대’로 시동을 걸어보고자 하고 운전석에서는 기사가 악셀을 요령껏 밟아본다. 참고로 막대기로 시동을 거는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 다음과 같다;

그렇게 오래 시도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부릉 부릉하면서 경쾌하게 시동이 걸린다. 그 사이에 선더말 아재는 어린 딸 손정애를 품 안에 꼭 껴안고 있는 아내 고복수에게 미리 준비해온 담요를 여러 겹 씌워준다.

그래도 모녀간에 춥다고 하므로 나중에는 버스 안에서 이불까지 찾아 내어 그것으로 몸을 감싸게 한다. 차가 한참을 달리면서 엔진덮개에서 열기가 전해져 오자 그제서야 추위가 물러가고 있다. 그러한 추운 날씨에 선더말 아재의 장조카 손진화의 신부 김옥분이 신행을 하여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63년 정월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조카며느리의 신행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있는데 돌아가신 장인에게 양자로 들였던 고현택이 찾아온다. 그는 1959년에 양어머니 전혜숙이 사망을 하고 나자 그 재산을 몰래 처분하여 객지로 도망을 친 인물이다. 그런데 그 돈을 큰 도시에서 모두 날리고 1962년 말에 다시 경주로 돌아와서 시간만 나면 선더말 아재를 찾아와 떼를 쓰고 있다;

 

손수석은 기가 막힌다. 처가의 재산을 고현택이 3년만에 모두 탕진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뻔뻔하게도 개과천선을 했으니 한번 살길을 열어 달라고 떼를 쓴다. 젊으나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는가? 하도 기가 막혀서 고현택의 부모를 만나고자 경주중학교 뒤에 살고 있는 고병달의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고현택과 달리 그 부모는 선더말 아재에게 읍소를 한다. 자신들이 아들 하나를 잘못 키워서 그런 몹쓸 짓을 했으니 부디 한번 용서를 해달라는 것이다.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치고 선처를 해달라고 매어 달린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깊이 생각을 해본다.

그 결과 작년에 자신이 사 놓은 과수원을 그에게 맡기고자 한다. 경주에서 서배 마을로 가는 중간지점에 배반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는데 그 동쪽산지에 큰 과수원이 있다. 사과나무가 약 400주이고 배나무가 100주 정도 있다. 집도 한 채가 있으므로 그곳에서 과수농사를 지으면 한가정이 충분히 먹고 살 수가 있다;

고현택은 그곳에서 한해 농사를 짓더니 그 다음에는 선더말 아재를 찾아와서 이번에는 장가를 보내 달라고 한다. 참으로 뻔뻔한 젊은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수석은 천북에 살고 있는 윗동서 손태호에게 부탁하여 그 이웃에 살고 있는 칠성댁의 딸을 신부로 삼아 결혼까지 시켜준다;

어째서 선더말 아재가 그렇게 선처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장인 고천석을 생전에 존경하였기 때문이다. 장인어른은 참으로 선비다웠으며 양심적이었다. 한평생 남의 것을 탐하지 아니한 인물이다. 예를 하나 들면 ‘적산농지’의 경우가 그러하다.

장매 마을에 살면서 고천석은 일제시대 일본인 지주들의 전답을 제법 경작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토지를 소작하던 농민들이 그것을 불하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바빴지만 그는 그것을 싫어했다. 적산은 국가가 가져가서 모든 백성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지 그것을 소작자가 연고를 주장하며 편법으로 가로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참고로, 누군지는 몰라도 다음 그림속의 선비가 그러한 고결한 분위기를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당시로 보면 참으로 외고집이다. 그러나 그러한 곧은 성품의 장인 고천석을 이상하게도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존경한 것이다. 그런데 장인이 죽기 전에 고현택을 양자로 들이기로 생각했다고 장모 전혜숙이 말을 전해주므로 손수석이 그렇게 믿고서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가 이러하게 되었으므로 선더말 아재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서 장인에게 누가 되지 아니하도록 선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부인 고복수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배운 것이 없어서 똑똑한 남편을 내조하면서 때로 무시를 당하는 것만 같아서 일종의 자격지심이 생긴다. 그것을 참고서 사는 것이 엉뚱하게도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장남 손진목에게 필요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장남이 요구하는 용돈이라면 항상 넉넉하게 준다. 지차와는 달리 장남에게는 특혜를 베풀고 필요이상으로 그 기를 살려주고 있다. 입버릇처럼 집안에 부친이 자리를 비우고 있으면 장자가 가장의 역할을 한다고 그렇게 지차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장차 어떠한 인간형을 만들어내게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는 고복수라고 하겠다.  

선더말 아재는 여전히 ‘경북여객 경주영업소’에서 버스 배차를 하고 인사관리를 하며 차량의 정비를 위하여 경주제일정비공장의 점검을 받게 하는 등 업무가 바쁘다. 혼자서 총무로 일을 하기에 분주한 것이다. 물론 경리를 보는 직원을 따로 두고 있다. 그러나 직원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 들게 되므로 최대한의 흑자를 전주들에게 내어주고자 그렇게 자기 몸이 고달픈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더말 아재는 경주 시내에 자신이 사둔 주택과 전답이 상당하므로 그것을 관리하는 일도 바쁘다. 그리고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경주를 주름잡고 있는 중개인 ‘육손쟁이’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그 중개인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면서 그것을 마치 복덕방의 상호처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부동산 중개인으로서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경주에 나온 매물 가운데 상당히 금액이 높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선더말 아재의 집으로 그것도 아침에 가지고 온다. 손수석이 아침식사를 몇 시에 하는지 그가 꿰뚫고 있다. 그리고 단언을 한다; “이 매물은 덩치가 커서 아무나 달려들 수가 없어서 지금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 주사’께서 이 부동산을 사시면 제가 장담합니다. 6개월 이내에 되팔더라도 시중금리의 몇 곱을 남겨 드리겠습니다”.

육손쟁이는 나이가 선더말 아재보다 몇 살이 많다. 그리고 그는 손수석이 경찰에 근무하고 있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알던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경찰간부가 되는 경위시험을 끝까지 치르지 아니하고 결국 경사로 경찰을 떠난 선더말 아재를 ‘손 주사’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 경찰서장이 ‘서기관급’인 총경이 아니고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경정이던 시절이므로 그 아래의 계급은 전부가 ‘주사이거나 주사 아래’가 맞다.

그렇게 육손쟁이처럼 손수석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선더말 아재를 ‘손 주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 친분의 표현인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선더말 아재가 빙긋이 웃고 있다. 그렇지만 복덕방을 경영하고 있는 육손쟁이의 말을 손수석은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중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중개인이나 중매인은 과장과 허풍이 심한 법이다.

그래서 반드시 식전에 자전거를 타고 그 매물을 찾아간다. 물건을 꼼꼼하게 살필 뿐만 아니라 이웃주민들에게 다방면으로 물어본다. 그리고 지적도와 토지대장을 전부 살핀다. 나중에는 등기까지 챙겨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저당을 잡고 있는 은행지점까지 가서 사실여부를 확인한다;

경주에서는 은행지점장이 손수석을 ‘손 사장’이라고 부르면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거금을 예금으로 예치만 하지 절대로 은행돈을 빌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전주이며 큰 손이다. 급하면 지점장이 선더말 아재를 찾아가서 돈을 융통해야 한다. 그러한 처지이므로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이상한 경영방침을 지니고 있다. 그는 때로 아들에게 말한다; “기업이란 남의 돈을 제돈처럼 사용하다가 망하는 법이다. 사업은 자신의 돈으로 약간 낙낙하게 경영해야 한다. 그것이 망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액 자신의 돈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남의 돈을 꾸지 말아라. 돈은 벌어서 저축을 하고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이 남의 돈을 빌리거나 은행돈을 융자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과 온 집안이 망하는 길이다. 한마디로, 절대로 빚을 안고서 살지 말아라”.  

세상에 그러한 기업이 있을까? 훗날 손진길이 부친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선더말 아재가 대답한다; “많지는 않지만 그러한 기업이 있다. 유한양행이 그러하고 또 100퍼센트 자신의 가족이 회사주식을 전부 소유하고 있는 집안이 있다. 그러한 집안은 재벌이 결코 부럽지가 않다. 그 점을 명심해라. 남의 돈과 은행융자 또는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으로 키운 덩치를 남에게 자랑하지 말아라”.  

1963년에 아내 고복수가 다시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 그러자 선더말 아재가 기분이 좋아서 선심을 쓴다. 그는 세가지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자 한다;

첫째로, 온가족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새나라 택시’에 태워서 ‘석굴암 해돋이’ 구경을 가는 것이다.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새벽 일찍 택시를 가지고 집으로 오라고 한다. 그 택시를 가족들이 타고서 토함산으로 올라간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토함산 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석굴암 옆의 다방에는 ‘일출’을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곳에서 작은 달걀이 들어간 ‘쌍화차’를 한잔 마시면서 해돋이 구경을 하는 것이다;

천하의 일경이 석굴암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는 것이다. 그 광경은 강릉에서 바다의 일출을 보는 것과 진배가 없다. 의유당의 ‘관북유람일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 일출 광경을 꼬마 손진길은 토함산 정상에서 벌써 본 것이다. 그 옛날에는 그 일출을 받아 석굴암 부처의 이마에 박혀 있는 보석이 빛을 발했다고 하는데 그 큰 보석을 일제가 훔쳐가 버려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모두들 아쉬워한다.  

둘째로, ‘경북여객 경주영업소’에 버스를 지입하고 있는 차주들이 일년에 한차례 부부동반으로 여행한다. 그 모임을 선더말 아재가 만들고 매년 아내 고복수와 함께 참여한다. 경주의 부자들이 함께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하고 있으니 그 여행에 참여하고 있는 고복수가 그렇게 좋아한다.

셋째로, 경주에 살고 있는 처족들이 모이는 그 계중에 선더말 아재가 부부동반으로 한번도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한다. 그 계모임에 가는 것을 고복수가 참으로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더말 아재가 말한다; “이번 봄에는 손실에 약물을 마시러 가족이 함께 가고 여름에는 포항에 해수욕을 가도록 합시다. 그동안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고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그 정도의 여유는 가져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선더말 아재는 자녀들에게 ‘근검절약’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화만사성’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생활태도로 보여주고자 한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솔선수범으로 가르치고자 한다. 그의 일상이 그러하다.

매일 새벽에 일찍 잠이 깨면 그 자리에서 오래 명상을 한다. 오늘 처리할 일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것이다. 그 다음에 새벽 6시에 세수를 하고 자전거를 끌고 볼일을 보러 시내로 나간다. 아침식사는 8시에 집에 돌아와서 한다.

아침식사후에 시내에 나가서 종일 업무를 본다. 저녁 6시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7시에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8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러한 생활을 마치 톱니기계처럼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이다. 그러므로 ‘새벽형 인간’이 무엇인지 선더말 아재의 자녀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부친인 손수석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1963년 7월에 손수석의 아내 고복수가 다섯째 아들을 생산한다. 선더말 아재가 참으로 기뻐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말한다; “이 아기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시작하여 잘살게 되는 한국을 만들겠다는 하는 때에 태어났으니 그 이름을 ‘손진희’라고 부르고 싶군요. 당신 생각은 어떻소”;

고복수가 대답한다; “나도 찬성이예요. 그렇게 하세요”. 그녀가 이어서 남편에게 말한다; “그러면 박정희 의장이 말하고 있는 가족계획도 실천해야 하겠군요. 그동안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당신에게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제가 단산을 해도 되겠군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가 순순히 답한다; “정말 수고했어요. 모두가 당신의 공이요. 당신 뜻대로 하시구려, 나는 찬성이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박정희 의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것은 ‘보릿고개가 없는 잘 사는 한국을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