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13(작성자; 손진길)
4. 사업의 확장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1957년에 ‘울산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막냇동생 손수태의 가정을 그동안 한번 방문했다. 딸 ‘손명희’와 함께 젊은 부부가 여전히 신혼인 듯이 잘 지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는 추수를 하자 울산으로 양식을 하라고 쌀 가마니를 열차편으로 보낸다. 동생집은 딸이 아직 아기이므로 3가마니의 쌀만 보내 주어도 충분하다;
그동안 쌀을 잘 받았다는 연락이 없더니 1959년 8월말에 둘째딸이 태어나서 이제는 식구가 늘었다고 하는 내용의 편지가 온다. 선더말 아재는 ‘허허’라고 웃으면서 그해 가을부터는 쌀가마니를 더 많이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1960년에는 여름방학을 맞이한 장남 손진목에게 동생 손진길을 데리고 울산 삼촌댁에 한번 다녀오라고 지시한다.
손수석은 두아들이 열차편으로 언제 울산역에 도착한다고 미리 막냇동생에게 기별해 둔다. 그 덕택에 손진목과 손진길은 울산역에서 손수태 삼촌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국민학교 6학년과 2학년인 두사람은 울산이 처음이다. 특히 울산역에 기차가 들어서자 그들은 그곳에 설치가 되어 있는 큰 기름탱크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옛날 울산역 앞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다음과 같다;
다음날 두사람이 울산에서 경주역에 도착했더니 부친이 마중을 나와 계신다. 사전에 오후 몇 시에 경주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울산에서 타라고 하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그날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넌지시 두아들에게 처음으로 울산에 다녀온 소감을 각각 말해보라고 한다.
장남 손진목은 숙부님 내외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오붓하게 잘 살고 계시더라고 보고한다. 차남 손진길은 울산역전이 경주역전에 비하여 조금 어두운 인상이고 그 규모가 경주보다는 작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선더말 아재는 경주의 인구는 얼마이고 울산의 인구는 얼마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차남 손진길은 자기가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는데 분명히 울산시내가 경주시내보다 작은 규모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서 선더말 아재가 말한다; “그래, 직접 발로 다녀보았다고 하니 그것이 맞을 것이다. 통계수치로는 경주시의 인구가 약 8만명이고 울산읍의 인구가 약 6만명이라고 한다. 경주가 시이고 울산이 읍이니 당연히 아직은 경주시 인구가 더 많다. 하지만 경주는 내륙이고 울산은 항구이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장차 한국의 동해안에서 태평양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를 예상하고 있는 생각이다. 선더말 아재의 예측이 맞아 들어간다. 1961년에 ‘5.16쿠데타’가 발생하고 1962년부터 경제개발정책이 시작이 되는데 가장 먼저 울산에 정유공장을 건설한다고 정부가 발표한다. 석유화학단지를 울산에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그해 6월부터 ‘울산읍’을 ‘울산시’로 승격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울산시는 눈부시게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반면에 경주시는 조용한 역사의 고장에 그대로 머물게 된다.
울산의 공단으로 인구가 몰리게 되자 경주시내에서 점포를 경영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한다. 일찍 울산으로 가서 집과 점포를 마련하고 장사를 한 사람들이 대박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울산시에 전혀 눈독을 들이지 아니한다. 오로지 고향을 중심으로 경주시의 발전사업을 위하여 온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1961년말이 되자 느닷없이 울산에 살고 있던 손수태 부부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경주로 이사를 온다. 무작정 경주시내에 셋방을 얻어 놓고 선더말 아재에게 문안을 하면서 살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이번에 군부에서 학교선생들 가운데 군경력이 없는 자를 교사직에서 물러나게 조치를 하였기에 별 수 없이 경주로 왔다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동생 손수태는 20살의 나이에 경주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니 정부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에게 징병영장을 발부하지 아니한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라고 하면 학도병으로 데리고 갔겠지만 전쟁이 끝난 지 여러 해가 지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군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혁명정부가 하는 일은 그러한 세밀한 사정을 모두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힘이 없는 학교선생이 고향으로 쫓겨올 수 밖에 없다. 그쯤 이해를 하고서 선더말 아재가 동생에게 한 몇 달만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때 손수석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경주시청 앞의 밭을 국가가 수용하겠다고 하므로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상당부분의 토지를 정부가 시세대로 사가면서 한꺼번에 정당한 보상을 한다.
선더말 아재는 그 돈으로 첨성대 앞에 있는 논을 20마지기나 산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주택도 함께 사들인다. 동시에 막냇동생 손수태에게 그 집으로 이사하여 일단 농사를 지으라고 말한다. 손수태가 첨성대 앞에 가보니 집도 좋고 문전옥답이 상당히 비옥하다. 따라서 그는 그 정도의 농토이면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입주한다;
그렇게 첨성대 앞의 집과 논을 구입하고 그것으로 막냇동생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게 해주고 나니 이번에는 천북 화산에서 윗동서 손태호가 찾아온다. 그가 선더말 아재 손수석에게 말한다; “우리 화산 기와공장 옆에 있는 정미소가 매물로 나와 있네. 우리 마을과 이웃마을의 곡식만 도정을 해도 한가정이 먹고 살 수가 있는 사업체이지. 내가 한번 흥정을 해볼 테니 그것을 사두도록 하면 좋겠는데?…”.
선더말 아재가 자신에게 말미를 달라고 그렇게 대답한다. 그 이유는 지금 바로 흥정을 하여 사게 되면 그 관리는 손태호 자신이 맡아서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와공장과 정미소를 모두 운영하게 되니 그 위세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정미소라고 하는 것이 그냥 일꾼에게만 맡겨놓으면 별로 이익이 없는 사업이다. 주인이 직접 일을 해야 인건비를 절약하고 흑자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 그 정미소를 맡기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면서 잠시 흥정을 미루고 있는데 하루는 경주 외곽 보문에 살고 있는 처제 고순옥이 오래간만에 언니집을 찾아와서 통사정을 한다. 보문에 자기들 소유의 전답이 없으므로 남편이 아무리 열심히 날품을 팔고 일을 해도 도무지 저축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 취직이라도 시켜 달라는 호소이다.
고순옥은 결혼한지 2년이 되어도 태기가 없다.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서 평생 늙어가고 있는 홀 시어머니가 속이 탄다. 그 앞에서 고순옥이 전전긍긍을 하다가 말라간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남편 손태석이 교회라도 한번 다녀보라고 권한다. 그래서 작년 한해 고순옥은 보문에서 노동까지 걸어와서 주일마다 ‘경주제일교회’에 출석했다;
아직 태기가 없자 이번에는 언니 고복수에게 남편의 일자리를 좀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저녁에 집에 와서 그 말을 들은 선더말 아재는 그것도 사업과 사람이 맞아 들어가는 운수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천북 화산에 들러 윗동서 손태호에게 그 정미소를 살 테니 한번 흥정을 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문에 찾아가서는 아래동서 손태석에게 자신이 정미소를 사주면 그 운영을 직접 할 수가 있겠는지를 물어본다.
손태석이 적극적으로 말한다; “형님, 그 정미소만 사주시면 제가 기계를 전부 수리하고 제대로 운영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일찍이 정미소에서 일꾼으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염려 마시고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당사자가 적극적인데 그 옆에서 처제가 덧붙여서 말한다; “형부, 정미소만 사주시면 저희들 걱정을 더이상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 식구가 넉넉하게 먹고 살 수가 있을 거예요, 저도 열심히 함께 일할 거예요”.
그러한 속내를 모르고 손태호는 자신이 정미소까지 운영하게 되는 줄 지레 짐작을 하고서 적극적으로 흥정을 진행한다. 그래서 1962년초에 선더말 아재가 천북 화산의 그 정미소를 사서 보문에 살고 있는 아래동서 내외에게 경영을 위탁한다. 그들이 화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손태호가 ‘껄껄’ 웃는다. 가난한 동서가 정미소라도 맡아서 살게 되었으니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가 1962년 봄부터 ‘경북여객 경주영업소’의 총무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여름에 정산을 해보니 투자에 비해서 수익율이 참 좋다. 함께 참여한 전주들이 대만족이다. 그 결과 다른 노선을 개척하여 경주일원에 그들의 버스가 더 많이 달리게 된다. 그러자 버스의 운전수와 조수 그리고 차장이 차주인 손수석의 집에 몰려든다. 그들을 가정집인 선더말 아재의 집에 수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손수석이 적당한 가정을 물색한다. 그들 운전수와 조수 그리고 여차장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을 찾는 것이다. 그때 마침 같은 월성 손씨의 딸네 가운데 월남한 남자와 결혼을 한 젊은 부인이 있다. 자신의 남편이 운전경력이 있으니 취직을 시켜 달라고 일부러 ‘경북여객 경주영업소’를 찾아온다. 선더말 아재가 그들 부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성실한 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손수석이 제안을 한다; “경주시내에 내가 큰 집을 한 채 구해서 편히 살도록 해드리면 남편인 한기사는 나의 버스를 운전하고 일가인 부인은 조수와 여차장 등을 위해서 하숙을 칠 수가 있겠어요?”. ‘한영석’ 기사의 부인인 ‘손영주’는 즉시 그렇게 하겠다고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래서 그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18세의 청년이 선더말 아재가 배차를 하고 있는 영업소로 찾아온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한다; “저는 영덕에서 온 청년 ‘이만웅’이라고 합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지금까지 고향에서 품꾼으로 일을 했는데 장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주시내에 와서 운전일을 배워서 저도 운전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부디 길을 열어 주십시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이만웅’ 젊은이의 인상을 보니 참으로 단단하게 생겼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을 하고 반드시 운전기사가 될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좋다고 말하면서 그를 거두어 황오동 집으로 데리고 간다.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번 버스 일을 열심히 배워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숙식비를 공짜로 해줄 터이니 적은 조수 월급이라도 모아서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 드리라고 말한다.
손수석이 이만웅을 보니 자신이 일본에서 고생하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따뜻하게 배려를 해주고 있다. 그때쯤 선더말 아재의 황오동 집에는 객식구가 늘어나 있다. 천북과 경주를 자주 오가고 있는 윗동서 손태호가 자신의 장남인 ‘손임락’을 경주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이제는 아예 동서의 황오동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1961년부터 장남 ‘손진목’과 동갑인 ‘손임락’이 이종형제끼리 함께 황오동에서 ‘경주중학교’를 다니게 된다;
객식구가 증가하게 되자 부엌일을 책임지고 있는 호야가 안방마님 고복수에게 어려움을 토로한다.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복수가 팔을 걷어 부치고 함께 일을 나누어서 한다. 그렇지만 역시 일이 많다. 하루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사업을 확장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객식구가 늘어나니 호야도 그렇고 저도 힘이 들어요…”.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한다; “옛말에 객식구가 모이는 집에 먹을 것이 많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중에 신세를 진 집에 복을 가지고 온다고 했으니 그렇게 알고 즐겁게 함께 살도록 합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객식구가 찾아오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랍니다”.
그 말을 듣자 고복수는 더이상 할말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주에서 내노라 하는 부자 선더말 아재의 부인으로 살고 있으니까 친정 조카까지 몸을 의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더말 아재의 살림이 불어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1962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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