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1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7. 21:39

선더말 아재11(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1959년 가을에 처가 쪽의 불상사를 겪으면서 사람을 하나 잘못 들이게 되면 온 집안에 큰 불행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좀 신경을 쓰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공직생활에 바빠서 또 퇴근한 후에는 여러가지 사업일로 분주해서 거의 방임을 하다시피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한 결심을 하고 있는데 마침 월성국민학교 1학년인 차남 손진길이 가을 학예회에 나간다고 한다. 아내 고복수는 신이 나 있다. 담임 박 선생이 요구하고 있는 제비 복장을 만들어 아들에게 입히고 날개까지 만들어서 달아준다. 손진길이 그 옷을 입고서 1학년 학생들 가운데 선발된 인원이 참여하고 있는 학예회에 나가는 것이다;

학예회의 연극이 언뜻 보아서는 ‘흥부이야기’ 같다. 제비로 분장하고 있는 남학생이 두명이다. 서로 반이 다른데 한명은 ‘황일순’이고 또 한명이 ‘손진길’이다. 그 두 남학생이 똘똘하게 생겼기에 선생들이 비록 조연이지만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그 두 아동은 서로 초면이다. 그 학예회 이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아예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13년의 세월이 지나 같은 대학교 같은 전공에서 동창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학예회가 끝나고 함께 찍은 그 단체사진 때문이다. 서로가 그 사진을 오래 앨범에 보관하고 있었기에 먼 훗날 그들이 국민학교 1학년 학예회를 함께 참여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꼬마 손진길은 본래 음치에 몸치이다. 그러므로 율동이라고 하면 딱 질색인 아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이 그 역할을 맡기고 모친이 그렇게 하라고 적극 권하고 있으므로 어른들에게 실망을 시키지 아니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그의 성품인가 보다. 훗날 그러한 성품 때문에 손진길은 엄청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1959년 가을에 신입생인 1학년 아동들이 전교생과 학부형을 모아 놓고 벌이는 일종의 재롱장치인 ‘가을 학예회’가 성황리에 끝난다. 그날 선더말 아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잠시 관람한다. 이제부터 아들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때에 제공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학예회가 끝나자 손수석은 부인 고복수와 장남 손진목 그리고 차남 손진길을 데리고 노동에 있는 ‘여화만두집’으로 간다. 중국사람이 주인이라고 하는 그 만두집은 당시 경주에서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선더말 아재는 그동안 가족들에게 한번도 그 음식 맛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생각나서 모처럼 가장 맛있는 만두를 많이 시켜서 먹게 한다. 그 기가 막힌 ‘찐 만두’와 ‘군 만두’의 맛을 훗날 자식들이 평생 잊지 못하게 된다;

선더말 아재는 다음달이 되자 아내 고복수로부터 장남 손진목이 월성국민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5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므로 회장과 부회장을 한 조로 일찍 선출하여 현재 6학년인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으로부터 직무를 인수인계 받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복수는 자신이 아끼는 장남 손진목이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서는 것을 마치 자신이 출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참으로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회장단 선거의 열기는 대단하다;

그 모습을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다. 장남이 교내에서 어느 정도로 신망을 얻고 있는지를 차제에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모자가 함께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손진목 후보의 조가 2등으로 떨어지고 만다. 월성국민학교에서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하고 있던 손진목은 엄청 실망한다.

그러나 모친 고복수는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는다. 아깝게 떨어진 것이니 합격한 것이나 진배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장남은 다시 기가 살아난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 선더말 아재는 어느 날 그 유명한 중국집 ‘열래춘’에 부탁하여 특별히 ‘청요리’를 집으로 배달시킨다.

그 중국집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경주법원과 월성군청 그리고 경주소방서와 경주경찰서의 손님만 해도 가게가 차고 넘친다. 그러므로 그들 관공서에는 점심시간에 배달을 하지만 일반가정에는 배달하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멀지 아니한 노동집으로 특별히 배달을 해달라는 정보계장 손수석의 부탁을 한번 들어준다.

‘열래춘’의 ‘짬뽕’은 그 맛이 참으로 대단하다. 경주에서 제일이라고 하는 그 명성이 헛소문이 아니다. 그 맛을 본 아이들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짬뽕’도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손수석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자녀들이 잘 자라나서 훗날 손주들에게 그렇게 맛있는 요리 맛을 보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한 행복을 후세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하여 자신이 장차 공직을 벗고 경제개발을 위한 사업에 투신하고자 한다.

그렇게 1950년대를 끝내면서 새로운 1960년대를 응시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다. 그런데 그가 원하고 있는 시대가 쉽게 오지 않는다. 1960년 4월에 대규모 학생시위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및 하와이 망명이라고 하는 정국의 불안과 비상사태가 먼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립이 되는 제2공화국에서는 과연 경제개발에 진력을 할까? 그것이 선더말 아재의 관심사항이다.

1960년에 야당이 집권하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헌법을 고쳐서 대통령을 명예직 국가원수로 하고 실권은 내각의 수반인 국무총리가 쥐게 되는 일종의 내각책임제로 제2공화국을 시작한다. 그런데 초반부터 두가지 문제에 걸려서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개인적으로 민주당 구파를 이끌고 있는 윤보선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좋지만 실권이 없으므로 신파를 대표하고 있는 국무총리 장면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들의 출발은 그림과 같이 좋아 보이지만 속내는 그러하지가 못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10년 이상 영도적인 대통령 중심제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의식이 새로운 정치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신파와 구파가 서로 견제하기에 바빠서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개발하거나 수행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학생세력들이 자신들의 공로로 정권이 바뀐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세상에 학생의 데모로 정권이 바뀐 역사가 사실은 없다. 한국에서의 그 예외적인 경우는 은밀하게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제2공화국이 시작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세력들의 입김이 너무 강한 것이다;

학생이란 아직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연령층이다. 그들이 국정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제2공화국이 국민들에게 불안한 정권이며 약체로 비치고 마는 것이다.

그 두가지 요인 때문에 선더말 아재는 제2공화국의 장래가 심히 불안하다. 사회적인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조직에 몸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미래전망이 불확실하므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공무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서 경주시내를 한바퀴 돌아본다. 자신의 직책이 정보계장이므로 그것은 직무상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경주중심지가 아니라 경주역에서 불국사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팔우정과 황오동 지역을 정찰하기를 좋아한다. 그곳에 처가의 일족들이 많이 살고 있고 서울에서 이주한 최민호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경주시내 중심지에서 듣지 못한 여러가지 정보들이 있다.

그 가운데 일본 북해도에서부터 친한 동지인 고민달이 선더말 아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하루 종일 소달구지를 끌고서 남의 짐을 운반해주고 있으므로 경주 시내의 지리와 부동산의 시세변동에 대하여 상당히 밝다. 그는 선더말 아재를 볼 때마다 이제는 시골이 아니라 경주시내의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선더말 아재는 딴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면 그렇게 긍정적으로 듣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고생을 함께한 고민달 동지의 이야기이다. 더구나 그는 경주시내에 살고 있는 아내 고복수의 친척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경주시내의 매물을 보러 다닌다.

그 결과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1960년 가을에 큰 결정을 내린다. 고민달의 집 가까이에 있는 매물 가운데 큰 집을 한 채 구입한 것이다. 황오동의 작은 봉황대 근처에 있는 그 기와집은 노동집에 비하면 10배 정도의 규모이다. 물론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 기와집에 딸려 있는 밭이다. 그 저택을 구입하여 여러 달 수리를 한다;

1960년 말에 손수석은 그 황오동 집으로 이사한다. 장남 손진목은 벌써 월성국민학교 6학년 과정이 끝났으므로 ‘경주중학교’로 진학시킨다. 그리고 차남 손진길은 국민학교 2학년 과정을 마쳤으므로 경주 ‘황남국민학교’로 전학시킨다. 그는 새학기가 되면 월성국민학교가 아니라 이제는 경주 황남동에 있는 국민학교에 3학년으로 다니게 될 것이다;

안방마님인 고복수는 훨씬 큰 규모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니 그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엌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호야는 그것이 아니다. 집이 넓어지면 장차 객식구가 많아지고 청소를 해야 할 면적이 넓어지니 걱정이다. 그러자 안방마님 고복수가 호야에게 말한다; “호야 너 혼자서 힘들면 내가 네게 조수를 한사람 붙여주면 되겠네. 그렇게 해줄까?...”. 호야는 아직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한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큰 결심을 하고 팔우정 노타리 근처로 이사를 한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노동의 집이 좁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자라고 있으므로 더 많은 방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경주시내에 인구가 많아지고 있으므로 외곽이 발전되고 있다. 그러므로 손수석은 고민달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팔우정에서 서쪽으로 가는 지역에 투자를 한 것이다. 시청 앞에 있는 밭을 많이 구입했다;

그 가운데에는 큰 ‘미나리 깡’도 있다. 그것을 관리하기에는 황오동에 사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그렇게 팔우정 근처로 이사하여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사업가로서 변신을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선더말 아재이다. 그가 언제 공직을 벗고 활발하게 사업가로 나서게 되는 것일까? 그 시기는 한국정치에 있어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그 다음이 된다.  

손수석은 그 사건이 국내적으로 발생할 때까지 여전히 성실하게 경주경찰서 정보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매일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로 출근한다. 그리고 정시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만년 고참계장을 지내고 있으니 동기와 후배들이 그에게 편의를 보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차피 오래 있지 못하고 옷을 벗을 사람이니 잘 대해주자는 심정일 것이다. 직장의 눈치가 그러하므로 손수석도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새해가 되자 장남 손진목은 팔우정의 동쪽에 있는 경주중학교에 자전거를 타고서 등교한다.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교내에 자전거 보관장치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선더말 아재가 입학식에 참석해보니 강당이 크고 좋다. 일찍이 교육투자를 한 선각자의 공로가 엿보이는 ‘경주중학교’와 ‘경주고등학교’이다;

여러 해 전에 선더말 아재는 자신의 막내동생인 손수태가 그 학교를 다녔으므로 그 학교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차남인 손진길은 새학기가 되자 신나게 ‘황남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 잘 다니고 있다. 황오동 집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함께 걸어서 등교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특히 그는 집 옆의 보리밭을 지나 그 건너편 쌀집에 살고 있는 임씨 네 아들과 친하다. 그리고 집 앞 밭에 맞붙어 있는 기와집의 주인 최교장의 아들과도 친하다. 같은 학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1년에 선더말 아재는 7살인 삼남 손진학을 역시 ‘황남국민학교’에 입학시킨다. 3월 11일생이므로 한 열흘 먼저 국민학교에 입학을 시키는 셈이다. 제법 키가 크고 덩치가 있으므로 능히 신입생이 되어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교장도 그 정도의 편의는 재량행위로 보아주고 있다. 특히 그 지역의 국민학교를 감독하고 있는 장학사가 노동에 살 때 친한 김 장학사이므로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조치들을 하고 있는 사이에 1961년 봄이 서서히 지나가고자 한다. 차남 손진길은 바로 밑의 동생인 손진학의 손을 잡고 나란히 등교를 한다. 형제가 함께 등교를 하는 모습이 부모가 보기에 좋다. 그리고 손진길은 학교공부에 열심이다. 전학을 하고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니 심기일전하여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손진길은 학교를 다녀와서 일찍 숙제를 끝내고 있다. 그리고 이웃집에 놀러가지를 아니하고 예습까지 하고 있다. 어째서 그가 그렇게 악바리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선더말 아재는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아니다. 그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한다. 특히 사회책을 좋아한다. 아예 사회책의 내용을 줄줄이 암기하고 있다.

하루는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불이 되지를 못하여 세계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가난한 나라와 함께 꼴찌에 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못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학생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월성국민학교 2학년을 마칠 때에 그 성적이 반에서 10등 정도인데 앞으로 그 성적이 어느 정도 향상이 될 것인가? 선더말 아재는 그것이 궁금하다.

그 대신에 아내인 고복수는 그것이 아니다. 장남인 손진목만 공부를 잘하면 되는 것이니 차남인 손진길은 자신을 도와 집안일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차남이 조금만 쉬고 있는 것을 보면 즉시 불러서 밭주위에 가서 토끼풀을 베어오라고 한다. 또는 작은 방에 군불을 지피라고 한다.

그런데 차남은 그러한 모친의 생각을 알고서 미리 대비를 한다. 아예 방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시킬 수가 없다. 그 대신에 그러한 집안일을 돕고 있는 아들은 삼남인 손진학이다. 나이에 비해서 키가 크고 일을 잘한다. 그래서 고복수는 아예 삼남인 손진학을 자신의 조수처럼 부리고 있다. 토끼풀은 물론이고 닭모이를 주고 군불을 때는 일을 전부 그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과연 삼남 손진학은 언제 학교공부를 하려는가? 방안에 틀어박혀서 공부를 하면서 손진길은 동생의 학업이 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자기공부가 바빠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에 1961년 5월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면 과연 선더말 아재의 집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