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18(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1964년 여름부터 ‘경북상호신용금고’의 총무가 되어 특히 대부업무를 총괄하는 실무책임자로서 굉장히 바쁘다. 아무리 담보를 받고서 대부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신용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따라서 손수석은 시장 상인들 및 소규모의 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에 상당히 바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선더말 아재는 계속 농촌지역인 천북 화산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경주시 성건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가축시장을 자주 방문하여 소의 시세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정부에서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서 그런지 국민소득이 제법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쇠고기 소비가 늘어나면서 소의 값이 오르고 있다. 그 추세가 계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동향을 읽고 있는 선더말 아재가 자신의 전답을 소작하고 있는 농가에 대대적으로 제법 큰 암소와 암송아지를 쌍으로 사서 맡기고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시골에서 일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소인 암소가 새끼를 낳고 있으므로 농가에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소작농가에서 지주인 선더말 아재에게 자신들의 집에도 소를 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소주인과 소를 맡아서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와의 소득분배는 철저하게 반반이다. 보통 이삼 년 소를 먹여서 살이 찌면 가축시장에 내다 팔게 된다. 소값에서 원금을 제하고 남는 이익을 서로 절반씩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소주인이 다시 암송아지를 사서 그 소작농에게 맡긴다.
이삼 년 전에 사준 암송아지가 벌써 어미소가 되어 일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소가 송아지를 낳게 되면 그 권리의 절반은 지주의 것이고 그 나머지는 소작농의 몫이다. 따라서 송아지가 쌍둥이로 태어나는 경우에는 소작농이 횡재를 한다;
한 마리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쌍둥이 출산의 비율이 사람의 경우처럼 소는 그렇게 높지가 못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농가에서 재산 제1호가 집과 전답이다. 그리고 제2호가 소이다. 그 정도로 소는 농사를 짓는 큰 일꾼으로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흔히 소를 팔아서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골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사업 밑천을 대주거나 계속 학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소 뿐만 아니라 농지를 팔기도 한다.
그러한 농촌의 형편을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시골인 내남 너븐들 출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지주들보다 소작료를 조금 덜 받고 있다. 그에 따라 지역의 농민들이 가급적이면 선더말 아재의 전답을 소작하고자 한다. 그러한 분위기이므로 지주인 손수석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고 있는 화산의 윗동서 손태호도 기분이 좋다.
또한 손수석은 소작인의 자녀들 가운데 특출한 인재가 있으면 은밀하게 그 뒤를 봐주고 있다. 자신이 조모인 서배 할매 이채령의 그러한 배려로 뛰어난 인물로 자라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례를 알고 있는 소작인들이 가끔 자녀의 학자금이 부족할 때에는 지주인 선더말 아재를 찾아오기도 한다.
지주의 입장에서는 크게 흉년이 들거나 가축에 대한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면 수입이 격감하게 된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재산은 불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지난 10년간 고향과 천북 지역에 전답을 많이 사서 소작을 주고 또 60년대에 들어서서 소를 더 많이 사서 농가에 맡기고 있는 동안에 그러한 불상사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의 재산이 자꾸만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운수가 좋아서 재산이 불어난 집안을 ‘알부자’ 또는 ‘부엉이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선더말 아재의 부동산서류를 전적으로 맡아서 등기해주고 여러가지 서류를 대서해주고 있는 전담 사법서사는 은근히 경주지역에서 손수석이 제일 ‘알부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대놓지 발설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손수석이 그러한 소문이 새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담 사법서사는 자신의 고객 특히 손수석의 재산에 대한 비밀을 엄수하는 조건으로 부동산등기 등의 일을 맡아서 독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1964년 가을에 경주 황남국민학교 교장이 선더말 아재 손수석에게 교장실을 방문해달라고 연락한다. 손수석이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제 시간에 찾아간다. 당시의 교장은 손수석과 친한 지인이다. 그가 바로 노동동에서 이웃하여 살던 장학사 김상협이기 때문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또 한사람의 학부형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는 6학년 김현수의 부친이다.
김상협 교장은 두 학부형을 자리에 앉게 한 다음에 말문을 연다; “김현수 학생과 손진길 학생이 6학년 졸업반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평소의 학업성적은 김현수가 전교 1등입니다.. 손진길 학생이 2등이고요. 그런데 봄과 가을에 시행한 국어 및 산수 일제고사에서는 손진길 학생이 전교 1등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모교의 명예를 빛내기 위하여 두 학생을 대구에 있는 ‘경북중학교’ 입시에 보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두 학부형은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그래서 김교장에게 묻는다; “만약 저희 아들이 대구의 ‘경북중학교’에 입학을 하고자 시험을 치게 되면 합격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입니까?”. 김교장이 대답한다; “제가 아는 한 지금까지 경주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경북중학교’ 입시를 치루어서 합격한 사례가 없어요. 그것은 다분히 학부형들이 자녀들을 그냥 ‘경주중학교’로 보내고 대구의 최고 명문인 ‘경북중학교’로 보낼 엄두를 내지 아니했기 때문일 거예요”.
두 학부형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한다. 그러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먼저 결단을 내린다;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한번 시도를 해보고자 하시니 저는 그 말씀에 따르고자 합니다. 한번 그렇게 큰 시험을 치루어 보는 것이 긴 안목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시도조차 아니하는 것은 후회가 될지 모릅니다”.
그 말을 들은 김현수의 부친이 말한다; “손진길 학생의 부친께서 그렇게 결단을 하시니 저도 한번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합격여부는 자식놈의 실력과 운에 달려 있겠지만 전교 1등이라고 하니 한번 도전해보아야 하겠지요”. 그 말을 들은 김교장이 참으로 기뻐한다. 그래서 6학년 전체를 맡고 있는 학년주임을 불러서 자세한 입시절차를 설명하고 전적으로 도와드리라고 지시한다.
1965년 1월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차남 손진길을 데리고 대구로 간다. 물론 ‘경북여객’을 이용하여 대구 ‘신암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남산동으로 간다;
작년부터 장남 손진목이 그곳 손 여사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경북중학교’ 운동장을 찾아간다. ‘예비 소집일’이기 때문이다.
수험번호를 받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더말 아재는 괜히 기분이 좋다. 차남이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가장 명문인 ‘경북중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입학시험을 잘 보라고 격려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과일가게에 들러 당시 가장 비싼 과일인 바나나를 사서 먹으라고 준다. 손진길은 평생 처음으로 바나나 맛을 본다. 그것이 참으로 향긋하고 달다. 세상에는 이런 과일도 있구나 놀란다;
입학시험 날이 일요일이라 형 손진목이 동생을 데리고 시험장에 간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이번 시험에 보기 좋게 합격을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치룬다. ‘학과시험’을 잘 본 것 같다. 하나나 둘 정도 틀린 것 같고 나머지는 모두 정답을 맞춘 것 같다. 이제는 오후에 있는 ‘체력장시험’만 잘 보면 된다. 그는 이왕이면 만점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운동장에 도착하여 연습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막상 턱걸이 시험을 보는데 그만 연습을 사전에 무리하게 했기에 10개 만점인데 2개밖에 하지를 못한다. 평소 그는 12개를 거뜬하게 하는 체력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그런가? 그는 자신이 참으로 멍청이라고 생각한다. 학과성적으로 보아서는 그 정도이면 합격선 안에 든다. 그러나 체력시험에서 엄청 실수를 하였기에 낙방이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선더말 아재와 장남 손진목은 기가 찬다. 손진길이 똑똑한 줄 알았더니 세상일을 아무 것도 모르는 신출내기이기 때문이다. 손수석은 자식의 잘못과 실패가 부모의 것인 줄 알고 입을 다문다. 그러나 장남인 손진목은 그것이 아니다. 동생이 미련하고 정신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을 하면서 한대 쥐어 박는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자 손진길은 2차로 ‘대구중학교’에 응시한다. 그리고 경주 집으로 돌아가서 그 발표를 기다린다. 발표 당일에 손진길은 직접 결과를 보고자 대구에 가려고 한다. 그때 식전에 볼일을 보고 들어오던 부친 손수석이 엄히 말한다; “내가 오늘 일찍 대구중학교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길이 너의 이름을 대고 합격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불합격이라고 한다. 그러니 너는 대구에 갈 필요가 없다”.
손진길이 아연실색을 한다. 그는 자신이 2차인 ‘대구중학교’에는 떨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대구에 가서 직접 합격자 발표 게시판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선더말 아재의 반응이 냉담하다. 전혀 차남을 대구로 보내려고 하지를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선더말 아재는 차남 손진길이 ‘경북중학교’ 입시에서 낙방을 하자 황남국민학교의 김교장과 벌써 상의를 했다. 김교장의 실망이 크다. 학교를 대표하여 보낸 두 학생이 모두 낙방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두 학생이 재수를 하여 다시 한번 도전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김현수의 부친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더말 아재는 반대한다. ‘경북중학교’를 들어가고자 재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 손진길이 2차인 ‘대구중학교’에 입학하고자 시험을 치르는 것을 허용했다. 합격을 하면 당연히 대구에서 형과 함께 하숙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면 경주집에는 자녀로서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삼남 손진학과 딸 손정애 그리고 어린 손진웅과 손진희만이 남게 된다. 선더말 아재가 믿고서 잔 심부름이라도 제대로 시킬 아들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단을 내린다.
이번에 ‘경북중학교’ 입시에 떨어졌으니 3년후에 ‘경북고등학교’ 입시를 치면 된다. 그동안 경주집에서 부친인 자신을 도와서 집안일을 좀 배우는 것이 좋겠다. 장남과 차남 가운데 하나는 그렇게 애비의 일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선더말 아재는 차남이 2차 입시를 치르는 것만 허용하고 그 다음에는 당락과 상관없이 경주에 남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는 경주에 있는 남자중학교 가운데 가장 꼴찌인 중학교를 선택하여 차남 손진길을 그곳에 보결로 입학시키고자 시도한다. 1965년 2월 중순에 차남 손진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더니 그 꼬마 놈이 애비 말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죽어도 자신은 재수를 하여 ‘경북중학교’에 다시 응시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은 갑자기 화가 난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일본 동경에서 혈혈단신으로 고학을 했다. 야간직업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했는데 자식 놈은 삼류 중학교에는 아예 입학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말이 안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서 차남을 엄청 패고 만다;
경찰관 생활을 오래하고 전투를 많이 치룬 선더말 아재이기에 주먹이 매섭기 그지없다.
그 추운 겨울날 방안에서 부친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손진길은 이를 악문다. 생전처음으로 아버지로부터 얻어 맞은 그다. 주먹으로 맞은 몸이 아픈 것보다 입술에 피가 나는 것보다 더 아픈 상처는 부친에게 엄청 자신이 값어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주먹질을 한 다음에 선더말 아재가 차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을 무심코 하고 만다; “우리집에서는 공부를 잘하여 먹고 살거나 아니면 일을 잘하여 먹고 살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너는 ‘경북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으니 이제는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여 먹고살 생각을 해야 한다”.
13살 어린 아들에게 있어서 그 말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고 모진 말인지 그때 선더말 아재는 전혀 알지를 못했다. 자신이 참으로 어려운 가정환경 가운데 입신하고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만 아들의 입장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차남 손진길에게 더 모진 명령을 내린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내남 너븐들에 가면 너하고 학년이 같은 일가인 손진수가 있다. 진수가 이번에 경주 ‘문화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친형을 따라 부산에 간다고 한다. 그에게는 이제 그 ‘합격증’이 필요가 없지만 길이 네가 그래도 조금 떳떳하게 문화중학교에 보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고 너븐들에 가서 그것을 받아 오너라”.
손진길은 악심이 나서 결코 내남 너븐들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손수석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자 한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촌누나 손화련이 삼촌을 말린다. 그러면서 말한다; “숙부님. 제가 길이를 데리고 내남 너븐들 고향에 가서 손진수에게서 그 합격증을 받아서 올께요. 그러니 그만하세요”. 차남인 손진길보다 6살이 많은 질녀가 그렇게 말하자 그때서야 선더말 아재는 화가 풀리는지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여비를 주고서 나간다.
그날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아들에게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아내인 고복수는 왜 말리지 아니한 것일까? 손진길은 하는 수가 없이 사촌누나를 따라 그 추운 2월에 이조천변을 건너서 너븐들로 간다. 그리고 참으로 창피스럽게 손진수를 만나 그 ‘합격증’을 얻는다. 옆에서는 화련이 누나가 동행하고 있다. 그때 그는 결심을 한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입학시험에서 실패란 없다.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는지 두고 보아라. 나도 반드시 자수성가하여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
13살에 벌써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는 손진길이다. 그가 들어간 경주의 ‘문화중학교’는 생긴 역사가 일천하다. ‘부례문’이라고 하는 선교사가 교실 몇 동을 가지고 중학교와 종합고등학교를 시작했는데 그는 벌써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그 후임으로 한국인 선생 ‘최영래’가 교장을 맡았는데 그는 수완이 좋고 외교에 상당히 능하다. 자주 미국을 방문하여 교회계통에서 후원금을 받아 오는데 그것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 학교는 자꾸만 커지고 있다.
최교장은 ‘미션 스쿨’로 ‘문화중학교’와 ‘문화고등학교’를 육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교목을 두고서 기독교신앙교육을 학생들에게 열심히 시키고 있다;
매주 강당에서 채플 시간이 있다. 그리고 하루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교실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 결과 선더말 아재의 집안에서 예기치 아니하게 기독교인이 탄생하고 있다. 차남 손진길이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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