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2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8. 23:09

선더말 아재23(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가 동경의 안춘근의 집에서 이틀 머물고 오사카로 가려고 하자 안춘근이 따라나선다. 그는 손수석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에 함께 여행을 하고자 작심을 한 모양이다. 손수석도 좋다고 한다. 그도 일본에 대한 경제지식이 탁월한 춘근이 형과 동행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오사카에 살고 있는 배인근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동경역에서 빠른 열차 곧 ‘급행’으로 오사카의 역에 도착한다. 참고로, 1964년에 일본은 올림픽을 위하여 동경과 오사카 사이에 가장 빠른 고속열차인 ‘신간센’을 설치하여 운행했다 그 모습이 다음과 같다;

그들이 오사카에서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배인근이 경영하고 있는 ‘우동 가게’이다. 물론 그 가게에는 이제 배인근 부부가 없다. 그들의 나이가 60대가 되었으니 진작에 은퇴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기를 느낀 선더말 아재와 안춘근이 그 우동가게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정종을 조금 마신 다음에 배인근이 살고 있는 저택을 찾아간다.

마침 배인근 부부가 집에 있다. 작년에 진갑을 지낸 배인근이 두사람의 손을 하나씩 잡으면서 말한다; “동생들아, 어떻게 형이 작년에 진갑을 지내는지도 모르고 이제서야 찾아들 오는가? 야속하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네들이 보고 싶었다고…”. 그 말을 하고 있는 배인근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안춘근과 손수석이 함께 배인근을 꼭 껴안는다.

함께 한참 눈물을 흘리다가 안춘근과 손수석이 배인근의 아내인 형수를 보고서 깍듯이 인사한다. 배인근의 부인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살다가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구나 싶어서 그러하다. 4사람이 함께 거실에 들어가서 다과를 나누면서 그날 오후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먼저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말한다; “두 분 형님을 함께 뵙게 되니 제가 1937년말에 처음으로 두 분과 함께 오사카를 찾아오던 그때가 불현듯 생각이 납니다. 벌써 27년이나 지났는데 마치 엊그제와 같군요. 산천은 의구한데 저희들만 늙었는가 봅니다…”. 그러자 배인근이 말한다; “허허, 아직 늙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지. 자네들과 나의 마음이 그 옛날과 같이 서로 의형제로 변함이 없지 않는가?...”.

그 말을 듣자 안춘근이 말한다; “인근이 형, 그렇고 말고요. 동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나 비로소 한국에서 아우가 저를 찾아 왔을 때 저도 무심하게 흘러간 세월이지만 저희들의 그 마음만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었는 걸요. 그래서 이렇게 함께 인근이 형님을 보자고 오사카로 찾아온 것입니다”.

배인근 부부가 동시에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리고 배인근이 말한다; “그래 그 긴 세월 어떻게들 지내셨는가? 우리 부부는 재작년까지 우동가게를 운영하다가 은퇴를 하고서 이 저택에서 그대로 살고 있지. 우리 아이들은 다 성장하여 큰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그들도 자식들을 낳아 시내에서 잘 살고들 있어. 그러니 이 넓은 집에 우리 늙은 부부만이 살고 있는 셈이야”.

그 말을 들은 안춘근이 말한다; “형님, 저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에 쌀장사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큰 회사에 취직을 하고 스스로 집들을 사서 따로 나가서 살고 있지요. 우리들은 쌀가게나 우동가게를 하면서 살아 왔는데 이제 그들은 중공업이나 중화학에 종사하고 있지요.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파는 것이 더 이문이 큰 시절이 되었어요”.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말한다;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나면서 일본이 다시 엄청나게 발전을 했군요. 한국은 이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이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니 나중에는 한국도 지금의 일본처럼 되겠지요. 아직은 아닙니다마는…”. 참고로, 1960년대 중반 한국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그러자 배인근 부부와 안춘근이 동시에 말한다; “맞아, 그렇게 되어야지. 우리 부모님들도 조국의 친척들과 그 자손들이 그렇게 잘 살게 되기를 바라실 것이야”. 역시 국적은 달라졌어도 핏줄을 무서운 모양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님들이 조선사람들이었으니 아직도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래서 손수석이 말한다; “나중에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관광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게 되면 그때에는 부부동반으로 경주를 방문하세요.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세사람은 그렇게 하자고 대찬성을 한다.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한 다음에 손수석과 안춘근이 그 집에서 일박을 한다. 하도 방이 많은 집이라 각방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손수석은 들고 온 가방에서 메모를 한 장 꺼낸다. 그 종이에 일가인 ‘현동 양반’이 살고 있는 집주소와 그의 복덕방 주소가 적혀 있다. 손수석은 일본에 오기 전에 경주 변두리에 살고 있는 현동 양반의 처자식을 찾아가서 그 주소를 받은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그의 처자식이 일본에 살고 있는 가장인 부친과 연락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현동 양반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둘째 아들이 상당히 똑똑하다. 그는 지방신문의 기자가 되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그 이름이 ‘손창익’이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부친을 찾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 결과 한일수교가 되자 드디어 부친의 주소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우편으로 절절한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선더말 아재는 내일 혼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일가 조카인 ‘현동 양반’을 방문하고자 생각한다. 그래서 그 주소를 다시 다른 메모지에 옮겨 적은 후에 지갑 속에 잘 갈무리를 한다;

그리고 불을 끄고서 잠자리에 들면서 가만히 궁리를 한다. 이제 ‘현동 양반’을 만나면 그를 설득하여 한국기업에 투자를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찬성한다면 이곳에서부터 일본돈을 받게 된다. 그 돈을 어떻게 한국에 은밀하게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을까? 내일은 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아직 묘안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는 다다미 방에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에 손수석이 식사를 하면서 말한다; “두분 형님, 오늘 저는 옛날 북해도에서 함께 일하던 일가 친척을 만나고자 합니다. 한나절이면 그를 만나고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두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안춘근이 말한다; “동생, 혼자서 잘 다녀오게나. 나는 오늘 형님 내외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네. 그리고 이곳 오사카에는 내가 만든 회사가 있어서 오후에는 한번 들러 보아야 하네”.

그때서야 선더말 아재는 안춘근이 재벌이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는 동경에서 벌써 손수석에게 자신이 만든 냉동회사가 오사카에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손수석은 혼자서 오사카 시내로 나선다. 오사카도 동경 못하지 아니하게 발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한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빈민촌에 속하고 있다. 재일교포들에게 먼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조선말로 된 플랜카드를 볼 수가 있다;

‘현동 양반’이 경영하고 있는 복덕방은 오사카 한인촌과 도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주소를 가지고 그 사무실을 찾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이가 든 손진동이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석을 맞는다. 그러면서 의아한듯이 묻는다; “혹시 저희들이 그 옛날에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 모습이 마치 제 친척인 아재와 같습니다만…”.

일본말로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현동 양반’에게 손수석이 반갑게 인사한다; “현동 양반, 맞아요. 우리는 젊은 시절 북해도에서 함께 지냈지요. 그리고 일가이고요. 내가 선더말 아재 손수석입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손진동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덥석 손수석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수석이 아재, 이게 도대체 얼마만입니까? 20년이 지나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마침 복덕방에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서 이제는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현동 양반, 경주에 살고 있는 처자식은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일본에 오기 전에 방문을 했어요. 내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했지요”. 말을 하면서 손수석이 안쪽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그에게 전해 준다.

현동 양반은 한국말로 적혀 있는 그 편지를 소중하게 손에 들고서 읽어본다. 그리고 나서 그 편지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한다; “아재, 참으로 고맙습니다. 제 처자식이 내가 20년 전에 준 돈으로 경주시내에 나와서 잘살고 있다고 하는 내용이군요. 모두가 아재 덕분이라고 하니 거듭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손수석은 손님이 없으므로 단도직입적으로 ‘현동 양반’에게 말한다; “나는 한국과 일본이 수교가 되자 당국의 부탁을 받고서 일본에 들어왔어요. 이제 한국의 제3공화국이 열심히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문제는 자본이 부족해요. 일본에서 청구권자금도 받고 차관을 많이 들여왔지만 여전히 자금이 부족하지요…”.

이제는 본론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뜻이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부탁하여 은밀하게 투자를 받고자 합니다. 나중에 상호방문이 완전히 성사가 되면 그때에는 한국에 들어와서 그 원리금을 회수할 수가 있지요. 이자율도 두 자리 수를 제시하고 있어요. 내가 그 일을 위하여 이곳을 방문하고 있지요”. 

‘현동 양반’이 조금 생각을 하더니 말한다; “나는 한국정부는 몰라도 아재는 믿지요. 그러니 내게 말미를 좀 주면 내가 현찰을 모두 모아서 아재에게 맡기겠어요. 넉넉잡고 3일이면 되어요. 나는 대부분의 돈을 현찰로 돌리고 있어서 회수가 쉬워요.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부동산 투자와 일수인데 우선 일수돈부터 회수를 할게요”.

그 다음에 현동 양반이 이어서 말한다; “나는 여기에 일본인 아내가 있지만 그녀와는 이미 내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의를 해놓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녀와 나 사이에는 자녀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녀는 나와 살기 전에 벌써 1남 1녀가 있었고 이제 자식들이 장성하여 모친을 잘 모시고자 하고 있으니 나는 나중에 홀가분하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가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선더말 아재가 고개를 끄떡이자 현동 양반이 이어서 말한다; “나중에 한국방문이 허용이 되면 나는 여기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경주에 살고 있는 처자식에게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3일 후에 마련해주는 현찰을 먼저 가지고 가세요. 그 금액이 상당할 것이니 그 중에 일부는 내 처자식에게 전해주고 나머지는 아재가 투자를 해주세요”;

선더말 아재가 충분히 알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본돈을 어떻게 은밀하게 한국으로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현동 양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가장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여 한국으로 가지고 갈 수가 있을까요? 혹시 좋은 방법이 있나요?”.

현동 양반이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현찰을 가지고 부동산도 사고 또한 일수놀이도 했어요. 그러니 전주라고 소문이 나서 도둑이 여러 번 들었지요. 그때마다 내가 위기를 넘겼는데 그 방법이 특이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집에 가면 나무로 만든 모형 장난감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속이 나의 금고입니다. 그러니 도둑이나 강도가 그것을 모르고 베개나 서랍 그리고 장롱을 뒤지다가 끝내는 내가 지갑에서 꺼내어 주는 돈을 받고서는 그만 나가버리고 말았지요”;

그것 참 천만뜻밖의 묘한 방법이다. 돈놀이를 하는 전주가 사용하고 있는 은밀한 방법이니 공항에서도 통할 것만 같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는 현동 양반에게 3일 후에 만나기로 단단히 약속을 하고 그날 배인근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배인근 부부와 안춘근 그리고 손수석은 그동안 지나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늦는지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