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강(창1:1-전체)(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6. 21:24

창세기 강해 제1(1:1-전체)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29()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이 글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주신 능력으로 애굽에 들어가서 동족 히브리인 240만명을 애굽제국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시킨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법칙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지사와 자신의 운명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백성들이 풍요에 취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방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장차 창조주를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하여 편리한 우상을 만들어 섬길 것입니다. 그 결과, 제사장의 나라는 멸망할 것이며 거룩한 백성들은 이방 땅에 흩어져서 유민이 되고 말 것입니다(29:24-28, 31:16-21).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함부로 휘두른 잘못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밟지도 못하게 되는 운명입니다(4:21, 32:48-52). 따라서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다섯 권의 율법서를 저술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전수를 시켰습니다. 자신의 육신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적은 그의 글만은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고 훗날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신앙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섯 권의 책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창세기입니다. 첫 번째 기록이기에 창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성격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전체 기록의 서론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오경의 서론으로서 창세기를 구성하여 저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의 기록을 전체 신약 및 구약 66권의 총 서론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창세기의 기록이 성경의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용어와 개념의 정의에 있어서도 뛰어나다고 하겠습니다. 내용으로 보더라도, 창세기에는 우주만물의 주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이 정확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 운영의 방안이 소상하게 기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야기 형식의 글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생존했던 시기는 BC 15세기입니다. 그 시대에는 글이 있었지만 그것은 극소수만이 배우고 사용하는데 불과했습니다. 글을 필요로 하는 계층이 한정이 되어 있었으며 더구나 글을 적을 수 있는 점토나 양피지 그리고 파피루스의 값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글이 아니라 말로써 기억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비록 그의 저서 가운데 글로 적었다고 하는 표현이 일부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소수를 위한 보존의 목적입니다. 그것을 대중에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데는 여전히 말이 필요했으며 듣는 자들이 그 내용을 암기하기에 편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에도 쉬워야만 했습니다. 그 방법이 정확하게 이야기 형식입니다. 한 마디로, 모세오경과 모든 정경의 서론이 되고 있는 창세기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외우며 오랫동안 기억을 할 수 있도록 드라마틱한 이야기 형식으로 저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시작하면서 모세는 태초에있었던 일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태초에 천지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가장 오랜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사람이 인식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주변에 천지만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자연이며 환경입니다. 유식한 말로, 인간은 자연과 환경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연과 환경을 바라보는 관념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라는 사고입니다. 둘째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과학적인 사고의 기초입니다. 후자는 철학과 종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설명은 시간적인 개념으로서의 태초의 의미입니다. 영어로 in the beginning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번역이 정확하게 그 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후자와 관련하여 두 가지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로, 무엇이 천지와 만물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헬라의 철학과 인도의 고대 종교가 약간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영지주의가 헬라의 철학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아니하는 세상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아니하는 지혜가 창조한 세상입니다. 지혜가 실체이며 피조세계는 그것이 반영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그 지혜가 소위 아르케이며 영적인 지식입니다. 그 세상이치를 깨달으면 철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행복하게 경영할 수 있으며 세상사람들의 영혼에 빛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철학 왕()’의 사상으로까지 발전이 되는 내용입니다. 한편, 인도의 사상과 종교는 약간 다릅니다; 지혜가 아니라 일종의 우주의 생명에너지가 만물을 창조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의 존재가 소위 브라만입니다. 그 생기를 일부 나누어 받은 자가 사람입니다. 브라만의 파편이 사람이며 그것은 아트만입니다.

이제 헬라철학이 주장하고 있는 생명창조의 힘이 지혜이며 인도의 고대종교가 말하고 있는 생명창조의 힘이 우주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유물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헬라와 인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동 땅 가나안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 점을 창세기 첫머리 모세의 기록에서 생생하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히브리인들은 지혜와 우주의 에너지에는 주인이 있다고 사고를 했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는 주장입니다. 지혜는 훗날 헬라철학에서 그노시스또는 로고스의 개념으로 발전을 합니다. 사도 요한은 로고스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1:1). 그리고 세상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 곧 독생자에 의하여 창조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3, 14). 나아가서 사람의 생명과 인생의 빛도 독생자 하나님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4). 한편, 우주의 에너지는 생명의 에너지이며 그것은 영적인 에너지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또는 생기라고 표현을 했습니다(1:2, 2:7). 그것이 성령입니다. 이상의 설명은 한 가지의 사실로 귀결이 되고 있습니다; “철학이 추구하고 있는 지혜 그리고 고대 종교가 주장하고 있는 생명의 기운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 창세기의 주장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인들이 믿고 있는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신앙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제1장 제1절에서 이미 모세는 성경의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철학과 기타 종교가 지식적인 추구와 물질적인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면 성경의 유일신 사상은 창조주의 존재와 그 사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