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14강(사65: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4월 19일(화)
이방인과 선민 가운데 누가 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쉬울까?(사65:1-5)
이사야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족인 선민들에게 애정이 많은 선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그는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아가기가 더 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이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회개할 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쉽게 발견하거나 그 잘못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들입니다. 따라서 선민이 올바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b)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c)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자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사65:1); 이사야가 이방인의 특징을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며, 찾지 않고, 그 이름을 부르지도 아니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방인들이 회개를 먼저하고 있습니다;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사65:1a);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구하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전자에 관심이 훨씬 큽니다. 후자의 것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수호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김으로써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을 보전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하던 그들의 행동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영적으로 심각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변화는 유대교로 말미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따르는 제자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폭넓게 이방 땅에 전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사65:1b);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 자를 유신론자(有神論者, theis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반대로 무주공산(無主空山, 주인이 없는 빈 산)이라고 믿는 자는 유물론자(唯物論者, materialist)입니다. 이방인들은 범신론자(汎神論者, 여러 신을 섬기는 사람)로 보이지만 실은 유물론자들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3)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자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사65:1c);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은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여 그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도들의 나라가 그렇게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만민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이방인들이 크게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이사야가 미래지사를 그렇게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둘째로, “(a)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b)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c)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65:2); 그런데 선민들은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았기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잘못을 범하고 있는 그들을 고치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계십니다;
(1)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사65:2a); 선민들이 회개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고 선민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종들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자 선민들이 타락하여 자신들이 마치 인생과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마치 신임장을 얻은 것처럼 여기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탕자의 모습’과 똑 같은 것입니다(눅15:12-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하루 종일 그 손을 펴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사65:2a).
(2)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사65:2b); 옳은 길과 옳지 아니한 길의 판별기준이 무엇일까요? 옳은 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길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따라서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데 헌신하는 청지기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민들이 열방과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발벗고 나서야만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선민들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이 가고 있는 옳지 않은 길입니다(사65:2b).
(3)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65:2c);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 모시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패륜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우상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우상을 만든 주인으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즉, 객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신앙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쉽게 ‘반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패륜과 반역을 일삼고 있는 선민들을 그래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사65:2c).
셋째로, “(a)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b)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c)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3); 이사야가 선민들의 신앙상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사65:3a); 선민의 제사는 성전의 뜰에서 제사장이 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과 규례를 선민들이 스스로 어기고 있습니다. 매우 간단하게 자신들의 편의를 따라서 산당에서 제멋대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제사법을 함부로 도입한 결과입니다.
(2)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사65:3b); 성소의 분향단에 거룩한 가루 향을 태우는 것은 제사장의 직무입니다(출30:7). 그 향 내음이 휘장을 통하여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곳 지성소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향냄새를 맡으시는 것입니다;
1) 그런데 선민들이 이방인들의 분향의식을 마음대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향냄새를 풍기고 신을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이사야가 ‘벽돌 위’(사65:3b)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애굽과(출1:14)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제단을(창11:3) 선민들이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2) 참고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벽돌을 사용하여 제단을 쌓지 말라고 율법으로 벌써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20:24-26).
(3)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3c);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율법을 지키도록 신정국가를 만드실 때에 하나님말씀의 기본취지로서 십계명과(출20:1-17) ‘참된 제사의 규정’을(출20:22-26)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조건으로 성막을 짓도록 지시했습니다(출25:8-9). 그런데 이사야 시대 선민들은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멋대로 어기고 있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서 제멋대로 산당제사를 드리고 벽돌 위에서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사65:3c).
넷째로, “(a)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b)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c)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사65:4); 더욱 구체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사65:4a);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과 회당을 중심으로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대신에 무덤 사이에 앉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사65:4a). 그것은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들어가고 그곳에서부터 음부로 내려간다고 믿고 있습니다(창44:31). 사망과 음부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가 악한 영들입니다(롬8:2, 엡6:12)”. 그러므로 “무덤 사이에 앉는다”(사65:4a)라고 하는 말은 악한 영들과 친밀하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을 중시하며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은 악한 영들과 잘 타협하여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더 관심이 크다는 것입니다.
(2)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사65:4b); 은밀한 처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남의 눈을 피하여 남녀가 만나고 있는 곳입니다. 또 하나는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산에서 여 사제들과 은밀하게 정사를 벌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쨌든 그것은 성적인 타락과 영적인 타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사65:4c);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돼지고기와 가증한 동물을 먹지 말도록 되어 있습니다(레11:4-23). 그런데 이방인들의 풍습을 따라가고 있는 선민들이 은밀하게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섯째로, “(a)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b)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사65:5); 선민들의 외식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의인인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고치기 힘든 영적인 타락입니다;
(1)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사65:5a); 선민들은 스스로 이방인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죄인이며 자신들은 선민이므로 자연히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1) 이사야 시대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700년이 지났으나 메시아의 시대에도 그러합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2) 여기서 세리와 같은 죄인이 본문에서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이방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시대에 회개하고 하나님신앙을 더 빨리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스스로 거룩하고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선민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들 선민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의로움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살아가는 변화가 얼마나 발생하기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한 미래지사를 이사야가 진작에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사65:5b); 외식하는 선민들의 신앙생활, 더구나 하나님신앙은 흉내만 내고 있고 실제로는 이방신과 우상이 주고 있는 세상적인 편리성과 유혹을 즐기고 있는 선민들의 영적인 타락을 바라보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이사야가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는 마음을 견디지를 못하시고 거친 숨을 내쉬시며 그 코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회개하지 아니하면 불 심판을 내리겠다고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종일 타는 불’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사65:5b).
결론적으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만민구원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위와 같은 메시아의 말씀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이방인들이라는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자칭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은 쉽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앞세우고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의인이라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선민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외식적인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본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사야의 시각은 훗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도 자주 발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마23장).
어쨌든 어설프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마치 그 옛날 선민들과 같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기도 힘이 들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기도 힘이 듭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신앙고백을 해야만 합니다.
(2)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매사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크게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3)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그 인생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으로 다듬어나가실 것입니다.
(4)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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