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313강(사64:8-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30. 03:22

이사야 강해 제313(64:8-12)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4 18()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이사야가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다(64:8-12)

 

본문에 들어오기 직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에 살고 있는 선민들의 신앙생활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64:7).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을 떠나버리시고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망하게 되는 이유는 선민들이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사야는 윗글에서 선민들의 죄악이란 첫째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둘째스스로 분발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기 위하여 노력하지를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선민의 나라와 선민사회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작업이 필요합니다첫째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선민들이 영생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불러야만 합니다(21:33). 그것은 현세구복적인 믿음을 영생구원의 믿음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둘째자신의 이익과 선민우월사상을 내려놓고 창조주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발벗고 나서야만 합니다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며 선민나라의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게 되면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운명을 바꾸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놀라운 비결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부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거듭난 운명으로 바꾸어달라고 하는 이사야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그 비결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분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얻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해봅니다;

첫째로, (a) 그러나 여호와여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b) 우리는 진흙이요주는 토기장이시니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64:8);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첫걸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아버지이며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  그러나 여호와여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64:8a); 아들은 아버지의 형상과 모양을 물려받고 있습니다아담의 형상과 모양을 그 아들 셋이 물려받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5:3). 그와 같은 부자관계가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1:26-27). 그와 같은 부자관계의 회복이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따라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부디 그 사실을 신앙 고백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모색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진흙이요주는 토기장이시니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64:8b); 소위 토기장이 비유’가 여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토기장이는 창조주의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1)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모양을 만들고 불에 구워서 그릇을 생산하고 있습니다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그릇은 보존하지만 그러하지 아니한 것은 부수어버립니다그릇의 생사여탈권이 토기장이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환언하면피조물의 운명에 대한 모든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따라서 성도는 그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고백하면서 종으로서 그 앞에 서야만 합니다.

2)    구체적으로토기장이가 생각하는 그릇의 용도에 맞으면 그 그릇은 보존이 됩니다반면에 그 용도에 맞이 아니할 것 같으면 여지없이 부수어버립니다그러므로 그릇을 만들고 있는 토기장이가 그 그릇에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바라고 계시는 것이 무엇일까요사실은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의 요구는 단 한가지입니다;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라는 것입니다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종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토기장이이며 우리는 진흙과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은 이제부터 그 만드신 의도대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겠다고 하는 청지기의 신앙고백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a) 여호와여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b) 구하오니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64:9); 그 다음은 부디 주의 백성을 버리지 마시고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그 옛날 모세처럼(32:11-14매어 달리는 것입니다;

(1)  여호와여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64:9a);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만 합니다그렇지만 선민이나 이방인들이 그러한 회개의 마당에 나아오기 전에 나라의 멸망과 세상의 멸망이 임할 가능성이 큽니다그러므로 대속의 사명을 감당하는 메시아가 선민들과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합니다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선민의 나라에 있어서조차 어째서 대속의 메시아가 필요한지를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경우입니다그들은 건국 당시부터 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겨오고 있습니다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긴 그 정책을(왕상12:27-33후대의 왕들이 하나같이 승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왕상15:34, 16:26, 31-33). 그 결과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주전 722년에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맙니다(왕하17:5-6).

2)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는 달리 남조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경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기를 따라 제사를 드리고 선민들이 율법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속마음입니다그들은 선민만을 구원하고 이방인을 심판하시는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영생의 구원보다는 당장 현세적인 부귀영화와 형통함을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39:8).

3)    따라서 선지자의 외침과 메시아의 가르침은 그들의 소원과 정반대입니다하나님말씀의 취지가 공의이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사실을 선민들에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러자 선민들은 선지자들을 배척함으로써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왕하25:1-7). 그 후 메시아까지 배척을 하게 되자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가 황폐화가 되고 맙니다(23:37-38).

(2)  “구하오니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64:9b); 모세의 기도나 메시아의 기도나 마찬가지입니다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주의 백성들이오니 부디 진노를 거두시고 이제는 그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그들의 기도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모세의 중보의 기도;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32:11-12).

2)    그리스도의 대속의 기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6:51).

셋째로, (a) 주의 거룩한 성읍들 광야가 되었으며, (b) 시온 광야가 되었으며예루살렘 황폐하였나이다(64:10); 선민의 나라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에도 거룩한 성읍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1)  주의 거룩한 성읍들 광야가 되었으며(64:10a); 여기서 거룩한 성읍들’은 복수(複數plurality)입니다언뜻 보면그것들은 모두 선민의 나라에 있는 성읍들로 보입니다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1)    이방나라에도 거룩한 하나님의 성읍이 있을 수 있다는 여지가 엿보이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다음 대목에서 예루살렘과 시온의 성읍들이 모두 광야와 같이 황폐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재차 강조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아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그렇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하는 하나의 증거를 들어보자면히브리정경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욥기’라고 하겠습니다욥은 동방사람의 땅에 살고 있는 제사장입니다(1:1, 5). 그리고 원근각지에서 욥을 찾아오고 있는 이방인 세 친구도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습니다(2:11-13). 더구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현자 엘리후도 유대인이 아니라 동방에 살고 있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 신앙이 빼어난 사람입니다(32:1-22).

(2)  시온 광야가 되었으며예루살렘 황폐하였나이다(64:10b);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의 죄악을 보시고 진노하시자 그 결과 예루살렘이 황폐화되고 여기서 시온’으로 상징이 되고 있는 유대 땅이 광야와 같이 변하고 맙니다;

1)    그것은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는 것을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고서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노를 거두시고 선민들의 자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2)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44:28-45:8), 주전 539년에 바사의 왕 고레스가 메대와 연합하여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고레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가 되면서 유대인들을 해방시킵니다그리고 자원하는 자들을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조그마한 성전을 재건하게 합니다(1:1-4). 이른 바 제2성전시대가 그렇게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넷째로, (a)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b)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64:11); 성전과 거주지가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로 모두 불에 타고 황폐화되고 있다는 그 참혹한 현실에 대하여 보고를 드립니다;

(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64:11a); 역사적인 측면을 먼저 말씀 드리면서 이 대목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2성전시대는 주전 170년경 종교적인 위기를 맞이합니다로마의 세력이 동진을 시작하자 위기를 느낀 시리아 왕조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헬라 세계에 제우스 신을 중심으로 종교적 사상적 통일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시리아 왕은 말을 듣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모시고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도록 합니다그리고 율법으로 금하고 있는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합니다.

2)    이에 반발하여 유대인들은 제사장 마카비 집안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킵니다많은 전투를 치른 결과 주전 142년경 레위 인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됩니다그러나 주전 37년경에는 이두매 출신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로마의 지원을 받아 유대인들을 통치하게 됩니다그는 자신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솔로몬 성전의 25%규모에 불과한 제2성전을 본래의 규모로 증축하는 건축사업을 시작합니다.

3)    그러나 그 성전을 바라보시고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서 미래를 예언하십니다그 성전을 헐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성전을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2:19-22). 그 예언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에 반대합니다그리고 주후 30년경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하게 됩니다그 결과 유대인들은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로마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로마군대에 의하여 성전이 불타고 맙니다그리고 약 110만명이 살육을 당하고 마침내 유대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4)   그 반면에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속 부활을 목격하게 된 사도들이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교회를 형성하게 됩니다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고 유대 땅이 황폐화가 되는 비극이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이 유대 땅을 벗어나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선민을 구원해달라고 하는 이사야의 기도는 비록 선민의 사회가 망하더라도 새로운 성도의 시대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 땅에 도래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그 열매를 얻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64:11b); 이 세상에서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은 다 황폐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수십 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보면그 옛날 친지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던 그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혹시 그 자리와 건물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사람들은 거의가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그곳에 없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땅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는 곳을 소망할 수밖에 없습니다피조세계의 것이 유한하며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그곳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11:16).

다섯째로, (a)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b)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64:12);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해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1)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64:12a); 이와 같이 간절하게 이사야가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이사야는 웃시야 왕 말기에 사관(史官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벼슬아치)을 지냈으며(대하26:22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인물입니다(6:1-13). 그는 특히 앗수르의 침략을 맞이했던 히스기야 왕 때에 크게 활약을 한 선지자입니다(왕하19-20). 그래서 학자들은 히스기야 왕이 서거하는 주전 686년까지 이사야가 활동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2)    이사야는 앗수르의 대군이 물러가고 유다 왕국이 한숨을 돌리고 나자 새로운 영적인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5년 수명연장을 받게 된 히스기야 왕의 그 후의 통치가 교만하기 이를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자기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기만 하면 적군이 물러가고 수명이 연장되는 줄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외국의 사절들에게 자신의 왕국의 부귀영화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왕하20:12-13).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선민의 왕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에 열심입니다그 때문에 100년 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사야가 예언으로 전해주지만 히스기야 왕은 끄떡도 하지를 않습니다(왕하20:16-19). 그가 죽은 다음에 발생하는 처벌에 대해서는 겁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39:5-8). 따라서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비롯한 선민의 신앙행태에 대해서 절망을 하고 맙니다.

4)    그렇지만 이사야는 완전히 절망하지 않습니다그 옛날 아브라함과 모세의 중보의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18:23-32, 32:11-14그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사야는 모세처럼 동족들을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한 중보자의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있습니다그렇지만 동족의 구원을 보지 못하고 향년을 맞이할 것만 같습니다그래서 너무 절박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64:12a).

(2)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64:12b); 이사야는 선민의 나라가 장차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을 예지하고 있습니다(왕하20:17-18).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다시 고토로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장래가 희망적이지를 않습니다여전히 선민우월사상과 현세구복사상에 사로잡혀서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까지 처형하고 말 것입니다그 다음 고토에서 다시 쫓겨나게 되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이사야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그래서 먼 훗날의 자손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64:12b).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입니다이사야만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많이 하고 또한 메시아의 나라에 대하여 통찰력 있게 전한 선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미래에 대하여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사야가 동족들의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본문에서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이미 동족인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반대하고 처형한 결과 예루살렘이 망하고 이방 땅으로 쫓겨나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오래 계속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그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의 부활의 소식과 함께 온 세상에 퍼져서 새로운 성도들의 나라가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그 두 가지의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이사야는 부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의 후손들을 용서하시고 성도로 살아가게 되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결국이사야에게서 배울 점이 그것입니다원칙적으로복음에는 국경이 없으며 성도들은 이방인들에게 땅끝까지 하나님신앙을 전파해야만 합니다그러나 같은 조상에서 태어난 동족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동족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아무쪼록 그러한 중보의 기도가 왕성해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