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310강(사63:18-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29. 10:33

이사야 강해 제310(63:18-19)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4 15()

 

주의 성소를 유린한 자들은 누구 누구인가?(63:18-19)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본문의 말씀은 짧습니다 2구절에 불과합니다그러나 그 문장의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적어도 다음과 같은 복수(複數)의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1)  첫째겉모습 그대로 풀이를 하자면 강대국 신바벨론 제국이 주전 586년경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워버린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선민의 잘못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  둘째한 꺼풀을 벗기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신을 도입하고 우상문화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형식적으로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왜냐하면자신들에게 세상적인 복과 형통함을 제공하고 동시에 선민우월사상을 현실적으로 만족시켜주는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배신감을 느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버리시고 선민의 나라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그런데 선민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3)  셋째영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 봅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이며 주의 성소를 유린하고 있는 실체는 사람이 아닙니다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사도 바울의 에베소서를 참조하면 분명히 그러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민들조차 하나님신앙에서 실족하여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려 악한 영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어도 위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본문의 말씀입니다그러므로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그 의미의 조각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더 깊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b) 우리의 원수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63:18); 거룩한 백성’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63:18a); 출애굽기 제19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거룩한 백성’이라는 개념은 제사장나라’와 함께 검토를 해야만 합니다왜냐하면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    그것은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방인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파송을 하시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일생을 살아가게 하신 이유와 동일한 것입니다한 마디로이방인들에게 하나님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신앙의 본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그리하면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되고 그들의 땅에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12:3).

2)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의 땅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1:2, 3:2).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문화에 젖어 있는 그들의 잘못을 여호와께 속죄하기 위해서는 선민들이 제사를 드려주어야만 합니다선민들이 모두 그러한 역할을 할 때 선민의 나라를 제사장나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19:5-6).

3)    또한 선민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구체적으로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5:43-48). 그런데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그와 같은 신앙인의 모습이 전무합니다(4:1-5). 그것이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근본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그와 같은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사야가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이 된 선민들이 오래지 아니하여 큰 환난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훗날의 역사를 참조하면 그것은 주전 586년에 이사야의 조국인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전소(全燒완전히 타버림)되어 버리는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5:6-7, 9).

5)    이사야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서 일단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족속이 오래지 아니하여 큰 환난을 당하게 되니 그것을 보살펴달라는 것입니다요컨대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게 해달라는 그 옛날 모세의 중보기도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32:11-14).

(2)  “우리의 원수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63:18b); 주의 성소’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성소의 휘장 안쪽인 지성소에 임재하십니다그곳에는 언약궤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1)    그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말씀을 상징하고 있는 모세의 돌판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상징하고 있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먹여 살리신다는 상징으로서 만나를 담은 항아리 등이 들어 있습니다(9:4). 그리고 법궤의 뚜껑에는 두 천사장이 날개를 포개고 있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25:18-21).

2)    일명 속죄소’로 불리고 있는 그 뚜껑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그 모든 장치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2). 요컨대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지상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처소 주의 성소’를 겁도 없이 유린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습니다그들이 하나님의 원수이며 거룩한 백성들의 원수입니다그러므로 이사야는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벌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그와 같이 이사야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4)    그 근거가 바로 이사야 제37장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앗수르 황제 산헤립이 선전관 랍사게를 시켜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통첩을 하면서 감히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한 적이 있습니다내용인즉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는 능력이 없는 신이며 앗수르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는 우상과 같다고 조롱한 것입니다그것은 주의 성소’를 유린한 것과 같습니다그 사실을 히스기야 왕이 자세하게 하나님에게 보고하자 하나님의 처벌이 임합니다하룻밤에 앗수르 대군 18 5천명이 하나님의 천사에 의하여 몰살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왕하19:35, 37:36).

둘째로, (a)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b)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나이다(63:19); 주의 다스림을 받는 자와 주의 이름으로 그 권위를 인정 받는 자가 왜 중요할까요?

(1)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63:19a); 주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자와 받지 못하고 있는 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1)    주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자는 주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입니다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자신은 여호와의 종이므로 주인의 뜻을 받드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사회의 요구보다 항상 우선입니다그래서 자신의 이익도 내려놓고 있습니다.

2)    선민의 경우에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원수와 같은 이방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줍니다또한 이방 땅으로 가서 하나님말씀을 전해주며 거룩한 백성의 모범을 보여줍니다한 마디로이방 땅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선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18:22-32).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선민입니다.

3)    반면에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고 있는 자는 제멋대로입니다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자신입니다그러므로 세상적인 성공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동원합니다필요하다면 우상은 물론 하나님까지 이용하려고 합니다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현세적인 복의 추구와 우상문화에 푹 빠져 있으므로 그러한 자에게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4)    그러한 자가 누구일까요하나님을 모르고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이야기일까요그렇지가 않습니다안타깝게도 이사야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선민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나 그 속은 타락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그래서 이사야는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므로(63:19a), 부디 우리를 고쳐주십시오 라고 안타깝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2)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나이다(63:19b);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맡기지를 아니하십니다;

1)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에는 창조주의 영광과 권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마치 황제의 도장이 새겨져 있는 반지와 같습니다그것으로 조서에 도장을 찍게 되면 황제의 칙서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임이 두터운 중신(重臣중요한 신하)에게만 그 인장반지를 위탁하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보면창세기 제41장에서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발탁하고 그의 인장반지를 맡기고 있습니다(41:42). 에스더의 기록에서는 페르시아 황제인 아하수에로가 처음에는 신임재상 하만에게(3:10-11), 나중에는 새로운 중신 모르드개에게 그 인장반지를 맡기고 있습니다(8:7-10).

3)    훗날 그와 같은 천하권세의 위임이 그리스도에게 있게 됩니다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하권세를 위임하십니다(28:18).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를 땅끝까지 보내어 이방인들을 성도로 만드는데 그 천하권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28:19-20).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고서 담대하게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4)    끝으로천하권세의 위임이 하나님이름의 위탁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얻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행할 수가 없습니다어째서 그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그 이유는 그리스도처럼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지를 않습니다그 반대입니다선민들의 이익을 위하여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지배하고자 합니다또한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지를 않습니다그 이유는 영생이 아니라 현세적인 행복과 형통함을 추구하는데 선민들이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창조주가 주고자 하시는 영생의 복을 선민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신앙을 이방인들에게 과감하게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오늘날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그리스도의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생을 확신하지 못한다면그것을 믿고 이 세상을 이길 수도 없으며 땅끝까지 부활과 영생의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그 대신에 전한다고 하는 것은 고작해야 하나님을 잘 믿었더니 그 보답으로 자신에게 세상적인 형통함과 성공의 신화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마치 기적처럼 주셨다고 하는 물질적이고도 육신적인 성공사례에 불과할 따름입니다정리를 해보자면그러한 우상문화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사상에 젖어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창조주의 능력을 위임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본문(63:18-19)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주의 다스림을 받으며 여호와를 모시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을 묵상하시면서 그와 같은 기도를 우리 모두가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 가운데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여 모든 족속을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뜻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아무쪼록 이사야처럼 그러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시는 귀하신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