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08강(사63: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4월 13일(수)
장차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유민으로 살게 되는 선민의 자손들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며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사63:11-14)
이사야는 100여년이 지나면 바벨론에 의하여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오랜 세월 유민으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예언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사39:5-7).
그와 같은 비참한 역사가 장래 임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는 본문의 바로 앞 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선민)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여호와)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63:10). 그 결과 이방 땅을 헤매면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되는 선민의 후손들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의 영광을 사모하게 됩니다(사63:11-13). 그리고 주님과 성령님의 역사로 더 큰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들이 모두 함께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사63:14 의역).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더 깊은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홍해)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b) 그들 가운데에 성령(his Holy Spirit, NIV)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1); 그 옛날 홍해사건을 선민의 자손들이 기억하며 이제는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홍해)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1a); 선민의 자손들이 이방인들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삶이 마치 그 옛날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영위하고 있던 때와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출1:14, 2:23). 따라서 선민의 후손들이 이제는 그 옛날 출애굽 당시의 여호와의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1) 특히 출애굽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홍해사건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친히 목자가 되어 백성을 양떼처럼 믿음으로 이끌고서 그 바다 깊은 곳에 난 마른 땅을 걸어서 건너게 했습니다(출14:21-22, 29). 그 결과 맞은 편 언덕에 도착하여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추격해오던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하나님의 역사로 모조리 홍해 바다 속에서 몰살을 당해 버렸기 때문입니다(출14:26-28). 바야흐로 선민들이 죽음에서 삶을 얻은 것입니다.
2) 그 감격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사자인 목자 모세가 이제 다시 선민의 후손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홍해)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십니까?”(사63:11a). 부디 그 목자를 다시 보내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2) “그들 가운데에 성령(his Holy Spirit, NIV)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1b); 이사야가 참으로 놀라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후손들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발현이 되고 있는 ‘성령님’의 존재에 대하여 폭넓게 알게 되며 그 임재의 역사를 소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사실 성령님은 구약의 시대 선민국가에 있어서 극소수의 영적인 지도자들에게만 잠시 임재를 했습니다. 소위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의식이 그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나라에서 왕과 제사장이 기름부음을 받게 되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과 제사장 계급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성령님의 임재와 그 감동을 얻게 되면 이사야처럼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사6:1-9). 하지만 대다수 백성들은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성령님의 존재와 그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를 못합니다.
2) 그런데 이사야는 훗날 선민의 후손들이 이방 땅에서 성령님에 대하여 잘 알게 되고 이제는 그 임재의 역사를 앙망하게 된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만민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성령님의 임재가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누구나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차별이 없이 이루어집니다(사48:16, 욜2:28, 행2:1-4). 이른바 초대교회의 시대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 놀라운 시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임재와 강력한 역사가 오로지 선민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들의 편견을 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훗날 선민들의 후손 가운데 선민구원사상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63:11b 의역).
둘째로, “(a)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b) 그(여호와)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사63:12); 백성들이 드디어 창조주의 능력과 영광을 깨닫고 있습니다. 홍해구원사건의 더 깊은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사63:12a); 용어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기서 ‘영광의 팔’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오른손’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받게 되는 모세의 능력의 오른 손입니다. ②둘째, 하나님께서 모세를 창조주의 오른 쪽 곧 공의의 정신을 깨닫고 바라보게 합니다. 모세가 말년에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고 나서 이제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성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신34:1-7, 히11:16).
2) 출애굽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오른손을 내밀거나 그 오른손으로 잡은 지팡이를 휘두르게 될 때에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기도 하고(출7:20),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며(출14:21),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출17:5-6). 그것은 첫 번째의 개념입니다.
3)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모세의 오른손’의 두 번째 개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모세가 이미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알고서 먼 훗날 만민구원의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목자로 활동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와 같은 근거를 모세오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자기와 같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그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서 만민구원에 나서는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민11:29). ②둘째,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선민들이 타락하여 이방인처럼 될 것이고 그 나라가 멸망할 것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습니다(신29:18-28).
(2) “그(여호와)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사63:12b); 홍해가 갈라진 사건의 의미를 여기서 이사야가 달리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여호와가 창조주이심을 이방인의 제국 애굽에 각인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하여 깊은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세가 이끌고 그 바닷물이 갈라지고 생긴 마른 땅을 건너게 하십니다(출14:21-22).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고 있던 애굽의 황제 바로의 군대를 모조리 홍해의 바닷물 속에 수장을 시켜버립니다(출14:26-28).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홍해에서 선보인 사건입니다.
2) 그 사건을 통하여 선민과 이방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그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그 능력이 출애굽 당시 한번만 발휘가 되고 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이시며 그 창조의 능력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가 ‘스스로 계시는 자 여호와’라는 이름의 개념입니다(출3:14, 사63:12b).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은 또 다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셋째로, “(a)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b) 광야에 있는 말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3); 깊은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 선민의 후손들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고 있습니다;
(1)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사63:13a); 홍해의 시커먼 바닷속에 난 길을 사람의 발로 건넌다고 하는 것은 죽음의 위기를 절감하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가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죽음과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소망하고 있는 것은 그 고난의 길 끝에 여호와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 “광야에 있는 말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3b);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옛날 홍해의 깊은 바닷물 사이에 난 길을 걸어서 구원을 얻은 조상들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광야를 내달리는 말처럼 그 물속에서 넘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용사답게 건너온 것입니다. 오로지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믿음을 자신들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간절하게 여호와를 찾고 있습니다; “그 옛날 홍해를 건널 때에 광야에 있는 말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나타나셔서 부디 저희들을 구원해주십시오”(사63:13b 의역).
넷째로, “(a)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NIV)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b)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c)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사63:14); 모세와 목자의 개념이 여기서는 여호와의 영과 주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NIV)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사63:14a); 골짜기를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다릅니다. 전자는 너무나 힘이 들지만, 후자는 편합니다;
1) 그런데 이사야는 목자가 가축을 몰고서 골짜기를 내려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축을 편히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좋은 목자가 그 옛날에는 모세입니다. 이제는 누구일까요? 여기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NIV)”이시라고 말합니다.
2)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영어로 보면, ‘주님의 영’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성도들의 주인이신 주님이 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셔서 말씀으로 그 인생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하는 풀이가 가능해집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성도의 삶의 비결을 이사야가 벌써 말해주고 있는 예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적인 삶을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이미 영생과 구원이라는 안식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사63:14b);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메시아로 이 세상에 보내어주십니다. 구속자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는 믿는 자 성도들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자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성령님과 함께 성도에게 임재하여 그 인생길을 믿음의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사63:14b).
(3)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사63:14c); 주님께서 성령님과 함께 지금도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십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를 성도로 삼으시고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미리 바라보면서 이사야가 위와 같이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본문에서 그 옛날 모세를 목자로 사용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훗날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모세와 같은 목자, 그리고 홍해를 가르시고 선민을 구원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사모하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세와 같은 목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구속자 구원자의 사역을 이 땅에서 마치신 다음에는 부활 승천하여 주님이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다시 오십니다(요14:17-20, 행16:7).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만민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이사야가 의미심장하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홍해)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his Holy Spirit, NIV)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1),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NIV)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사63:14).
그러므로 아무쪼록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만민구원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그와 같은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이스라엘의 후손들도 너무나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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