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제 2과(1:2-11)(손진길 작성)
|OBS18-2|
Q1. 에스더서의 무대가 되고 있는 페르샤 제국, 그것도 가장 극성했던 아하수에로 왕때의 모습이 제1장 1절부터 9절사이에 묘사되고 있는데 주요 사실들은 무엇인가?
Ø 페르샤 제국의 영토가 아시아의 인도로 부터 아프리카의 구스(이디오피아)까지 127개 도에 이르고 있슴(1:1).
Ø 따뜻한 이란 땅의 수도인 수산(수사)궁에서 즉위한 아하수에로 왕은 통치 3주년을 기념하는 대 연회를 베풀었는데(1:2-3) 전국의 장수와 귀족 그리고 방백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180일 동안 계속하였슴(1:4).
Ø 도성에 사는 수산 인민들을(그들 역시 제국의 수도에 사는지라 특권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슴) 초대하여 7일 동안 잔치를 베품(1:5).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큰 왕궁에서 그것도 후원 뜰에서 벌어진 잔치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슴; ① 삼색 휘장을 보라색 줄에 묶어서 대리석 기둥에 매달았는데 기둥 고리마저 은고리였슴(1:6) ② 잔치 마당에는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배치했슴(1:6후반) ③ 술잔은 금잔이며 잔 모양은 디자인이 각각 달랐으며 술은 무진장 공급되었슴(1:7) ④ 술은 각자 주량껏 마시게 하였으며 관의 간섭없이 마음껏 즐기게 하였슴(1:8).
Ø 특히 부녀자들도 왕궁에 초빙되어 왕후인 와스디가 직접 대접하였다고 적고 있는 것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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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오늘 날의 세계 패권국도 흉내내기 어려운 이와 같은 부와 권력을 갖춘 대 제국을 형성한 페르샤 제국, 그들의 조상은 누구이며 어떻게 융성했는가?
Ø 페르샤 제국은 바사 왕국을 말하는데 그들의 본거지는 ‘이란 고원’이며(이락의 티크리스 강과 인도의 인더스 강 사이에 위치함) 그 조상은 BC 1500년경 유럽에서 동진해온 아리안 족임.
Ø 인도, 메대(앗수르 동북면), 바사로 진출한 아리안 족은 정복민들이었는데 메대 족은 BC 700년경 큰 나라를 이루고 BC 612년에 시악사레스 왕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멸망시킨 바 있슴.
Ø 바사 족은 BC 650년경 앗수르의 아슈르바리팔 왕에게 패하여 100년 동안이나 지리멸렬했으나 BC559년에 즉위한 고레스 2세 때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하였슴(BC 549년 메대까지 진출, BC 539년 메대와 연합하여 바벨론 제국 멸망시킴, BC 538년 메대 다리오 왕을 폐하고 바사 왕국이 유일한 지역 패권국이 됨, 단5:31, 6:28).
Ø 페르샤 제국 시대의 역대 왕들은 다음과 같슴; ① 고레스 2세(BC559-530, 천하통일후 다음해 BC538년에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석방함. 이 때 예루살렘 귀환 및 성전 재건 사업이 시작됨) ② 캄비세스 2세(BC530-522, BC525년에 애굽까지 정복했으나 마지막 원정에서 귀국 길에 사망함) ③ 가우마타(BC522, 즉위 2개월만에 귀족들에게 살해됨) ④ 다리오 1세(BC522-486, Darius Hustapes를 말함, 귀족들에 의하여 옹립된 약한 왕이었으나 왕6년인 BC516에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시킴으로써 성경에 그 업적이 남게됨, 스6:15) ⑤ 아하수에로(BC486-465, 그리스에서는 Xerxes로 부르고 있슴, BC480-479기간에 그리스를 두 번 침공하여 실패하였으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여 그리스 전사에 그 이름이 남게 되고 더구나 왕7년 BC479년에 유대인 처녀 에스더를 왕후로 맞이하게됨으로써 그 이름이 성경에 남게 되는 행운의 왕이 됨, 에2:16-18, 이 때가 페르샤 제국의 극성기임을 성경이 묘사하고 있슴, 에1:1-9) ⑥ 아닥사스다 1세(BC465-424, 에스더 시대이후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BC457년과 BC444-425년에 두 차례 허용함으로써 성경에 그 이름이 역시 남게됨, 스4:7-24, 이 때 늘어나는 유대인들에게 위협을 느낀 그 땅 거주민들의 반대 상소가 인상적임) ⑦ 다리오 2세(BC424-404, 예루살렘 성전 완공이 다리오 2세 6년이면 BC418년이 됨. 그러나 제2차 포로 송환이 성전 완공 후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스6:15-16, 7:1, 성경은 아닥사스다 1세를 다리오 1세 이전으로 보고서 성전 완공을 BC586년 유다 왕국 멸망후 꼭 70년만인 BC516년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임. 이 점은 지금도 논란이 있는 부분임) ⑧ 아닥사스다 2세(BC404-358) ⑨ 아닥사스다 3세(BC358-338) ⑩ 알세스(BC338-335) ⑪ 다리오 3세(BC335-331, 이 때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페르샤 제국이 멸망함).
Ø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샤 제국은 비록 208년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망하였으나 다음과 같이 세계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제국이었슴; 첫째로, 역사상 처음으로 애굽까지 정복하여 하나의 제국을 완성함으로써(BC525) 인도에서 애굽까지 이르는 가장 광대한 지역을 영토로 가지게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던 것임. 둘째로, 애굽 문명권과 메소포다미아 문명권을 하나로 통일시킨 최초의 고대 제국이었던 것임. 셋째로, 페르샤 왕조가 제국내 열방의 문화와 종교를 널리 포용하는 소위 대국적인 중화사상과 흡사한 위대한 개방 정책을 실시하였기에 그 후 헬라 제국, 로마 제국, 대영 제국, 아메리카 합중국 등이 모두 ‘PAX PERSIA’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임(페르샤가 이와 같이 개방 흡수 통합 정책에 익숙해진 이유는 그 민족의 원조상인 아리안 족이 카스피 해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방 유목민과 어울려 살면서 동서양 유목민의 혼혈 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아리안 족으로 거듭난 후 남하하여 이란 고원과 인도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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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바벨론 포로를 해방시키고 본국으로 송환시킨 것이 페르샤 제국의 치적이라면 세 차례 진행된 예루살렘으로의 포로 귀환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Ø 제1차 귀환은 고레스2세 때인 BC538년에 시작되어 캄비세스2세, 가우마타 왕을 거쳐서 다리오1세 때인 BC51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때의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이며 귀환자 수는 장정만 4만 9천명이 넘고 있슴(스1-6장, 남녀노소를 합하면 20만명 정도로 추산됨).
Ø 제2차 귀환은 BC457년 아닥사스다1세 때 이루어졌으며 에스라가 장정 1754명을 이끌고 온 것임(스7-10장, 남녀노소로 보아 4배수를 곱하더라도 8천명을 넘지 못함).
Ø 제3차 귀환은 BC444년부터 425년 사이에 역시 아닥사스다1세 때 이루어졌는데 그 지도자는 느헤미야였으며 이는 예루살렘으로 부임하는 느헤미야 유대 총독의 행차와 직결되고 있는 것임(느2:11, 13:6-7). 그 규모는 4만 2천명이상으로 보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느7:66) 이는 제1차 귀환자 명단과 중복된 기록임을 무시한 견해로 보임. 실제로는 느헤미야의 행차를 수행했던 극소수의 유대인들이 전부였을 가능성이 큰 것임. 그렇다면 세 차례의 귀환자 수를 모두 합해보아도 그 수는 수십만 명에 불과한 것임. BC586년 유다 왕국 멸망 당시에 인구수가 300만 명이상으로 볼 경우 페르샤 제국시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 수는 10분의 1정도일 것이며 나머지 9할 정도는 여전히 이방 땅에서 대대로 교포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임. 유대인들의 대부분을 점하는 이와 같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 향하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하심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에스더서의 부림절 사건인 것임.
Ø 참고로 에스더서의 기록은 BC483-473년 사이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기간은 1차 포로 귀환(BC538)과 제2차 귀환(BC457) 사이에 위치하고 있슴. 그리고 세 차례의 포로 귀환은 약 70년전 세 차례의 바벨론 포로 북송(BC605, 597, 586)과 짝을 이루고 있어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섭리를 다시 보는 것 같슴(하나님의 기억하심과 보상하심, 창15:1, 욥1:2, 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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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제7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7명의 어전 내시를 왕후 와스디에게 보내는 기록과(1:10-11) 127개 지방 도(道)를 치리하는 왕임을 강조하고 있는(1:1) 이유는 무엇인가?
Ø ‘7’이란 숫자가 가장 좋은 수를 나타내고 있다면 ‘12’는 완전 수를 나타내고 있으며 ‘127’은 완전하게 좋은 크기와 규모 또는 향년(창23:1)을 나타내고 있는 숫자인 것임.
Ø 그러므로 6일 동안 일한 후 안식하는 제7일이 가장 좋은 날이며 일주일의 마감이 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시 한 주를 시작할 수 있는 재충전 시간이 되는 것임.
Ø 일년 열두 달은 인간이 그 이름을 부르고 각각의 특징을 분류하며 다스려나갈 수 있는 한계 최대치를 의미하므로 선생이 가르칠 수 있는 최대 학생수를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임(예수의 12사도, 마10:1-4).
Ø 따라서 인도에서 구스까지 이르는 127개의 지방 도는 당시로서는 하나의 패권제국이 다스릴 수 있는 최대의 영토이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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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마치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실수한 것처럼(창9:21) 주흥이 일어난 왕이 실수를 하고 있는데(1:10) 그 실수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Ø 왕후 와스디의 용모가 보기에 좋으므로 이를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아하수에로 왕이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임(1:11).
Ø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으므로(창6:2) 하나님이 육체가 된 인간을 떠났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창6:3) 아름다운 처녀들을 전국 127개 도에서 불러와 후궁으로 들이고(2:3) 사년간이나 이를 한 사람씩 선을 본(2:12)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를 후임 왕후로 선택할 때까지(2:16) 황음을 행한 왕이었던 것임.
Ø 더구나 따뜻한 왕도인 수산궁(이란 땅)에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북쪽 도시 ‘악메다’(Ecbatana, 메대의 수도, 스6:2, 느1:1), 겨울이면 바벨론 왕궁에서 지냈던 페르샤 제국 전성기의 황제 아하수에로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치의 향락을 누렸으며 그 결과가 미인 사랑, 자기 자랑, 187일간의 연회, 절대 왕명의 시행 등(1:19, 변역함이 없게한 왕명, 3:12, 8:8)이었슴(왕상11:1-13).
Ø 솔로몬 왕의 영화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고 제 마음껏 행한 아하수에로 왕이 그래도 망하지 아니하고 왕업을 계속 후계자에게 물려줄 수 있었던 이유가 에스더서의 주제와 더불어 드러나고 있는 것임. 그것은 아하수에로 왕 역시 그 조상인 고레스 왕처럼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받았기 때문임(사44:28, 에5:2, 6:1,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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