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65강(사11: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15일(토)
장차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발생할 모든 일들이(사11:6-9) 한갓 꿈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 세 가지(창2:18-25, 6:18-22, 7:13-16, 요5:28-29, 마27:50-54, 계21:1-8).
서양의 철학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낙원(paradise)과 천국(heaven)은 환상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유식하게 말해서, 소외된 인간들이 원하는 바를 자신의 현실에서 분리하고 소외하여 만들어 놓은 허깨비와 같은 것이 바로 파라다이스이며 그것이 천국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평생 동안 못다 이룬 꿈과 온갖 바라는 것들을 허상의 세계에 투영시켜놓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6)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본문에서 메시아의 나라는 한 마디로, 파라다이스이며 천국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꿈꾸고 있는 영생이 가능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철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현실가능성이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와 같은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이성적인 인간이며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도달할 수도 없으며 가질 수도 없는 세계를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더구나 죽은 다음에 그곳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미친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세상사람들의 판단의 근거는 다음 세 가지의 가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둘째, 설혹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천지창조를 하신 다음에 더 이상 우주질서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완전히 손을 떼고 계신 것으로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간의 인식의 제한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인식의 한계와 이성적인 판단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창조주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창세기 제1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제22장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비과학적이며 일종의 신화적인 내용들이라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만약 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진리이며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창조주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논리에 갇힌 존재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아니며 구태여 하나님으로 섬기며 경외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말한다면, 사람이 이성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오랜 세월 탐구하여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미미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1)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켜도 미시적으로 아직 작은 생명체 하나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2) 더구나 아무리 의학을 발전시켜도 불치의 병이 자꾸만 더 많이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3) 그리고 거시적으로 우주과학을 발전시켰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아직 한갓 지구의 위성에 불과한 달 세계에 사람이 직접 가서 정착하여 연구를 하고 있지도 못한 실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창조주의 살아계심을 밝히고 있으며 특히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늘과 땅을 다시 창조하실 것이라고 무려 2,700년전부터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사48:5-11, 65:17-25).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이미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에덴동산의 생활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er)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2:18-19).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다른 동물들과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생명을 북돋우어주고 친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관계가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낙원의 모습이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하시며 그를 위하여 동물을 친구 사이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과 아담이 함께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둘째로, 노아의 방주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창6:20-21),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창7:13-16).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신 노아의 방주 안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무려 1년하고도 열흘 동안(창7:11, 8:13-14) 방주에서 함께 생활을 했지만 그 안에 있는 8명의 사람과 각종 짐승과 동물들은 서로 잡아먹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식량은 순전히 식물성인 양식입니다(창6:21).
(2) 노아의 홍수 직전에 온 세상에는 포악함이 가득하였으며 서로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창6:12-13). 그런데 어떻게 방주 안에서는 그와 같은 낙원의 모습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순전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방주를 닫아 걸으시고 친히 그들의 삶을 주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답은 하나님께서 함께 거처하시는 그곳이 바로 낙원이며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3) 한 마디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고 죽이는 삶은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 곧 본문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의미를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27:50-5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조금 깊이 있게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요3:16). 그렇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육신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같이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구원을 줄 수가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이 그리스도가 심판을 대신 받으며 그 대속의 효과를 성도들에게 발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약육강식이라는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사회를 영이신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십니다(창6:3). 그 결과 노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 심판을 골고다 언덕에서 창조주의 한 위격이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완전한 죄 사함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요1:29) 자신의 죄가 용서함을 얻고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믿고서 육신적인 삶의 방식을 청산하는 것입니다(롬6:4).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을 옷 입어서 새로운 영적인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롬8:1-18).
(3)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고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거듭난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13, 3:3-8). 그들의 삶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쫓아가는 제자의 삶입니다(마16:24). 그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마28:18-20, 행1:8). 한 마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됨으로 이미 천국의 낙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이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드러나야만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온 세상이 포악하여 약육강식의 현장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에덴동산이 다시 나타나고 방주의 구원역사가 다시 진행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체화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본문에서 상세하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세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에덴동산이며 노아의 방주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로 이루어졌던 그 옛날 평화공존의 역사가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아니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이 세상의 심판을 홀로 온전히 짊어지시기 위하여 산 제물로 그리스도가 이미 이천 년 전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심판을 면제 받았다는 그 사실을 믿고서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그 인생 가운데 생명을 서로 살리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부활의 주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아무쪼록 ‘아멘’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천국을 미리 맛보는 성도들의 영적인 승리의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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