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67강(사11: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17일(월)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발생 및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사11:13-16)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의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남조 유다 왕국이 차례대로 망하고 그 백성들이 이방세계에 유민이 되어 오랜 세월 떠돌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9:8-10:4). 그리고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메시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1:10-11). 그 마지막에 선민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또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11:12).
이제 본문에서는 (1) 먼저 새로 형성이 되는 선민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사11:13). (2) 그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따르고 있는 백성들이 주변의 이방인들을 어떻게 복속시켜나갈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사11:14). (3) 끝으로 이사야는 선민들을 괴롭힌 그 옛날 애굽과 당장의 앗수르를 징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장차 그들의 선례를 따르고 있는 나라들에게 다시 임할 것이라고 종말론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1:15-16). 그러한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함께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사11:13); 이사야는 ‘질투’와 ‘괴롭게 함’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서로 질투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를 괴롭히는 역사가 전개되었다는 것입니다(사11:13a).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성경적으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질투’라고 하는 것이 형제간의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주범입니다. 카인이 범한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의 동기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창세기가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정확하게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카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카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3-8).
(2) 시기와 질투 때문에 형제간에 죽이고자 하는 일은 야곱의 집안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아들들 사이가 그러합니다. 열명의 이복 형들이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합니다.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단에 노예로 팔아버립니다(창37:4, 11, 20, 28).
(3) 그 일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 사이의 반목과 전쟁의 역사입니다. 특히 아하스 왕의 시대가 되면 북조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이방민족인 아람과 연합하여 형제국가인 남조 유다 왕국을 침입하게 되는 사태까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6:5, 사7:1).
둘째로, 선민간에 서로 질투하고 전쟁을 벌이는 역사가 언제 끝나게 될까요? 이사야는 당장 북조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100년 남짓 지나서 남조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미래 역시 예지하고 있습니다. 형제국가 사이에 서로 질시하고 골육상쟁의 역사를 전개하였기에 그 결과가 모두 멸망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사11:13b).
풀이를 해보자면, 이미 지도상에서 사라진 제사장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유민들은 이방 땅에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더 이상 서로를 질투하거나 전쟁을 벌이지 아니합니다. 메시아의 나라에서 함께 사랑하며 한 마음이 되어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혈통적인 의미의 선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요1:12-13). 진정한 민족의 통일과 화목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롬5:10-11).
셋째로,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사11:14); 질시와 전쟁의 역사를 청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어 만민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가는 그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세력들이 그 옛날처럼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을 이사야는 익숙한 용어 “블레셋,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 등”(사11:14)이라고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하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철저하게 굴욕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마28:18, 엡1:21-23).
넷째로, “(15)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고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사11:15-16); 출애굽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라는 메시지를 모세를 통하여 전했지만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끝까지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이 임합니다.
마침내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가 하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오고 있는데 그 앞을 홍해바다가 막고 있는 것입니다(출14:9-10). 그러자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동풍으로 그 바닥을 말리십니다(출14:21). 그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출14:22). 물론 바다 속까지 추격을 해오던 애굽의 군대는 전부 수장을 당하고 맙니다(출14:23-28).
그러한 구원의 역사가 약간 다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재현이 될 것이라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이제는 더 이상 바다를 갈라 길을 만들고 다시 물이 흘러 바다가 되도록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말은 한번의 역사로 끝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예 더 이상 바다가 복음사역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지 아니하도록 완전히 조치하실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뜨거운 바람으로 장애가 되는 바다와 강을 말려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사역자가 신을 신고 바다와 강을 편히 건너갈 수 있게 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하게 여러 가지로 제시가 된다는 뜻으로 이사야가 ‘일곱 갈래’라는 용어까지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사11:15).
(2) 다음으로 이사야는 ‘구원의 대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사11:16). 언뜻 보면, 그 옛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많은 족속들이 애굽을 떠나서 행진해 나오고 있는 그 큰 길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출12:37-38). 그 큰 길에 합류하는 자는 모두 애굽의 지배를 벗어나서 자유민이 됩니다. 그런데 같은 이사야의 글 제19장 말미를 참조하게 되면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
(3) 풀이를 해보자면, 제사장나라가 멸망을 당할 때에 그 백성들이 도망을 치거나 또는 끌려가서 여러 이방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소위 ‘남은 자’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들이 이방세계에서 오랜 세월 하나님신앙을 지키며 살게 됨에 따라 그 선한 영향력이 앗수르나 애굽 땅에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신앙을 얻게 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여기서 ‘남은 자’ 사상이라고 하겠습니다.
(4) 특히 메시아가 오신 이후에는 만민구원의 복음이 유다의 지경을 넘어서 조직적으로 이웃나라로 전파가 됩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이방선교의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애굽과 앗수르의 땅이 대표적으로 선교의 기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애굽에 곱틱 교회가 성립이 되고 알렉산드리아가 신학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리고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가 이방선교의 가장 큰 기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행13:1-3). 따라서 이사야가 그와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서 여기서 ‘구원의 대로’가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 땅(시리아)에 열릴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신앙을 버리고 있는 제사장의 나라들 소위 북조 이스라엘과 조국 유다에 대하여 절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차례로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심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나타나시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형제국가 사이에 더 이상 질투와 그로 인한 전쟁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미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사라져버린 상태이기에 그 예언은 더 이상 혈통적인 선민의 역사에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어 만민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 앞에 더 이상 장애가 되는 홍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와 강을 말려버리시고 복음의 대로를 여러 갈래로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나라 애굽과 앗수르의 백성들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며 복음전파의 큰길에 함께 동참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 한 마디로, 본문의 깊은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6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6.14 |
---|---|
이사야 강해 제6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6.14 |
이사야 강해 제6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6.13 |
이사야 강해 제6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6.12 |
이사야 강해 제6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