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68강(사12: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18일(화)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 이유(사12:1-3, 엡2:1-10)
이사야는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절을 살펴보면서 함께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사12:1); 주전 739년 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높은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뵙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사1:1, 6:1).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 받아 동족들에게 전하게 됩니다(사6:8-13).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국과 이웃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가 깨달은 내용을 전하면서 그것을 후세를 위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 ‘대선지서 이사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선지자로서 세상에 전하고 있는 많은 내용들을 요약해보면 위의 글 곧 다음의 내용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는 하나님 보시기에 진노의 자식들 곧 멸망의 대상들이었다(사12:1a). 둘째,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회개와 용서의 기회를 주셨다(사12:1b). 셋째,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위(安慰, 안전하게 보호하고 위로)해주시니 그것을 감사할 따름이다(사12:1c).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대상을 구원해주시고 오히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인도하시고 돌보아주시니 그 은혜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내용은 한 마디로,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해주고 새로운 선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 가운데에는 다음 사실이 미흡합니다; 첫째, 자신에 대한 구원의 성격이 강합니다. 따라서 온 세상에 대한 구원의 내용이 미흡합니다. 둘째, 이 세상에서의 안위함에 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에까지 이르는 구원의 의미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어떻게 용서하며 어떻게 구원해주실지, 특히 영생을 주시는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미흡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을 보완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훗날 사도 바울의 다음 글을 차제에 함께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예수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10).
둘째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하나님께서 진노의 자식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앞길에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달라져있는지 몰라도 세상은 별로 달라져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고 있기에 성도들이 하나님에게 계속 감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조금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그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시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려움보다 항상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더 크고 강합니다.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하심으로 그 사실을 새삼 깨닫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받으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자는 그와 같은 실제적인 구원의 은혜를 항상 찬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훗날 사도 마태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강력하신 보호하심이 어떻게 작동이 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29:18-19), “또 만물을 그의(그리스도 예수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1:22).
(3) 풀이를 해보자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서 천하의 권세를 주시고 만물을 주관하게 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을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온 세상의 권세가 모두 그리스도에게 이미 귀속되어 있다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고 세상을 나아갈 때에 성도들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릴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 선지자 이사야가 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하는지 세 번째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생수를 길어 올리는 기쁨을 주셨기에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 대목은 마치 메시아가 그 신앙의 뿌리를 아버지 하나님께 뻗어서 생명의 능력을 얻는 것과 흡사합니다(사11:1).
선민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목마름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든든히 요기를 한다고 해도 그리고 많은 물을 마신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허기와 갈증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입니다(요4:13). 그러한 끊이지 아니하는 갈증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 갈증이 육신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육신이 죽고 나면 자연히 해결이 될 문제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갈증이 더 심하다고 하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영혼이 충만한 기쁨을 얻고 육신적으로도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을 어디서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 해답을 얻어야 진정한 감사를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훗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한 대목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4-36).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며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기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를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계21:7). 사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생명수입니다(요4:14, 6:54-55).
그 생명수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주기를 원했던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복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음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입니다. 조금 고급스럽게 말한다면, 예수님의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 두 가지를 깊이 묵상하여 깨달음을 얻어 실천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구원의 샘물을 기쁨으로 평생 동안 퍼 올릴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 번째의 감사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의 본뜻을 복음으로 알려주시고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인생을 보여주셨다는 그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가 세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첫째, 진노의 자식을 용서하시고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남은 인생 가운데 세상을 이길 힘을 계속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사야의 표현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지 아니할 도리가 있겠습니까?(사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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