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63강(사10:28-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13일(목)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전국적으로 유린하는 앗수르 군대의 막강함과 그 강군을 쳐부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사10:28-34)
첫째로, 이사야는 먼저 거침없이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내침하고 있는 앗수르 제국 산헤립 황제의 원정군의 활약상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28) 그가(산헤립 황제가)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그의 장비를 두고, (29) 산을 넘어 게바에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 (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31) 맛메나는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도다. (32)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사10:28-32).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앗수르 제국은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남쪽 국경을 남조 유다 왕국 및 해안가의 블레셋과 마주하게 됩니다. 먼저 군대를 이동하기 좋은 해변 길을 따라서 남하를 시도합니다. 그 결과 블레셋의 다섯 도시국가와 전쟁을 벌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그 여세를 몰아서 유다 왕국을 내침한 것입니다. 동북쪽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격하는 도중에 많은 성읍들을 점령합니다.
(2)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유다 왕국을 두 차례나 침공하여 정복한 성읍의 수가 46개에 이르고 있다고 고고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2개 성읍의 이름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제36장에서 산헤립의 주력군이 전략적 요충지 라기스에 주둔한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사36:2) 제37장에서는 남방 애굽 제국의 군대가 쳐올라 오자 립나에서 맞아 큰 전투를 벌인 사실까지 적고 있습니다(사37:8).
(3)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에 동북쪽 유다 왕국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12개의 성읍의 위치는 그 도중에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의 지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라기스는 블레셋의 땅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따라서 산헤립의 주력군은 그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사36:2). 만약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블레셋이 다시 후방을 치려고 한다면 효과적으로 반격을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남방의 강대국 애굽 제국이 북상하여 진격을 해오는 경우에도 효과적으로 대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를 눈치챈 구스와 애굽의 군대가 해변 길로 곧장 북상을 하자 산헤립 황제는 립나로 이동하여 그들의 진격을 도중에서 차단하고 있습니다(사37:8-9). 그곳에서 큰 전투가 벌어집니다. 군사력을 양분하게 된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은 예루살렘 성을 빨리 얻기 위하여 선전관 랍사게 장군을 시켜 항복을 적극 권유하게 됩니다(사37:10-13).
2)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의 이름은 라마입니다. 베들레헴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이므로 그러합니다. 기타 11 성읍의 이름은 대부분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북쪽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동서와 남쪽이 모두 높은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새지역입니다. 해발 800미터의 고지이므로 앞이 트여져 있는 북쪽으로 진격하는 것이 옳습니다.
3) 그러므로 유다 왕국의 수비전략은 예루살렘 북쪽의 경계를 삼엄하게 하는 것입니다. 동북쪽에서 비스듬히 서북쪽으로 믹마스, 게바, 기브아 등 세 곳의 요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군대는 그 세 곳의 요새를 차례대로 격파하고 있습니다(사10:28-29). 앞 마당을 적에게 내어준 예루살렘 성은 꼼짝없이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러자 갈림, 라이사, 아나돗, 맛메나, 게빔, 놉 등의 인근 성읍의 주민들은 도망하기에 바쁩니다(사10:31-32a). 미처 난을 피하지 못한 백성들은 약탈을 당하며 학살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사10:30). 마침내 앗수르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채 항복을 권유하는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사10:32b).
둘째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 살펴보더라도 산헤립의 앗수르 군대는 천하무적입니다. 블레셋과 애굽 제국의 군대가 맥을 쓰지를 못합니다.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예루살렘 성에 갇힌 채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항복을 종용하는 앗수르의 장군 산헤립의 최후통첩의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왕하18:28-35). 성내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한 때를 미리 내다보면서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3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34)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사10:33-34). 간단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이사야는 앗수르 제국의 군대에 대하여 ‘그 장대한 자’, ‘그 높은 자’, ‘그 빽빽한 숲’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첫째, 혼혈민족인 앗수르의 정병들은 기골이 장대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연전연승으로 패배를 모르고 기고만장해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왕국을 하나씩 정복할 때마다 그들은 타 민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호신마저 정복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셋째,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수가 18만 5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왕하19:35). 마치 빽빽한 숲과 같습니다.
(2) 그렇게 패배를 모르는 거인들의 대군을 누가 격파할 수가 있을까요? 거인 블레셋 족속도 두 손을 들고 있습니다. 거인 구스의 정병을 앞세운 애굽 제국의 군대도 전세를 역전시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혁혁한 위력으로 단숨에 그들을 무찔러버리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10:33).
(3) 특히 이사야는 살과 뼈로 만들어져 있는 적병을 사정없이 베어버리고 있는 하나님의 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쇠에 대해서는 훗날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그(여호와)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겔1:27),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1,600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14:19-20).
(4) 하나님의 얼굴이 단 쇠와 같습니다. 그 분노가 불꽃이 되어 원수들을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가 낫을 휘둘러서 적군을 무찔러버립니다. 쇠를 이길 나무가 없듯이 아무리 적군이 천하무적이며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낫에 베어져 버리는 육신과 같은 것입니다. 교만한 앗수르 제국의 군대가 그와 같이 참패를 면하지 못할 것임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블레셋의 군대를 무찌른 산헤립의 정병이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진격해올 것입니다. 그 앞에 유다 왕국의 군대는 참패를 면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도망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이 약탈을 당할 것입니다. 그 참극은 제사장나라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간 결과 자초하고 있는 심판입니다. 그러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한다면 전세는 역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백전백승의 앗수르 군대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혁혁한 위력 앞에서는 한갓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부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참 신앙을 회복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구원을 받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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