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60강(사10:15-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10일(월)
창조주를 몰라보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과 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세 가지(사10:15-19)
첫째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몰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사10:15). 그 세 가지에 대하여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끼가 스스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사10:15a). 그것이 창조주를 몰라보고 있는 자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생각해보면, 도끼는 나무를 베는데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도끼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판정하는 자는 도끼 자신이 아니고 사용자입니다. 여기서 도구인 도끼의 의미를 확장하여 종이라고 생각할 때, 그 사용자는 주인이 됩니다. 좀더 의미를 확장하게 되면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말은 하나님에 의하여 좋은 목적이든지 안 좋은 목적이든지 간에 쓰임을 받고 있는 도구에 불과한 인간이나 국가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능력자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가자가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 그와 같은 행태는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사람이 주인을 밀어내어버리고 자신이 스스로 업적의 평가자가 되어 크게 자랑을 하면서 그 영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톱이 그 사용자 앞에서 스스로 큰 체하고 있습니다(사10:15b). 그것이 하나님을 몰라보고 있는 자들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톱이라고 하는 연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자는 사람인 주인입니다. 그런데 톱이 스스로 큰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톱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주인을 무시하고 있는 처사입니다. 톱이 망치나 끌 앞에서 자신이 큰 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톱을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는 주인 앞에서 자신이 큰 자라고 여길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창조주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행태와 같은 것입니다.
(3) 막대기가 사용자를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사10:15c). 사람은 막대기를 사용하여 다른 물건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자의 의도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막대기가 반대로 자신의 의지로 사용자를 움직이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보고 있는 자들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흔히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훈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인생을 사용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출32:26, 마26:39).
둘째로, 창조주를 몰라보고 위와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심판하실까요? 그 방법에 대한 이사야의 언급이 다음과 같습니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사10:16-18). 하나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사10:16a),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사10:18b); 창조주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자는 그 몸이 쇠하여지고 병자처럼 점점 쇠약해지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상적으로는 출세를 하고 성공하여 부귀를 누리면서 잘 살고 있는지 몰라도 그 마음은 불안해하며 영적으로는 깊은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우물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말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4:13).
(2)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10:16b),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사10:18a); 창조주를 모시지 아니하고 사는 자는 자신이 자랑하고 있던 성취가 불에 타버리고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매서운 비판과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모두 불타버리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죽고 나면 후세에 그 영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위대한 업적도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성취가 창조주의 뜻에 맞지 아니하면 불에 타버리고 소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두 번째 심판의 방법입니다.
(3)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사10:17); 첫 번째 심판은 사람이 병이 들고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쇠하여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사람의 영화뿐만 아니라 그 재물이 불타서 없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의 심판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빛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로 역사하셔서 창조주를 무시하고 인생을 사는 자를 아예 그 불꽃으로 소멸시켜버리시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역사하시면 그 빛으로 사람들이 생기를 얻고 삶을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요1:4). 그러나 반대로 불꽃으로 역사하시게 되면 그 앞에 서게 되는 자는 전부 화염에 타버리게 되는 영벌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마25:46, 계20:15). 그것이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끝으로, 그러므로 어찌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빛을 정확하게 쪼여야만 합니다. 창조주를 무시하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그 가까이 가서 자랑을 하거나 큰 체를 했다가는 큰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불이 일어나서 건방진 찔레와 가시를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와 재물도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참혹한 결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사10:19).
결론적으로, 빛이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종의 신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주인과의 차이를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신앙을 가진 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거리를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수를 지키며 창조주의 주권을 침범하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의 빛을 마음껏 쪼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너무 멀리하고 떠나버리게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재물과 영화를 누려도 그 마음 속은 추운 법입니다. 더 위험한 경우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허풍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불이 나와서 교만하고 목이 곧은 자를 아예 태워버릴 것입니다. 요컨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분수를 지키고 주인과 종사이의 거리를 지키는 그것이 하나님신앙을 가진 자의 올바른 삶이며 법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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