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57강(사10: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8월 7일(금)
선민들의 잘못된 선택과(사10:1-2) 그 결과(사10:3-4a), 그들이 새로운 선택을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사10:4b).
첫째로, 선민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10:1-2). 선민들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으로 경영이 되고 있는 제사장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손발이 되고 있는 모세가 그 율법을 동족들에게 전했으며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출19:3-8).
모세의 시대부터 선민들은 율법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과 제사장나라를 운영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제정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의 소송을 판결하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의 취지를 구현하는 것이 국가의 행정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세상에서 유일하게 거룩하게 선택된 민족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나라가 하나님의 율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입법, 사법, 행정 모두가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선민들이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 불의한 명령을 조문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사10:1). 제사장나라와 세상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사장나라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왕이나 백성들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세상나라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반포하신 율법이 국가의 모법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제정하는 법률이나 시행령 그리고 국왕의 명령인 조서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취지를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들의 나라에서 버젓이 율법의 취지를 벗어나는 법률을 만들고 왕명을 조문화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 어째서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사장나라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왕을 모시고 국가를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니 계셔도 자기들이 국가를 잘 운영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나 그 명령인 율법이 별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함부로 자신들 선민들에게 유리하도록 율법의 취지를 벗어나는 법률을 만들고 왕명을 반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제사장나라의 행태가 세상나라와 다를 바 없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3) 선민들이 재판을 불공평하게 하고 있다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사10:2a). 출애굽기를 보면, 광야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취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가 모세입니다. 그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백성들의 소송을 친히 담당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재판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율법의 해석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에 매달리고 있습니다(출18:13-16). 그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워서 장인 이드로가 재판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하부조직을 만들고 그들을 교육시키라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출18:19-26).
(4) 그 결과 제사장나라의 사법부가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법부가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 입법이 된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취지에 맞도록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술 더 뜨고 있습니다. 뇌물을 주는 자에게 유리하게, 돈 없는 자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백성들의 권리가 재판관들에 의하여 박탈을 당하고 있습니다(사10:2a).
(5) 제사장나라의 행정행위가 잘못되어 있다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10:2b). 국가의 행정이 잘못되면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계층이 도리어 소외가 되고 맙니다. 그 대신에 행정행위에 의하여 부유한 계층에게 그 몫이 돌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복지국가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가 형성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율법국가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고아와 과부’가 약탈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그들의 복지인 것을 제사장나라 지도자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고아와 과부’를 버린 것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버린 것으로 간주하고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사10:2b, 마25:40-46).
둘째로, 잘못된 선택이 초래하게 되는 결과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사10:3-4a). 잘못된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선민이라고 하는 자들이 제사장나라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 말씀의 취지를 어겨가면서 나라를 경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의 세 가지 작용인 입법, 사법, 행정 행위가 모두 그러하다고 이사야가 조목조목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사10:1-2).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있음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징계는 실로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벌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10:3a). 둘째, 짐작도 못하는 먼 곳에서부터 그 환난이 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10:3b). 만약 가까운 곳에서 변수가 발생하거나 사전에 짐작이 가능한 환난이라고 한다면 사전대비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환난을 어찌 어찌하여 견디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이 문제가 됩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먼 곳에서부터 환난을 불러올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이사야는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사10:3cd)고 되묻고 있습니다. 당장 닥치고 있는 환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환난을 불러오고 있는 원인과 주체가 문제입니다. 따라서 환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주시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도망하여 도움을 구해야만(사10:3c) 환난의 근본원인이 제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감기를 치유할 때에 대증요법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사실과 같습니다. 정확하게 근본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여 치료약을 투여하고 체질개선을 해야만 합니다.
(3) 이사야의 언급은 한 단계 더 깊은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환난을 피하거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서 그 환난을 극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사람이 죽으면 함께 사라지는 세상의 영화를 넘어서는 경지의 구원을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사10:3d)고 하는 말은 영생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영원한 영광을 얻으라고 하는 간절한 당부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4) 만약 현세의 영화만을 추구하면서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형편에 처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며 환난에 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종내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사10:4a)이라고 이사야가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확한 언급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세구복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면 결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롬8:2). 죄악 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 곧 포로 된 자들의 지배를 끝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죽은 자들의 지배를 받다가 그들처럼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셋째로, 유일한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을까요? 그 대목을 언급하고 있는 이사야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사10:4b). 그리스도의 복음의 절정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사건입니다. 무덤 속에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죽음 다음에 부활이 있듯이 심판과 더불어 구원이 예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요11:25-26). 쉽게 말하자면, 인생과 세상의 종말 가운데 자신의 영생과 새로운 세상의 창조가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여전히 구원의 손길이 펴져 있습니다(사10:4b). 따라서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하더라도 구원을 예비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길과 손길을 결코 외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눅22:61-62).
결론적으로, 세상나라뿐만 아니라 제사장나라마저 타락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있기에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저 힘있는 자들만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의 법률제정은 불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재판을 행하고 있습니다. 행정행위도 가난한 백성을 착취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십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먼 곳에서부터 환난이 찾아오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애타게 외치고 있습니다; “부디 세상과 환난만을 바라보지 말고 주권자 하나님과 그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영화를 넘어서는 영생과 영원한 영광을 추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다시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오늘날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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