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4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 03:14

이사야 강해 제44(7:21-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725()

 

다시 임하는 광야생활; 이사야는 그것이 잘못된 선민사상과 약속의 땅 집착을 청산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고 있다(7:21-25)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멀지 아니하여 앗수르의 대군이 쳐들어와서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전국적으로 유린하고 말 것입니다; “그 날에는 주(하나님)께서 하수(큰 두 강) 저쪽(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7:20).

이어서 선지자 이사야는 전쟁 후의 참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21) 그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23) 그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24)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 보습(쟁기나 가래)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7:21-25).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문은 결코 전쟁으로 인한 참상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황폐화된 광야에서 솟아나오고 있는 새로운 소망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상세하게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함께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그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7:21-22a); 언뜻 보면 비참한 전후의 형편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축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겨우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를 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축을 그 정도 길러서는 먹고 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린 수소 하나와 숫양”(29:1)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한 어린 암소와 두 () ”(7:21)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목축사회에서 값이 나가는 가축은 본래 수컷이 아니고 암컷입니다. 수컷으로부터는 젖이나 새끼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수소와 숫양은 어릴 때에 잡아서 그 고기를 팔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흠이 없는 것은 특별히 골라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 사용을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29:1)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전쟁 후의 비참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너희 백성들에게 한 사람이 한 마리의 어린 암소와 두 마리의 어린 암 양을 키울 수 있도록 남겨 두겠다고 약속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제물로 사용하는 수컷은 말할 것도 없고 암컷까지 살아남게 하여 백성들이 계속하여 소젖과 양젖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3)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 젖의 양이 충분하도록 조치를 해주겠다는 의미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축을 건강하게 그리고 다산(多産, 새끼를 많이 낳음)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 언급하고 계시니 그 은혜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7:22b);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엉긴 젖과 꿀을먹을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될까요? 그 용어는 같은 제7장에서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먹는 식품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7:15).

앗수르의 대군이 물러가게 되면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피폐해진 국토와 전쟁 후의 어려운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1)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적군을 물리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왕하19:32-36). 자신들이 한 일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 살려달라고 매어 달린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터이니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 오만하고 방자한 이방나라의 강대국 앗수르의 군대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한 사실을 성전에서 액면 그대로 고발했을 뿐입니다(왕하19:10-19).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적군을 물리쳐주신 것입니다(37:34-38).

(2)  그러므로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서원한 그대로 하나님신앙을 온 백성이 회복해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첫째, 외교와 국방에 있어서 강대국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대국 앗수르를 물리쳐주셨다는 사실을 내외에 공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만 합니다. 셋째, 구원주 하나님의 은총을 공포하고 이방나라에도 하나님신앙을 전파해야 합니다. 넷째, 이방신상과 호화사치풍조 그리고 뇌물문화를 물리쳐야만 합니다. 다섯째,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고 무죄한 자가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3)  그렇게 악을 버리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공의 곧 선을 택하여 살아갈 때에 장차 성육신한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선민들의 땅에 젖과 꿀같이 흘러 넘칠 것입니다. 비록 국토는 적에게 유린을 당하여 황폐화 되어있지만 영적으로는 신령한 복이 흘러 넘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일찍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생활 가운데 보호하시고 길러주신 하나님의 충만한 복이 다시 그들 유대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그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7:23-24);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그리고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7). 그러므로 여기서 그가 값비싼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던 곳마다 황폐화되어 찔레와 가시가 자라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 대목은 그의 조국 유다 왕국이 앗수르의 내침으로 얼마나 황폐화되고 말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피폐하고 광야와 같이 변하고 말았으므로 농사를 짓기에는 부적당합니다. 따라서 활을 가지고 가서 사냥이나 할 뿐입니다.

넷째로,보습(쟁기와 가래 등의 아래 쇠 부분으로 직접 땅을 가는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을 말함)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7:25); 그와 같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광야와 같이 변해버린 땅에도 놀라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목축을 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풀이 다시 자랄 것이며 소와 양이 마음껏 뛰놀며 먹거리를 얻을 것입니다. 전쟁을 통하여 백성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던 특권층들이 많이 사라져버린다면 오히려 평등한 사회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피폐해진 전후의 삶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귀중한 시기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이사야가 역설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신앙이며 복일까요? 예루살렘과 조국 유다의 번영과 영화가 하나님의 복을 말하고 있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멀지 않아 전 국토가 앗수르 군대의 침략으로 황폐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신앙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될 수가 있다고 이사야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게 되는 것은 그들 선민의 군대가 아닙니다. 그 옛날 모세처럼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할 때에 전쟁의 승리가 기적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들은 전리품을 얻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신앙고백이 새로운 제사장나라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남은 자들이 엉긴 젖과 꿀을 먹게 될 것’(7:22)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이미 설명한 그대로 그리스도처럼 선과 악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엉긴 젖과 꿀처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사야는 은근히 선민들이 종교적인 기득권과 아집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장차 만민구원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민족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