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4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31. 16:03

이사야 강해 제41(7:9-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722()

 

굳은 믿음으로 굳게 서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양보하고 배려하시는 것(7:9-14)

 

이스라엘 자손은 선택된 백성입니다. 그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 백의 족속 가운데 뽑힌 것입니다(19:5-6). 둘째, 표본으로 선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조치를 해보고서 그 결과를 분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확대실시의 여부와 보완조치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첫째로, 만약 유대인들에게 물어본다면 선민의 의미는 단연코 첫 번째의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갔기에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대로 자손인 그들에게 선민이 되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13:14-18, 26:3-5, 28:13-14, 35:9-15, 2:23-25, 3:15, 4:30-31). 한 마디로, 조상을 잘 만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그 자손들에게 혈통적으로 임했다는 논리입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과 광야생활의 기적이 그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요? 그와 같은 전통적인 선민사상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7:9). 과연 그러한지 그 말씀의 뜻을 다시 한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솔로몬 대왕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후에 열 지파를 떼내어 그만 여로보암에게 주게 됩니다(왕상11:29-33). 여로보암이 북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자 에브라임 왕가가 출범을 하고 있습니다(왕상11:26, 12:20).

(2)  에브라임 왕가를 이루고 있는 여로보암 부자가 또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연이어 실패를 하자 장군 바아사의 반란을 통하여 왕권이 잇사갈 지파에게 넘어가게 됩니다(왕상15:25-28). 하나님은 언약 안에 머물고 있지 아니한 왕가나 백성들에게 계속 은혜를 베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3)  바아사의 아들 엘라 왕 때에 잇사갈 지파 내에서 시므리의 반란사건이 발생합니다(왕상16:8-10). 이를 수습한 사령관 오므리가 왕이 되자 사마리아로 천도하여 백성들의 사기와 나라의 기틀을 재정비합니다(왕상16:23-24). 그러나 하나님신앙을 회복한 것이 아닙니다.

(4)  그 결과 그의 아들 아합 왕 때에 이방 신 바알을 섬기는 풍조가 극성하게 됩니다(왕상16:30-33). 아합 왕가를 청산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하여 예후의 반란을 용인하지만 그 역시 타락하고 맙니다(왕상19:16, 왕하10:17, 28-31). 그 이후 사마리아는 배신과 반역이라는 궁중모반의 현장이 되고 맙니다(왕하15:10, 14). 그 흐름이 베가 왕에게까지 이르고 있습니다(왕하15:25).

(5)  르말리야의 아들인 반역자 베가 왕은 한 걸음 더 엇나가고 있습니다. 이방나라와 연합하여 같은 선민의 나라를 침략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16:5, 7:1).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북쪽의 제사장나라를 버리시고자 하십니다; “65년 내에 에브라임’(북조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는 용어로 볼 경우)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7:8b).

(6)  그와 같은 무서운 경고가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7:9a)고 하는 알 수 없는 구절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에브라임 왕가가 몰락하고 잇사갈 왕가가 들어섭니다. 머리 권력 곧 대권인 왕권이 바뀌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므리가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 천도하여 새 기풍으로 반란의 시대를 끝내고자 하지만 하나님신앙을 떠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7)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과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 결과 세상의 권력을 탐하며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반역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8)  마침내 반역자 베가가 왕이 되자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속국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것도 이방나라 아람과 동맹하여 침략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도상에서 아예 베가의 이스라엘 왕국과 르신의 아람 왕국을 지워버리고자 하십니다(왕하15:29-30, 16:9, 17:5-6).

(9)  그 사실을 예언으로 어렴풋이 전하면서 선지자 이사야가 동족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선민이 하나의 면죄부를 가진 특권인 줄 착각하지 마십시오. 같은 이스라엘의 자손인 사마리아의 왕조가 어떻게 망하게 되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다윗 왕조와 유다의 백성들도 회개하고 여호와신앙을 굳건히 하지 아니하면 같은 종말을 고하고 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의미가 진하게 담겨 있는 구절이 바로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7:9b)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선민의 나라가 이방인의 나라와 똑 같이 변하고 말았음을 베가와 르신의 유다 침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환언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선민사상이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의 시대가 지나고 그들의 역사가 하나의 샘플이 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도 실패하고 있는 하나님신앙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들이 굳건하게 지닐 수가 있을까요? 그 문제에 대하여 강력한 대안이 마련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을 말하고 있는 예언이 본문 제10절부터 제14절까지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굳은 믿음으로 굳게 서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하나의 양보와 하나의 배려를 행하시겠다고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양보는 하나님을 감히 시험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것입니다(7:11). 하나의 배려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징조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7:14)”.

(2)  굳건한 믿음을 얻어 하나님 일을 제대로 행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깊은 것이든지 높은 것이든지 하나를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6:16)는 모세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기나 한 듯이  아하스 왕이 단번에 이를 거절하고 있습니다(7:12). 그는 세상적인 다른 대안을 이미 마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앗수르로 하여금 북방 두 나라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원조를 요청하는 매우 현실적인 방안입니다”(왕하16:7-9). 만약 아하스 왕이 세상적인 책략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신앙을 회복하였더라면 두 가지의 복을 동시에 얻었을 것입니다; 첫째, 북방 두 나라의 빈틈을 노려서 앗수르가 자연히 배후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7:4). 둘째, 이리를 피하려고 호랑이를 가까이 끌어 들이는 잘못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참고로, 여기서 깊은 징조는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살아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27:52-54, 11:44).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선보이는 것을 말합니다(37:4-10). 그리고 높은 징조는 하늘의 능력이 기적으로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천체가 움직임을 멈추는 것(왕하20:9-11),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임재, 또는 만나의 기적이나 오병이어의 기적 등이 이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4)  아하스 왕이 거절하고 있기에 고심 끝에(7:13) 하나님께서 꼭꼭 숨겨두셨던 비책을 예언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7:14). 그것은 모든 사람이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보완책입니다. 한 마디로, 구원주를 이 땅에 보내어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또한 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5)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여기서의 처녀는 깨끗한 몸으로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함께 아들을 낳는 경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알지를 못하고 합방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생산하는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생명체를 만드시는 능력을 보유하고 계시는 창조주의 능력에 속합니다(1:34-38).

(6)  창조주가 생물학적으로 아버지가 없는 순수한 여자의 후손을 이 세상에 보내어주겠다는 예언입니다. 창세기를 참조하면, 아담부부를 이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이 이제 공식적으로 가동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결론적으로, 다윗 왕조의 후계자인 아하스 왕이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제의에 대하여 일단 거절을 합니다. 그 제의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의지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신앙을 굳건히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앗수르 황제에게 친서를 보내어 원군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7:13). 다윗의 후계자가 백성을 잘못 인도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이제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비책이 바로 그리스도를 이 땅에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믿는 자를 해방하여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는 일생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만민에게 굳센 믿음을 가지게 만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