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8강(사7: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7월 19일(주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연합하여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공격하지만 결코 이길 수가 없는 두 번째의 이유(사7:3-4)
평소 하나님을 유일하신 창조주로 제대로 섬기지를 아니하고 우상의 하나쯤으로 우습게 여기며 이방인의 풍습을 쫓아 풍요의 신과 전쟁의 신을 즐겨 섬기고 있는 아하스 왕과 그 신하들입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아브라함 때부터 인신제사를 금지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창22:12-13) 어기고 왕국의 강성함을 소원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이방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합니다(왕하16:1-4). 그러한 그들이 북방의 두 나라가 연합하여 쳐들어온다고 하자 심히 두려워하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습니다(사7:2).
그래도 전쟁에 대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 첫걸음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지하상수도 공사를 진두 지휘하는 것입니다(사7:3). 지정학적으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 성은 해발 800미터나 되는 고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는 고원의 분지이며 천혜의 요새입니다. 그러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왕과 귀족들이 모조리 예루살렘 성에 틀어박혀서 끈질기게 수성(守城)전략을 구사해야만 합니다. 그럴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이 양식과 물입니다. 양식은 전쟁을 대비하여 항상 비축을 충분히 해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물을 끌어다 저수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성밖의 지하수를 예루살렘 성안으로 안전하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수백 미터에 이르는 지하수로를 건설해야만 합니다. 그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로 성문 밖에 위치하고 있는 소위 ‘세탁자의 큰 밭’ 곧 동네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있는 그곳이 마지막 공사의 현장입니다. 그 작업을 빨리 끝내라고 독려를 하고자 아하스 왕이 곧 행차할 것입니다. 참고로, ‘세탁자의 큰 밭’ 곧 동네 빨래터가 있는 그곳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이기에 훗날 앗수르 산헤립 왕의 신하 랍사게가 그곳에서 성을 향하여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통첩의 메시지를 육성으로 외치기도 합니다(왕하18:17-3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함께 ‘세탁자의 밭’이 있는 큰 길로 가서 아하스 왕을 만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사7:3). 그리고 다음의 말씀을 친히 전하라고 지시합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7:4).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왜 두 나라의 연합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째서 이사야로 하여금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함께 왕을 만나라고 지시를 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이제부터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다음세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이름자에는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 왕에게 나아가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암묵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스알야숩과 같은 젊은 세대가 전란에서부터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먼 훗날에 혹시 왕국이 망한다고 하더라도 남는 자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내비치고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주전 701년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모조리 없애버리시고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 주십니다(사37:36). 그리고 바벨론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해주고 있습니다(스1:1-4).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북방 두 나라의 연합군이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이길 수 없는 두 번째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7:4b).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이사야는 제6장 말미에서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6:13)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한 바가 있습니다. 그 뜻은 장차 유대인들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앙의 그루터기와 같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가 망하고 그 백성들이 온 세상에 유민으로 떠돌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신앙을 지키고 있는 ‘남은 자들’이 먼 훗날 그 신앙의 뿌리를 뻗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생수로 퍼 올리기만 한다면 온 세상에 복음의 시대가 열린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2) 그런데 아람과 이스라엘이라는 북방의 두 나라는 다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하나님신앙을 모조리 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이 믿고서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세상적인 힘뿐입니다. 예를 들면, 힘이 있는 자가 언제나 왕을 죽이고 떳떳하게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는 무서운 군신(君臣, 임금과 신하)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적인 힘만을 의존하여 왕국을 다스리고 있으므로 창조와 질서의 신인 여호와의 눈밖에 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전번 강해에서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3) 이제 두 번째의 이유입니다; 거룩한 그루터기에서는 뿌리가 뻗어나올 수가 있지만 불에 타서 연기가 나고 있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서는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그루터기가 불에 타버리고 있으므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생장점’(生長點, growing point)이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신앙이 도저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패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4) 그렇다면, 왜 북방의 두 나라가 불에 타서 연기가 나고 있는 부지깽이와 같은 입장에 처하고 있는 것일까요?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앗수르가 북방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패권국가로 다시 발 돋음을 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서 서토(西土, 서쪽의 땅)를 얻고자 호시탐탐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반역을 통하여 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 왕국의 야심가 베가가 이에 맞서고자 동맹군을 모으고 있습니다(왕하15:25, 사7:1). 그런데 형제국가인 남방의 유다 왕국이 이에 불응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미 동맹을 맺고 있는 시리아의 아람 왕국의 르신 왕과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를 처벌하고자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가 있을까요?
(5) 하나님은 아니라고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앗수르가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분에 못 이겨서 마치 불이 붙은 부지깽이처럼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채 대군을 이끌고서 남쪽으로 쳐들어온다고 한다면 그 빈틈을 누가 공략하겠습니까? 앗수르의 기습이 충분히 예상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와 같은 정세판단을 진작에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사7:4).
(6) 형편이 그러함에도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제대로 하나님신앙만 회복하고 방어만 튼튼히 하고 있으면 북방 두 나라 연합군의 배후를 노리고 있는 앗수르 때문에 유다 왕국이 어부지리를 취할 판입니다. 그 점을 일깨워주어도 믿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에 앗수르의 황제 디글랏 빌레셀에게 친서를 보냅니다(왕하16:7). 아하스 왕과 신하들이 감히 하나님보다 앗수르 황제를 더 의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노하십니다. 그 결과 북방의 완충국가 아람과 이스라엘이 차례로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이어서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앗수르의 군대에 의하여 크게 유린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강대국 사이의 전쟁에서 어부지리를 얻고 전략적으로 ‘균형자’(均衡者, balancer or cast-voter)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것이 성사되지를 못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하나님신앙 안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고난이 영광으로 나아가는 첩경입니다(롬8:17-18). 북방의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연합하여 쳐들어오고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하나님신앙을 먼저 회복하라고 아하스 왕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뒤에 버티고 있는 호랑이 앗수르 때문에 두 나라의 군대가 별 성과 없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책략을 물리치고 앗수르 황제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맙니다. 이리를 피하는 대신에 호랑이를 지척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습니다(삼상2:30). 그 결과 다윗 왕국의 멸망이 더욱 구체적으로 이사야의 예언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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