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6강(사6:13b)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7월 17일(금)
하나님신앙의 그루터기가 베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이 땅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와 그곳에서 새 줄기가 뻗어 나을 수 있는 이유(사6:13b)
선지자로 세움을 받고 있는 이사야가(사6:1-8) 동족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사장나라라고 하는 선민 유대민족이 하나님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실천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6:9-10). 둘째, 그 때문에 결국은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6:11-13a), 셋째, 거룩한 씨가 나무의 그루터기같이 살아 남아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입니다(사6:13b).
오늘 강해는 그 가운데 세 번째 계시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니라”(사6:13b).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 있으면 그곳에서 새 가지가 뻗어 나오고 다시 나무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생장점’(生長點, growing point)이 나무둥치에 위치하고 있는 식물이 그러합니다. 이제 본문말씀에 대하여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두 가지 종류의 나무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1) 비유나 상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소재는 독자들에게 친밀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독자들이 그 비유를 현실감 있게 피부로 느낄 수가 있으며 동시에 기억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산간지역에서 잘 자랄 수 있는 나무이며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수종입니다. (2) 꽤 단단한 나무들입니다. 따라서 구태여 힘을 들여서 그 그루터기까지 파내지를 않습니다. 요컨대, 나무를 목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베어내더라도 그 그루터기를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흥미로운 경우를 하나 예로 들어보자면, 20세기초까지 백인들이 뉴질랜드 북섬에서 많이 베어낸 가오리나무가 그러합니다. 워낙 쇠같이 단단한 나무이므로 공업용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까지 전세계적으로 그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모조리 베어서 수출을 했습니다. 그 결과 뉴질랜드에서부터 세계적인 목재재벌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단단한 재질이므로 그 그루터기를 못 베어내고 남겨두었습니다. 나중에 가오리나무를 찾을 수가 없게 되자 드디어 그 그루터기까지 캐내어서 수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은 경우와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 말씀일까요? 창세기의 내용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인류 최초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부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21:33, 한글개정판). 그는 ‘맹세의 우물’을 의미하고 있는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나서 비로소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서 기념수로 사용이 되고 있는 사철나무가 바로 에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만이 비록 바늘처럼 생긴 잎이지만 겨울에도 푸른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철 푸른 잎을 지니기 위하여 그 나무는 자기 키의 세 배나 되는 뿌리를 뻗어서 메마른 반(半)사막성 토양에서 지하수를 빨아올리고 있습니다. 그 생명수와 같은 지하수가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브엘세바의 우물’입니다. 그러므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하는 것은 그 믿음의 뿌리를 그루터기에서부터 깊이 뻗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를 잣아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뿌리를 뻗을 수 있는 그루터기를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심판의 날 또는 하나님신앙의 암흑기에도 반드시 남겨놓으시겠다고 하는 것이 본문 ‘사6:13’ 절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은 일찍이 북쪽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불러서 하신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7,000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셋째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하나님의 말씀에 뻗어 그 생명수를 끌어올려서 사철 신앙의 푸르름을 얻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호하실까요? 그 보호하심은 일찍이 아브라함이나 엘리야를 철저하게 보호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2:11). 그들이 바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강력하게 하나님의 인과응보적인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명을 다하게 되면 하늘로 올리어가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요약을 해보자면, 세상이 심판의 와중에 들어서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온 세상에 전해야만 하는 자들은 밤나무나 상수리나무의 그루터기와 같이 베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남게 됩니다. 그렇게 거룩한 씨를 보호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치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놓으시는 7,000명의 의인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그루터기에서부터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말씀의 역사,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하나님나라의 건설로서 이 땅에 마침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그러한 그루터기의 개념은 훗날 말씀을 가지고 온 세상에 흩어져나가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루터기에서 뻗어 나오는 가지는 천국의 씨를 뿌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브라함의 때와 같이 각별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3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5.30 |
---|---|
이사야 강해 제3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5.29 |
이사야 강해 제3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5.29 |
이사야 강해 제34강(작성자; 손진길 작성) (0) | 2021.05.28 |
이사야 강해 제3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