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37강(사7: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7월 18일(토)
시리아의 아람 왕국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연합하여 남조 유다 왕국을 공격할지라도 그들이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사7:1-2)
이스라엘의 자손이 출애굽을 하였을 때 그들은 장정만 계산해도 그 수가 약 60만명이었습니다(출12:37). 그러므로 전체 인구가 2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어 어엿한 하나의 민족규모입니다. 하지만 큰 하자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군대를 미처 갖추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급습한 족속이 아말렉입니다(출17:8).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족속의 보따리를 털겠다고 광야의 무법자이며 마적 떼인 그들이 기습을 한 것입니다. 기마병을 앞세운 아말렉 족속은 그야말로 광야의 약탈자로 그 악명이 높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어중이떠중이인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승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말렉이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전력을 가지고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전혀 없습니다. 그 근거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백 년 이상 대를 이어가면서 애굽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오다가 갑자기 출애굽을 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출12:37-29). (2) 그러므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전무합니다. (3) 물론 병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으며 무기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4) 더구나 며칠 동안 광야 길을 걸어오느라고 너무나 지쳐버린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5) 그 틈을 노려서 아말렉이 마적답게 기습을 해온 것입니다(출17:7-8).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스라엘 군대의 대승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상대하여 싸우신 전쟁이라는 것입니다(출17:11-13, 16). 따라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누구 편을 들어주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집어삼키고자 바야흐로 북방의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연합하여 쳐들어오고 있습니다(사7:1a). 누가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왕국이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연 어느 진영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일까요?
만약 유다 왕국이 승리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들이 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나라라고 하겠습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그 점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범상하지 아니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사7:1),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사7:2). 뜻풀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이라고 하는 서술은 하나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가의 왕권이 자손대대로 무리 없이 승계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하스 왕의 왕권이 그러합니다. 다윗의 자손인 할아버지 웃시야로부터 아버지 요담에게로, 그 다음에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 자신에게로 왕권이 계속 승계되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왕권이 계속 승계가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신앙도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왕하16:2-4) 그래도 아람 왕국의 왕위 계승의 모습이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위계승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분명히 큰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남조 유다 왕국에 있어서만은 다윗 대왕의 후손에게 계속 ‘만세일계’(萬世一系, 오랜 세월 무수한 세대를 이어가면서 계속 한 계통임)로 왕위가 승계되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사야는 자랑스럽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사7:2a). 유다 왕 아하스 역시 다윗 대왕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그의 자손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둘째로, 아람 왕국의 벤하닷 왕이 병이 들자 신하인 하사엘에 의하여 살해되고 맙니다. 그리고 하사엘이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힘이 있는 신하가 왕권을 차지하는 것이 이방인의 나라 아람 왕국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면 이웃나라를 침략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아람 왕국의 형편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지자 엘리야에게 다음 왕이 될 자 하사엘에게 미리 기름을 부어주라고까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왕상19:15, 왕하8:13). 그 나라의 마지막 왕이 바로 ‘르신’입니다(왕하16:9).
셋째로, 비록 제사장나라라고 하지만 북조 이스라엘 왕국도 이방나라 아람 왕국과 비슷합니다. 초대 왕 여로보암의 왕가가 아들 때에 바아사의 반란을 만나게 됩니다(왕상15:27-28). 그때 에브라임 왕조가 잇사갈 왕조로 바뀌고 맙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은근히 비꼬고 있습니다;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므로”(사7:2b). 바아사의 왕가 역시 아들 때에 반란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군대장관 오므리가 반란을 진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왕상16:22). 그 후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지만 바알 신을 심하게 섬기다가 그 왕가가 훗날 예후의 반란을 만나서 망하게 됩니다(왕하9:24, 10:7).
예후 왕가는 증손자 여로보암2세 때에 한동안 번성하였으나 계속 우상과 이방 신을 섬기다가 고손자 스가랴 때에 망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반란이 잇달아 발생합니다.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르말랴의 아들 베가 역시 반역으로 왕이 된 자입니다(왕하15:25). 그러므로 그 표현이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사7:1c)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르말랴’ 또는 ‘르말리야’는 물론 왕위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넷째로, 위와 같은 사실만 잘 알고 있으면 북쪽의 두 나라가 연합하여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염려해야만 하는 일은 누가 모세처럼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온 백성을 대표하여 손을 들고서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는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출17:9-12). 그런데 평소 하나님신앙을 멀리 떠나 있는 아하스 왕과 신하들은 그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국가인 이스라엘이 이방나라 아람과 연합하여 쳐들어오자 심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사7:2bc).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전란을 맞이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혹시 하나님을 떠나 있지 않는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편에서 정확하게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이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듯이(창12:3) 그렇게 보호를 해주실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더 간단한 점검의 방법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신하가 주군을 살해하지 아니하고 올바로 섬긴 왕국이 바로 다윗 왕조의 남조 유다 왕국입니다. 반대로, 그 나라를 집어 삼키고자 달려오는 두 나라 곧 아람과 북조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그들의 왕들은 모두 반란을 했거나 아니면 반란을 한 조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패역한 무리들이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패전할 것이라는 진단법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군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족보 이야기를 가지고 은근히 내비치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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