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4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1. 04:48

이사야 강해 제42(7: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723()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 세 가지(7:14-16)

 

이사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의 멸망이라는 미래를 알게 됩니다(6:11-13).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아람을 비롯한 이방나라나 하나님신앙을 일찍 떠나버린 북조 이스라엘 왕국도 마찬가지로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2:12-22). 그렇게 역사적인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어떠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중요한 세 가지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는 본문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7:14-16).

간단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1)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와서 믿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성육신이며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2)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이 비로서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이며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3)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확보에 집착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젖과 꿀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삶의 은혜입니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처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의사 누가가 현지를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수집하여 그의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0-35).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성령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완전한 처녀 마리아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아들을 잉태하고 낳도록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2)  의사 누가는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두 가지일까요? 서로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과 똑같이 모태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며 제자들과 공생애를 함께 살다가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신 인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자 그리스도는 그 이름이 예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3)  반면에 약 7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선지자 이사야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인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다고 하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가슴이 벅찬 감격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함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르침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계신다고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아예 그리스도의 이름을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둘째로,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7:15);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게 됩니다. 애초 그 열매를 따먹고 선과 악을 하나님처럼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기를 원했던 그들입니다(3:5-6).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선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인간의 욕구와 탐심을 따른 것이기에 선이 아니라 악을 선택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3:6-7, 10). 그와 같은 인간의 행태의 전형이 자자손손 대물림이 되고 있는 인간의 사회입니다. 그와 같은 사회에서 어떻게 구원함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람들에게 악이 아니라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앞으로 악이 아니라 선을 선택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줄 것입니다(7:15a). 그러면 제자들이 그 방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은혜와 더불어 주시는 두 번째의 은혜입니다.

(2)  세 번째의 은혜는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7:15b)는 말씀 가운데 담겨 있습니다. 본래 선민들이 살고 있는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3:8). 그것이 이른바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을 점령하고 잘 살게 되는 것이 선민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실현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땅이 곧 천국이 아닙니다(11:13-16). 그것은 거쳐가는 정거장에 불과합니다.

(3)  그러므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엉긴 젖과 꿀이라고 하는 것은 비옥한 가나안 땅과 그 땅의 풍요로운 소산물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으며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영적인 삶이 바로 엉긴 젖과 꿀을 먹고 사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7:16); 그와 같은 세 가지의 은혜를 얻게 되면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심판과 세상의 종말 가운데 구원함을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함을 당하지만 그리스도는 새로운 시대를 여실 것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결국 장차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세상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함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제사장나라도 망하고 이방나라도 망하고 모두가 역사적인 심판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가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함께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구원의 길을 여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침내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그리스도로부터 전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에게 배운 바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젖과 꿀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함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땅과 그 풍요로움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천국을 사모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인 삶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