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4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1. 15:06

이사야 강해 제43(7:17-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724()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에게 임하는 여호와의 두 단계의 징계(7:17-20)

 

첫째로, 1 단계는 그 나라를 쪼개버리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7:17). 그 방법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정식으로 처음 드리고 있는 제사의 방법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 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좇았더라”(15:8-11).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훗날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시고 있습니다(15:18). 약속대로 그 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 제사의 방법이 바로 제물을 반으로 쪼개어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15:10).

(2)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곧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제물처럼 반으로 쪼개어지는 처분도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신앙에서 떠나게 되면 나라가 쪼개어지는 비극도 감수하겠다는 언약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단지 하나의 제례의식으로 그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나라를 형성했던 다윗 대왕의 아들 때의 일입니다. 다윗의 제국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 솔로몬의 치세(治世, 세상과 나라를 다스림)가 그러한 것입니다. 솔로몬 대왕은 통치 전반기에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예루살렘 성전도 짓고 백성도 지혜롭게 다스리면서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였습니다. 그러나 치세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제 마음대로 정치를 했습니다. 이방나라의 많은 공주를 후궁으로 맞아들이고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궁에서 호화사치를 다하면서 전국에 걸쳐서 요새와 신도시를 건설하는 모든 부담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떠넘겼습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를 제외한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그 결과 북쪽의 열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세겜에서 그만 독립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왕상12:20). 나라가 두 개로 쪼개어진 것입니다;

(1)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방법입니다. 그 대목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7:17a).

(2)  민족분단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윗의 왕조가 정신을 차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담과 아하스 왕의 치세가 그러합니다. 따라서 두 번째 단계의 징계가 임하게 된다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7:17b).

셋째로, 두 번째의 단계는 그 나라를 밀어버리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치 모세의 시대에 애굽을 징치(懲治, 징계하고 치리함)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앗수르 땅의 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草場, 풀밭)에 앉으리라”(7:18-19).  이사야 예언의 뜻을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그 옛날 이방나라 애굽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사장나라인 유다 왕국에도 재앙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죄악의 수위(水位, 물이 차오르는 높이)가 동일할 경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훗날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의 잘못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왕하21:11-12, 15:16).

(2)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바로를 혼내기 위하여 파리떼를 불러들인 것처럼(8:21, 24) 앗수르 땅에서 벌을 불러 들일 것입니다(7:18). 왕벌이 유다 왕국에 쳐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모세오경에서 그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23:2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7:20). 전국이 적군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백성들이 유민(流民, 떠돌이 백성)이 되고 만다는 의미입니다.

넷째로, 20절 말씀에 대한 해석이 어렵습니다;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河水, 강물)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削刀, 털을 깎는 칼)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7:20). 그러나 성경의 말씀과 고대사회의 관습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풀이가 가능합니다;

(1)  같은 이사야의 기록에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22:12)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은 머리 털을 뜯거나 삭발(削髮, 머리를 깎아 대머리를 만드는 것)을 한다는 것이 슬픔과 애통 가운데 하나의 결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다음 기록을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27:31).

(2)  그렇다면 고대사회에서 슬픔과 애통함과 회심의 결단이 함께하고 있는 장면은 어떠한 경우일까요? 본래 유교에서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기 때문에 조상을 섬기듯이 깨끗이 간수를 해야만 한다. 훼손하는 것은 크나큰 불효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머리 털을 뜯으며 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절의 아픔을 느끼면서 차제에 더 큰 결심을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겪고 있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약간 다른 예로써 불교의 경우에는 출가(出家)의 결단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삭발의례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3)  그러한 의미가 현대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강경한 뜻을 고수하기 위하여 삭발의식을 하는 경우입니다. 뜻이 관철될 때까지 단식을 감행하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본문의 의미가 그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4)  그 의미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털을 밀고 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앗수르의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땅과 백성을 징계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나라가 스스로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게 되면 타의에 의하여 엄청난 슬픔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끝으로, 머리털만 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발 털과 수염까지 털이라고 하는 것은 모조리 깎여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모조리 털을 뽑아서 어디에다가 사용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마치 닭의 털을 뽑듯이 신체에서 털을 모두 제거하고 깨끗하게 사용하는 용도는 한 가지뿐입니다. 제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제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7:16, 19, 25).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실 때에 진작에 그 뜻을 알아 채고서 겸손하게 반성을 하고 말씀대로 순종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마음으로는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자신의 욕심과 잘못된 습관 때문에 도저히 올바른 순종이 어려우면 삭발을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매어 달려야만 합니다. 부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켜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기도는 기쁨으로 응답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변화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을 통하여 이 땅에 주어지는 복음의 시대를 열망하면서 이사야가 선지자로서의 책무를 자신의 시대에 있어서 끝까지 감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