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6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16. 03:30

로마서 강해 61(9:22-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2()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의 능력과 구원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영광에 대하여(9:22-24);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노, 능력, 긍휼, 그리고 영광입니다. 가지 용어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진노가 가장 먼저입니다(9:22a).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이방인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양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저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선민의 이익만 챙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선민 이스라엘만 보호하고 구원해주시는 수호신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이방인들에게는 진노와 멸망을 내려 달라고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피조물을 모두 사랑하시고 전부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능력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심판의 능력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심판의 능력보다는 사실 구원의 능력이 능력입니다(9:22b). 그것은 창조주께서 모든 피조물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지니고 계시는 사랑의 속성입니다;

1)      당장은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뜻을 어기고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그들을 모두 심판하여 멸망시켜버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마치 토기장이가 잘못 만들어진 그릇을 부수어 버리고 흙으로 마음에 드는 다른 그릇을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2)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멸망의 심판 대신에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관용을 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9:22c).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베푸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3:16).

(3)   셋째, 긍휼이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딱한 처지에 대하여 동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9:23a). 그러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딱한 형편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의 처지와 형편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계실까요? 히브리정경을 보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수시로 천사들을 대동하시고 인간세상에 현신을 하십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시고 계십니다(18:1-3). 또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이 롯을 만나기도 합니다(19:1-3). 그러나 그러한 잠깐 동안의 현신과 시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들의 아픔과 고통을 깊이 있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방법이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지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체휼(體恤, 몸으로 체득한 긍휼) 끝은 한없는 동정심으로 그들을 모두 구원하고자 대속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시는 것입니다(26:39).

(4)   넷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여 주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서 세상에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28:18-20). 그리고 만민구원과 만물구원을 이루고자 하십니다(8:19-23). 또한 그렇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간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8:16-18). 그들에게 그리스도에게 주신 영광을 나누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9:23b).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참여할 있는 자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9:24). 사도 바울이 그러한 것처럼 로마시의 성도들도 함께 세계선교에 나서게 되면 동일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게 것입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면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글을 적어서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15:2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 보이시고 그의 능력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9:22);

(1)   토기장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그릇을 부수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주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9:19-21). 피조물에 불과한 그릇이 창조주의 절대주권에 대하여 무슨 항의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릇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의 자식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자식이 부모에게 항변하는 것과 같이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를 정도로 잘못 만든 책임이 사실은 나를 낳으신 부모님께 먼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자식의 항변에 대하여 부모님의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정도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책임을 먼저 지고자 합니다. 다음에 자식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 사실은 창조주께서 어버이의 책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십자가 희생으로 나타난 창조주의 마음을 알고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갈 있도록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거듭난 영적인 삶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의 패러다임’(paradigm,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이론적인 틀을 말함) 프로세’(process, 전개 처리의 과정) 대하여 사도 바울이 토기장이 비유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 보이시고 그의 능력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9:22). 항목을 달리하여 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3)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 보이시고”(9:22a);

1)      사람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민들조차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기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눈속임이나 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소원성취만을 하고자 합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세상을 구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2)      창세기 3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아담부부의 타락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그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선악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뱀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모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어 세상을 한번 마음대로 살아보는 그것이 그들의 소원입니다.

3)      그래서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만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것입니다. 그것을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결과는 아담부부의 후손들에게 원죄와 사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죄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4)   그의 능력 알게 하고자 하사”(9:22b); 언뜻 보면, 진노의 대상들에게 멸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생각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창조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고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멸망을 시키는 것은 쉽지만 황폐한 그곳을 다시 복원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식과 같은 피조물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구원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5)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9:22c); 진노의 대상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하기 위하여 여기서 사도 바울이 두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관용입니다. 조금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얼마나 오래 참으신 것일까요?”; 창세기 6장을 보면 약육강식의 세상을 만들어버린 세상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하신 하나님께서는 육신이 되어버린 그들을 떠나 버리십니다(6:3). 결과 노아 시대에 전면적인 홍수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듬해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그와 같은 심판을 하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시면서 노아의 자손들에게 소위 무지개 언약 주십니다(8:21-22, 9:8-17).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정책의 전환이라고 보면, 그때로부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 기간이 됩니다. 기간은 주전 2,457년부터 주후 32년까지입니다. 참으로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2)      어느 것까지 관용하신 것일까요?”;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 모독죄를 적용하여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합니다(26:65-66). 그리고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로마의 반역자로 고발합니다(23:1-2). 결과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이 되십니다(23:23-25). 만약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께서 관용하지 아니하셨다면 어떻게 역사가 전개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역사가 결코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이 대속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흘리신 희생의 피를 보고서 하나님의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때까지 모든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신 것입니다.

둘째로,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9:23);

(1)   여기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영광’(榮光, ẟοξα) 하나님의 것이며 영생의 영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래 진노의 자식인 인간이(2:3)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것이 얼마나 선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진노의 그릇이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이 되어 구원을 받게 것을 말합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은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더욱 풍성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지상명령을 수행하고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오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시켜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22:28-30).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알기 쉽게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벌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8:16-17).

셋째로, 그릇은 우리니, 유대인 중에서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니라”(9:24);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상급이 선민 유대인 출신인 성도들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을 자신 있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은 창조주께서 진노의 자식들을 전부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백성들과 피조물들이 전부 구원의 대상입니다.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벌써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21-22).

결론적으로, 본문을 깊이 음미하게 되면 만민과 만물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다음과 같이 되새기게 됩니다(9:22-24);

(1)   첫째, 진노의 자식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오래 참고 인내하십니다.

(2)   둘째,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는 불명예도 감당하십니다. 더구나 독생자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감내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관용과 사랑에 대하여 놀라게 됩니다.

(3)   셋째, 이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되면 천국으로 인도하여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볼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인생을 복음의 일꾼으로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소망을 바라보며 끝까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