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16. 02:39


소설 아룡전8(작성자; 손진길)

 

비룡은 나이가 50쯤 되어 보인다. 그의 본명은 자신의 별명과는 상당히 다르다. 용이 아니라 호랑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얀 범이다. , 본명이 진백호인 것이다. 진백호는 금나라의 수도인 연경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파송되면서 그때부터 줄곧 자신의 본이름을 숨기고 별명을 대신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부하인 자객들이 수령의 이름을 단지 비룡으로 알고 있다. 헌데 비룡으로 불리고 있는 진백호는 금나라의 지배족인 동북여진의 완안족이 아니다. 그는 백두산 남쪽 삼지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서여진족의 한 갈래인 타오족 출신이다.

하지만 진백호는 연경에서 어린시절부터 자랐다. 그 이유는 그의 부친인 진후강이 일찍이 자신의 탁월한 무예솜씨로 금나라에서 크게 출세하여 심양성주를 지냈기 때문이다. 당시 진후강의 무예가 금나라에서는 천하제일이었다.

진후강의 스승이 백두산의 신선으로 알려진 풍우도사이다. 청소년 시절 삼지연에 살고 있던 진후강이 한 살 아래인 동무 장후상과 함께 백두산에 산삼을 캐러 갔다가 우연히 풍우도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고 무예를 배웠다.

그런데 그것이 천하제일의 무예였다. 왜냐하면, 고대의 단군왕검으로부터 극소수의 제자에게만 전해지고 있던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놀라운 사실을 진후강장후상이 하산하여 금나라에서 무관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중에 진후강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금제국의 군대를 전부 통제하는 심양성주가 되었다. 반면에 자신보다 무예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장후상은 작은 성 철령성주가 되었다. 진후강은 1180년대에 만주 땅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하고 있는 야율족의 추장 야율종진과 대결을 벌인다.

그런데 그만 그의 사제인 장후상이 금제국의 황제인 세종을 배신하고 야율종진의 무예에 굴복하여 그의 신하가 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진후강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하여 화해사절로 찾아온 사제인 장후상을 처형한다. 그리고 기마병을 동원하여 야율종진과 당당하게 전면전을 벌인다.

하지만 그 결과가 심히 허무하다. 2합만에 야율종진의 창에 진후강이 비명횡사하고 말기 때문이다. 만주의 주둔군 사령관인 진후강이 전사하고 나자 그만 만주 땅이 모조리 야율종진 곧 고려의 개경출신인 서우진에게 넘어가고 만다.

서우진은 자신의 아내인 야율족장의 딸 야율애령과 함께 백두산 아래 혜산에 수도를 두고서 종진국을 건설하여 만주일대를 수년간 지배한다. 하지만 천하의 제1검인 서우진이 젊은 나이에 죽고 나자 그의 나라 종진국이 대금에 의하여 무너지고 만다.

그때 진후강의 아들인 진백호가 젊은 나이에 금제국의 원정군에 참가하여 출세하기 시작한다. 그는 출세를 거듭하여 심양에서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자 진백호는 부친의 원수인 종진국의 건설자 야율종진이 사실은 개경의 귀족청년 서우진임을 알고서 그 원수를 갚고자 개경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개인자격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는 연경에 있는 금제국의 황제의 밀명을 받아서 자객단을 이끌고 개경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가 1210년경이다. 벌써 10년이나 개경에서 그 정체를 숨기고 금청각주 비룡으로 살고 있는 금나라의 첩자인 진백호이다.

그는 최근 1220년 봄에 개국사로 자객을 보내어 탑돌이를 하고 있는 최우의 딸 최보령을 암살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김준이라고 하는 최우의 오십부장에게 걸려서 그만 자객이 척살되고 말았다.

이곳 개경에서 10년간 암약하면서 비룡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부하인 자객이 죽었다. 그것도 무방비 상태로 탑돌이를 하던 처녀 하나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당하고 만 것이다.

그 보고를 들은 비룡은 진노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를 직접 암살하고자 계획을 짜고 있다. 그러한 비상시국에 겁도 없이 최우의 조카라고 하는 놈이 금청각에 들린 것이다.  

비룡 곧 진백호가 심복인 두사람과 상의한다; “여보게 천수영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우리가 최우를 암살하여 고려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후 정복하고자 계획하고 있는데 묘하게도 이런 시점에 그의 조카라고 하는 놈이 나타났어. 어떻게 할까?... “.  

비룡의 오른팔인 천수가 말한다; “각주, 우선 제가 한번 나가서 놈의 정체를 밝혀보겠습니다. 정말 최우의 조카인지 아닌지 판별한 다음에 적절하게 처리하시지요?... “. 맞는 말이다. 역시 천수는 신중한 재사 겸 무인이다.

그래서 비룡이 결단한다; “좋다. 그러면 저 녀석은 천수 자네가 맡아서 적절하게 처리하도록 하라. 그리고 영길은 나와 함께 최우를 암살할 계획을 더 구체적으로 짜보도록 하자구… ”. 비룡이 자신의 왼팔로 삼고 있는 영길과 더불어 숙의를 거듭한다.

말이 쉽지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를 암살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최우가 한번 행차하면 언제나 그를 지키는 호위부대가 500명이나 된다. 그들은 모두 무예의 고수들이다. 그들 500명의 고수를 뚫고서 최우에게 근접하여 암살해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50대의 자객단장인 비룡과 그의 심복인 40대의 영길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들은 지난 20년간 많은 일을 함께한 사이이다. 비룡인 진백호가 1200년에 심양성에서 30대의 천부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진백호는 부친 진후강이 대금에서 제1의 무인이었기에 그 절기를 이어받아 10대 때부터 연경에서 무예수련에 전념했다. 그런데 15세가 되자 그만 심양성 전투에서 부친이 종진국의 왕 야율종진에게 패하여 전사하고 말았다는 비보를 들었다.

진백호는 그 원수를 갚고자 20살에 대금의 군대에 장수로 들어갔으며 22살에는 종진국을 무너뜨리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그 결과 진백호는 승승장구하여 1200년에는 심양성의 천부장으로 출세한 것이다.

그때 하루는 심양성의 시장에 들렀다가 약을 팔고 있는 두 청년을 만났다. 두사람이 무예를 선보이면서 약을 팔고 있는 것이다. 흥미가 생긴 진백호가 그들을 병영으로 불러서 비무를 해보았다. 그 결과 자신보다 약간 하수이기는 하지만 나이에 비하여 그 솜씨가 엄청났다.

그래서 진백호가 물어보았다; “그대들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비하여 무예솜씨가 남다르다. 어디에서 그러한 무예를 배웠는가?”. 두사람이 똑같이 대답하고 있다; “저희들은 본래 장백산 기슭에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약초를 캐기 위하여 장백산에 높이 올라갔다가 무지하게 나이가 많은 도인을 만났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있던 진백호가 눈을 번쩍 뜨고서 급히 묻는다; “그 도인의 도호가 무엇인가?”. 그때 두 사람 가운데 약간 나이가 많은 천수가 대답한다; “풍우입니다”. 그 말을 듣자 진백호가 천수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그 도인이 아직 생존하시는가?”.

천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하지만 담담하게 대답한다; “저희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시면서 약간의 무예를 가르치시고 여러 해 전에 우화등선을 하셨지요… “. 그 말을 듣자 진백호가 또 묻는다; “그렇다면 그 한가지 부탁이란 것이 무엇인가?”.

이번에는 천수보다 한살이 적은 영길이 대답한다; “풍우도인께서는 자신의 제자였던 두사람을 찾아 달라는 것이였지요. 그 이름이 진후강장후상인데 모두 타오족이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들은 진백호가 눈을 질끈 감는다.

잠시 후에 진백호가 말한다; “진후강은 나의 부친이고 장후상은 숙부격이지. 두분 다 종진국의 왕 야율종진에게 죽임을 당하셨지… “. 그 말을 듣자 천수와 영길이 깜짝 놀라면서 묻는다; “모두 돌아가셨다니요?... 저희 두사람은 스승님의 유언에 따라 천하를 약장사로 돌아 다니면서 그분들을 찾고 있었는데요… “.

그것도 인연인가 보다. 진백호가 그때부터 두사람을 동생처럼 생각하면서 함께 심양성에서 생활하기를 시작한다. 진백호가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배운 무예와 비교할 때 천수와 영길이 시현하고 있는 무예가 상당히 흡사한다. 그래서 진백호는 두사람의 출신성분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의동생으로 삼아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년 세월을 3사람은 같이 움직였다. 10년전에 진백호가 대금 황제의 밀명으로 자객단을 이끌고 개경으로 들어올 때에 다같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최충헌을 노렸으나 성공하지를 못하고 이제는 최우를 암살하려고 한다.

한편 천수 금청각에서 진탕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최준에게 접근한다. 그는 그 옆방에서 술을 마시는 척하고 있다가 슬쩍 자신의 술병을 들고서 죄준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여보게 젊은이, 이것도 인연인데 내 술 한잔 받게나!... “.

최준으로 가장하고 있는 김준이 다소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말한다; “댁은 뉘시길래 다짜고짜 내게 술을 권하시는 것이요?... “. 김준 역시 약간 혀가 꼬인 듯이 말하고 있다. 그러자 상대방이 더 꼬인 혀로 가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옆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것이 적적하여 이 방으로 건너왔어요. 이 방에 계시는 댁이 예쁜 여인을 독자치하고 있으니 내가 건너올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하하하”.

그 말을 듣자 김준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잘 왔어요. 이 세상에 술친구처럼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어요?... 나이와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술친구는 가장 허물이 없는 친구이지요. 옛말에 술 먹는 사람 치고 심보가 고약한 자가 없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소, 노형?... “.

천수 또한 크게 술이 취한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응수한다; “그래요, 나는 얼마 전에 산뚱에서 장사 차 개경에 온 천수라고 합니다. 젊은이는 어디서 오셨어요?... “. 최준으로 가장하고 있는 김준이 얼른 대답한다; “허허, 산뚱에서 오셨어요? 나는 항저우 임안에서 왔지요… “.

그 말을 듣자 천수가 말한다; “그 참 놀기 좋은 곳에서 오셨군요. 남송의 수도인 임안에는 미인이 많다고 하던데그래 재미가 좋으셨소?... “. 그 말을 들은 김준이 속으로 염두를 굴리면서 역시 취한 척 대꾸한다; “그럼요, 역시 대금보다는 남송이 더 부유하고 미인이 많지요. 이곳 고려의 개경을 빼고서 말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고서 천수가 갑자기 웃으면서 말한다; “어쩌면 생각이 저하고 똑 같으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인이야 개경에 더 많지요. 그래서 저는 장사 차 개경에 들리게 되면 꼭 이곳 금청각을 찾아와서 술을 마시지요하하하그래 젊은이는 여기 개경의 귀족 자제분이신가요?”.

술이 좀 취해 있지만 김준이 속으로는 긴장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태평하게 대답한다; “저야 개경에 오면 고명하신 저의 백부님 덕분에 잘 먹고 잘 마시다가 다시 남송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제 이름은 최준이라고 합니다. 아마 노형께서는 처음 들어보셨을 거예요그런데 노형의 이름은 무엇이고 이곳 개경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

천수가 아차하면서도 즉시 대답한다; “하하하, 저야 타고난 장사꾼이지요. 산뚱에서 배로 좋은 물건을 싣고 와서 벽란도 상인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러면 한동안은 이곳 금청각에서 즐길 수가 있지요. 그 수입이 제법 좋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진작에 천수라고 말씀을 드렸지요하하하… “.

그러나 날카로운 김준의 눈썰미를 완벽하게 속일 수는 없다. 술에 취한 척하고 있지만 김준이 볼 때에는 40대로 보이는  천수라고 하는 작자는 잘 벼루어진 한자루의 칼과 같다. 이 자는 무인 중의 무인이다. 아니면 자객 중의 자객이다. 역시 무예의 고수는 상대방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김준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것 봐라. 역시 이 금청각이 자객단의 소굴이 맞구나. 그런데 남송이 아니고 대금의 산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금에서 온 자객들이 이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이군... 이들의 목적이 무엇일까?... “. 김준이 취한 척 하면서 한번 푹 찔러 보기로 한다.

김준이 슬쩍 말한다; “노형은 연세에 비해서 몸이 좋습니다. 장사꾼을 하기에는 아까운 몸매입니다. 그래, 그곳 대금에서는 우리 고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 천수는 자신이 최준이라고 하는 젊은이를 탐색하려고 왔다가 자신의 보따리가 먼저 털리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에 놀랄 천수가 아니다.

그래서 천수가 가볍게 대답한다; “대금은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본래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지요. 그러니 같은 뿌리인 고려와는 잘 지내고자 합니다. 그래, 고려조정에서는 대금과 잘 지내고자 합니까?... “. 순간 김준이 생각한다; “능수능란하구나. 식견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 한번 당해보아라… “.

김준이 혀를 약간 굴려서 대답한다; “아하하, 고려국은 본래 황제의 나라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뒤를 잇고 있지요. 그러니 만주 땅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고려의 것이지요. 그런데 대금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전히 차지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

천수 역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한다; “하하하, 땅의 주인이야 천하의 패권을 쥔 나라의 것이지요. 지금은 대금의 천하이니 만주 땅이 대금의 것이지요. 다만 고려의 강산을 침범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서로 사이 좋게 지내면 그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하하하… “.

김준은 천수와의 취한 척하는 대화를 통하여 자객단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 “이 자들은 대금에서 보낸 암살단이 틀림없다. 말로는 잘 지내자고 하면서 속으로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보령 아가씨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주군이신 최우 나리가 위험하다. 이거, 어떻게 처리를 한다?... “.

천수는 김준이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크게 관심이 없는지 갑자기 김준의 양 옆에 있는 기생 가운데 한사람을 껴안으며 말한다; “젊은이, 오늘 밤 이 기생 한사람은 나에게 양보해 주시게. 쌀쌀한 가을밤에 내가 따뜻한 여자가 필요해서 그래부탁 좀 합시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김준이 통쾌한듯이 호응한다; “아하하, 좋습니다. 제가 젊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력을 아껴야지요. 오늘밤은 한사람 양보를 할 터이니 그렇게 하시지요... 여봐라, 오늘밤 너는 저 노인장을 잘 모시도록 하려무나.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천수가 속으로 생각한다; “젊은 친구가 보통이 아니구나. 칠 때는 치고 빠질 때는 빠질 줄을 아는 녀석이다. 이거 남송에서 그냥 유학이나 하고 있는 유약한 인물이 아니다. 최우의 한쪽 팔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간을 두고 더 조사를 해보아야 하겠구나!… “.

동상이몽의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개경의 밤이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과연 천수는 비룡에게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그리고 비룡과 영길이 꾸미고 있는 최우 암살 건은 성사가 되는 것일까? 아울러 천수와 영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아룡과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