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6(작성자; 손진길)
1220년 정월 중순에 한달 동안의 훈련이 끝난다. 그날 수료식에서 교관 장승우가 말한다; “한달동안 수고 많이 했다. 이번 조는 훈련성과가 좋다. 내가 가르쳐준 내공심법을 열심히들 수련한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막 시험에서는 상당히 몸을 가볍게 하고 내력을 나름대로 이용하여 가마를 위로 들고서 달리는 훈련까지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것은… “.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갑자기 장승우가 말을 끊더니 4명의 수료자 얼굴을 한차례 훑어본다. 그 다음에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사실 대단한 성과이다. 지금까지 다른 조의 훈련기간에서는 실패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 조는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교관은 마음이 기쁘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자부심을 가지고 보령 아가씨를 직접 가마에 태우고 잘 모시기 바란다. 이상”.
그 수료식 자리에는 특별히 교관 장승우가 초청했는지 마당쇠와 문지기의 무술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교관 백주환은 물론 백부장인 무활까지 참석하고 있다. 물론 가마꾼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서기 김호남과 다모 새별도 참석하고 있다.
수료자 가운데 가마꾼인 장무가 은근히 다모 새별을 보고서 함박 웃고 있다. 장무의 나이가 20대 중반이다. 그는 한달 동안 같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면서 다모 새별의 얼굴을 자주 살피더니 금새 정이 들었는가 보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고서 아룡이 혼자서 웃는다.
수료식을 마치는 마지막 순서에 교관 장승우가 부탁을 했는지 백부장 무활이 축하를 겸하여 한마디를 한다; “그대들은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나에게서 내공심법을 배운 교관 장승우가 특별히 그대들에게 그것을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이곳 개경에서 그 심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여기 최우 장군의 저택 뿐이다. 그렇게 알고서 열심히 계속 내공을 수련하여 보령 아가씨를 잘 모시기 바란다. 이상”.
그 말을 듣자 수료생인 관창, 장무, 조룡이 무척 감격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아룡도 얼른 자신도 감격하는 척한다. 자기가 그보다 훨씬 뛰어난 내공심법을 벌써 절정으로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렇게 순서가 거의 끝나갈 때쯤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이 시비를 한사람 거느리고 그곳으로 온다. 그녀를 보자 모두들 절을 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눈이 밝은 아룡이 그녀의 모습을 보자 크게 놀란다. 그 여자의 모습이 자신의 모친 문가연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룡은 첫눈에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의 금지옥엽 최보령이 마음에 든다. 그녀의 나이는 아룡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20살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 집에서는 신분이 높은 아가씨의 나이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다. 그것은 주군 가정의 사적인 일이므로 남에게 극비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령 아가씨가 시비인 사월과 함께 등장하자 얼른 교관 장승우가 훈련생들에게 말한다; “오늘 여러분들은 보령 아가씨를 처음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아가씨를 잘 모셔야 한다. 여러분들이 최일선에서 아가씨의 신변을 경호하면서 가마를 운행해야 한다. 모두들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도록… “.
그 말을 듣자 보령 아가씨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방금 소개받은 최보령입니다. 앞으로 나의 신변을 지키고 바깥에서 나의 발이 되어줄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관창과 장무, 조룡과 아룡 이상 4사람에게 한달간 교육을 시켜준 장교관도 수고를 많이 했어요. 무활 숙부도 고마워요. 그러면 내일 봐요”.
아룡이 보령 아가씨의 얼굴을 슬쩍 곁눈질하여 본다. 모친 문가연의 얼굴과 무척 닮아 있다. 그런데 아룡은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보령이 문가연과 얼굴이 닮아 있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보령의 모친의 이름이 정하경이다. 고려의 문신인 정숙첨의 딸이 정하경이며 그녀는 아룡의 모친인 문가연과 이종사촌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문가연의 어머니와 정하경의 어머니가 자매이다. 일찍이 문가연의 모친은 재상 문극겸의 아우와 결혼하고 정하경의 모친은 문신인 정숙첨과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딸인 문가연은 이의민의 재사인 김문종과 결혼하고 정하경은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와 결혼한 것이다.
그러한 복잡한 관계를 알 리가 없는 아룡이다. 그저 최보령 아가씨의 모습이 그 옛날 어릴 때 본 모친 문가연의 모습과 흡사하기에 속으로 깜짝 놀라며 그저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리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도 운명적인 만남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날부터 아룡이 보령 아가씨를 가마에 태우고 다니는데 그녀를 보호하기에 열심이다. 따지고 보면, 보령 아가씨가 행운아이다. 왜냐하면, 천하의 기재이며 무예의 절정고수인 김재룡의 보호를 자신도 모르게 그저 받게 되는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령 아가씨는 활달한 성격이므로 외출이 잦다. 그녀가 주로 방문하는 곳은 3군데이다;
첫째가, 황궁이다. 그곳에는 그녀의 절친인 경화가 고려왕 고종의 후궁이 되어 있다. 경화도 외로운 처지라 그런지 자주 보령이 황궁으로 그녀를 찾아 주기를 원하고 있다. 후궁인 경화는 나중에 딸을 하나 낳지만 그 이름이 역사책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둘째가, 외조부인 정숙첨의 집이다. 그곳에는 정숙첨의 손녀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정숙녀가 보령 아가씨와 단짝이다. 서로 흉허물이 없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있는 사이이다.
셋째가, 사찰이다. 개경시내에는 흥국사와 왕륜사 등 유명한 절들이 있는데 그녀는 꼭 개경 바깥에 있는 개국사를 방문하고 있다. 그 절을 방문하는 것이 번잡하지가 않고 그녀의 마음에 편한 모양이다.
아룡이 같은 조인 관창, 장무, 조룡과 함께 보령 아가씨를 태우고 하루는 개경시내를 동문으로 빠져나가 개국사에 들린다. 그때 그곳까지 따라온 주군 최우 집의 무사 한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자의 이름이 김준이다. 그는 대를 이어가면서 최충헌 집안의 노비였는데 무예가 출중하여 호위무사의 직책을 얻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날은 1220년 봄날이라 개국사를 방문한 신도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탑돌이를 하고 있는 보령 아가씨를 해치고자 하는 암살자가 순식간에 덮친다. 그때 먼 발치에서 그것을 본 김준이 단검을 던졌는데 그것이 적중한다. 가마꾼들은 개국사에 도착하면 보통 대문간 가까운 곳에서 쉬게 된다.
하지만 그날 아룡은 보령 아가씨의 안위가 염려되어 멀찍이 그녀를 따라가고 있다. 보령이 개국사에 오게 되면 가장 먼저 탑돌이를 하기에 그날도 그녀가 탑을 돌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사람의 검객이 그녀에게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룡이 먼저 보았다. 그래서 얼른 작은 돌을 주워서 은밀하게 날렸다. 같은 순간에 단도가 하나 날아들어 그 암살자에게 적중되고 있다.
아룡은 본능적으로 그 단도를 날린 자를 눈으로 찾는다. 좀 떨어진 오른쪽에서 김준이 던진 단도이다. 상당한 내력이 들어갔는지 날아가는 단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것을 보고서 순간적으로 아룡이 생각한다; “김준은 알려진 것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구나. 그 단도를 던진 내력을 보니 백부장 무활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도 고려의 개경에서 10손가락 안에 드는 무예의 고수이겠구나!... “.
그 장면을 보고서 아룡은 무사 김준이 보령 아가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아가씨도 그가 싫지 아니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 신분이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주인 아가씨이다. 다행히 최우가 김준의 무예솜씨를 아껴서 집안의 오십부장으로 부리고는 있지만 종의 출신이라는 딱지가 여전히 붙어 있는 것이다.
그날 김준은 암살자의 시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자의 몸에 돌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을 본다. 옆구리에 박혀 있는 그 돌이 치명적이다. 자신의 단도가 암살자의 몸에 꽂히는 비슷한 순간에 그 돌이 박힌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고수가 암살자를 동시에 제거한 것일까?
김준이 거의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룡이 들어오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암살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또한 김준이 단도를 던지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자 아룡이 일찌감치 그 자리를 피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예실력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아룡인 것이다.
아룡은 스스로 벙어리가 된 이후 청각과 시각이 놀랍도록 향상되어 있다. 따라서 김준이 던지는 단도를 보고서 그 비검의 수법과 내력의 정도까지 단번에 파악하고 있다. 김준은 특이하게도 위에서 아래로 팔을 휘둘러 단도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내력을 크게 불어넣었기에 그 속도가 엄청나다. 그 내력의 수위가 아룡이 자신의 2할 정도이다.
김준의 무술실력과 내공이 백부장 무활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룡이 그렇게 짐작하고 있는 것은 그가 한번 무활의 시범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활은 최우의 저택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병들의 사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달에 한번 반드시 사병들을 모아 놓고 무예의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 자리에 한번은 가마꾼들이 불리어가서 무활의 시범을 보게 되었다. 무활을 존경하는 교관 장승우가 특별히 그렇게 조치한 것이다. 그 장소가 연무장인데 그때 무활이 내력을 불어넣어서 단도를 던졌다. 그것이 100보 거리에 세워져 있는 과녁을 맞추고 있는데 그 속도가 마치 화살과 같다.
그 광경을 보고서 호위무사들과 가마꾼들이 탄성을 지르면서 말한다;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던진 단도가 저렇게 빠르게 멀리 날아가서 정확하게 표적을 맞추고 있는가? 저렇게 되면 구태여 활을 쏠 필요가 없겠는데… “.
그렇지만 아룡은 달리 속으로 생각한다; “나의 사부이신 도학스님만 하더라도 150보의 거리에 있는 표적을 저 정도로 빠르게 맞추신다. 실제로 보니, 무활의 내력은 나의 2할 정도이구나. 그는 아직도 외기를 받아 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나와 비교하면 엄청난 내력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구나!... “.
아룡의 판단이 정확하다. 사람의 내기만 다스려서는 외기를 다스리는 자의 3분의 1수준에 그치게 된다. 그러므로 외기를 사용할 줄을 모르는 백부장 무활이 아룡의 경지의 2할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것이다. 그 내공이 전체의 6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놀라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는 자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개국사에서 김준이 단도로 암살자를 잡고 보니 그자에게서는 신분을 알 수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김준은 그때부터 수사에 착수한다. 누가 감히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의 금지옥엽인 아가씨를 해치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정치적으로 최우를 노린 것과 진배가 없다.
그러나 그 꼬리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김준은 개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암살단 조직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김준의 머리속에는 온통 그날 개국사에서 엄청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있는 아름다운 보령 아가씨의 환영 뿐이다. 주종간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단숨에 뛰어넘어서 보령 아가씨는 잘 생기고 무예가 뛰어난 김준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러한 보령 아가씨의 신임과 따뜻한 눈빛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김준이 암살자의 배후를 밝히고자 혈안이다. 아룡은 그러한 김준의 행동을 보면서 남녀 간의 애정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위험한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자신은 젊은 날의 모친의 모습을 매우 닮아 있는 보령 아가씨에게 끌리고는 있지만 그것은 남녀 간의 애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 무사 김준은 그것이 아니다. 보령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는 김준의 눈빛은 마치 불길에 활활 타고 있는 장작과 같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은 어쩌면 그 두 사람 때문에 최우의 집에 한 차례 풍파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벌서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룡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백부장 무활이 선을 보인 그 단도 던지는 요령과 김준이 보여준 그 비검의 수법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그 둘과 비교할 때 아룡은 자신의 사부인 도학스님이 가르쳐준 비검술이 더 탁월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도학스님이 외공술에 있어서는 고려의 제1인자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아룡이 혼자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1220년 봄철이 지나가고 있다. 개경의 봄은 그 남쪽에 있는 파주골의 봄보다 약간 짧은 것만 같다. 그해 여름에 들어서자 이제 아룡이도 최우 저택의 가마꾼으로서 약간의 이력이 붙고 있다. 이틀에 한번 꼴은 보령 아가씨를 가마에 태우고 관창, 장무, 조룡과 함께 개경 시내를 휘젓고 다니고 있으니 그 직업도 괜찮은 것이다.
특히 최우의 집에서는 최고권력자라서 그런지 가마꾼에 대한 대우가 좋다. 호위무사의 수준에 준하여 급료를 지급하고 있는데 그것이 상당하다. 군대로 따지면 거의 오십부장이 받고 있는 급료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매달 봉급이 지급되고 있으니 아룡이 생활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그 집에서는 의식주가 모두 해결이 되고 있다. 그것 외에 그렇게 급료를 받고 있으니 아룡은 부자가 된 느낌이다. 그러한 기분은 동료인 관창과 장무 그리고 조룡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시간이 나면 부모님의 집에 들러 그 돈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들 효자들이다.
그래서 아룡이도 언젠가 파주골로 가서 부모님과 형을 만나고 또한 사부인 도학스님도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가 언제가 될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그래서 아룡은 미래가 기다려진다.
당시 고려는 최씨의 무신정권이 계속되고 있다. 왕국인 고려에서 이상하게도 국왕이 최고권력자가 아니다. 무신인 최우가 최고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상당히 이상하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고려의 왕은 임금이 아니라 최우이다. 한마디로, 왕씨의 나라가 아니라 최씨의 나라인 것이다. 그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학문을 한 똑똑한 인재 아룡이 속으로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고 있다.
비록 자신이 최우의 집에 가마꾼으로 몸을 의탁하고는 있지만 역시 원칙적으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학문과 무예에 비추어 세상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고 있는 자가 아룡이다. 아니 천하의 기재인 김재룡인 것이다. 과연 그의 앞날이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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