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4(작성자; 손진길)
2. 아룡이 최우 집안의 가마꾼이 되다.
스스로 침을 사용하여 벙어리가 되어버린 김재룡은 이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룡’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 이유는 그가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벙어리 용’이라는 의미로 ‘아룡’(啞龍)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자를 듣고 나서는 그가 날때부터 벙어리인 줄 잘못 알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들 있다; “그 참 벙어리에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그 팔자에 그래도 용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 하하하… “.
그러기나 말기나 아룡이는 개경에 도착하여 주막에 묵으면서 3일 동안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염탐한다. 그 결과 아룡이 수집한 정보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해 1219년 여름에 개경에서 무신정권의 독재자 최충헌이 71세를 일기로 별세하고 그의 장남인 53세의 최우가 부친의 권력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고종 6년에 발생한 그들 부자간의 권력승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난 1170년에 시작이 된 무신정권의 시대에 있어서 50년만에 독재자가 자연사를 하고 그 아들이 무사히 권력을 승계하는 초유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씨무신정권이 고려의 국왕의 계보와는 별도로 실질적으로 고려국을 다스리는 권력의 중심이다. 따라서 대신들이 하나같이 최충헌의 장례식에 조복을 입고 참석하며 백성들은 국왕이 승하한 것 이상으로 애도를 하였다는 후문이다. 이제는 고려가 국왕이 이끄는 조정이 아니라 최충헌이 고안하여 설치한 교정도감이라는 기관에서 다스려지고 있는 시대이다.
둘째로, 교정도감은 본래 최충헌이 자신을 반대하고 모반을 꾀하는 세력을 색출하여 처벌하기 위하여 마련한 기관이다. 하지만 그 기능이 달라지고 있다. 최충헌이 교정도감에 뛰어난 문신들을 받아 들여 국가의 대소사를 전부 관할하도록 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일찍 문신생활을 하였기에 그러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교정도감이야 말로 최씨무신정권에 있어서 최고의 정치행정기관이다.
그 점 때문에 훗날 학자들이 일본의 쇼궁이 고려국에 있어서는 최충헌과 최우 등이며 교정도감이 고려의 막부인 바쿠후라고 말하고 있다. 문신이 참여한 교정도감이 고려의 정치와 행정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무신들이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중방의 시대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최충헌의 후계자들이 안정적으로 독재정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로, 최충헌은 1196년에 이의민의 세력을 쳐부수고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그의 집안 어른들은 본래 고려국의 장군들이다. 그렇지만 고려의 국왕들이 문신들을 중용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아들인 최충헌을 문신으로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도중에 무신의 난이 발생하고 무신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전개되고 만다. 따라서 뒤늦게 최충헌이 무관이 되어 활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명문가 장군 집안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관급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동생 최충수와 무신 독재자 이의민의 아들 사이의 분쟁을 빌미로 삼아 불만세력을 규합하여 이의민의 세력을 쳐부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계급이 낮았기에 4년 동안이나 장군들의 견제가 심했다. 따라서 최충헌은 무자비한 숙청과 정적제거를 계속한다.
넷째로, 최충헌은 결국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왕마저 4차례나 갈아치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암살을 노리는 위기를 여러 번 겪는다. 그래서 그는 대를 이어가면서 무단정치를 계속할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고자 한다. 그것이 두가지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동기이다;
하나는, 무신들의 권력기관인 중방을 없애고 교정도감을 설치한 것이다. 최충헌은 문신들을 등용하여 조정과는 별도로 교정도감에서 국가의 행정을 처리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인 고려의 막부이다.
또 하나는, 경대승이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설치하여 운영한 도방을 강화하여 자신의 경호와 감찰기능을 맡도록 한 것이다. 도방을 통하여 최충헌은 개인적으로 고려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로, 1219년에 부친의 별세로 대를 이어 권력을 장악한 최우는 한술 더 뜨고 있다. 그는 도방을 폐지하면서 정방과 서방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방에서는 군권을 장악하고 국가의 인사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서방에서는 교정도감을 전문적으로 감찰하도록 한다. 그렇게 전문적인 기관을 자신의 집안에 만들어 설치함으로써 최우는 최씨무신정권을 영구히 하고자 한다. 만약 몽고의 침입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제도적인 장치에 의하여 고려는 끝까지 최씨무신정권 아래에서 일본처럼 운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룡은 며칠간 개경에 머물면서 자신이 수집한 정보들을 기초로 하여 위와 같이 고려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벙어리 신세가 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부친 김문종으로부터 배운 상당한 학문과 도학스님으로부터 배운 놀라운 무예실력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깊이 생각한다; “상당한 학문과 초절정의 무예를 익히고 있는 나이지만 아직 19세의 청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곳 개경에는 초행이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인데 나에게는 생소하고 내가 알고 있는 친지가 한사람도 없다. 내가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분간 어디에 몸을 의탁하고 나중을 도모해야 하는 것일까?... “.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개경의 시내를 걷고 있는 아룡의 눈앞에 마치 운명처럼 하나의 벽보가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그 벽보를 보고서 웅성거리고 있기에 아룡이 앞으로 뚫고 가서 방문을 읽어본다. 그 내용이 간단하다; “최우의 집안에서 가마꾼을 모집하고 있다. 무예를 하는 자라야 한다”.
부친의 권력을 상속한 53세의 최우가 어째서 무예를 하는 가마꾼을 뽑고 있는 것일까? 백성들은 그러한 관심보다는 그 집안에 가마꾼으로라도 취직하게 되면 앞길이 열린다는 생각들이다. 그만큼 권력을 가진 집안에 몸을 담고 싶어하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많은 무인들이 그 방문을 보고서 고려의 최고권력자가 된 최우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19세의 아룡도 그들을 따라 최우의 저택으로 간다. 대문 앞에 서기들이 나와서 무인들에게 방문목적을 묻고 있다.
가마꾼을 뽑는다는 벽보를 보고 응모한다고 하자 대뜸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신지를 말하게 한다. 기록을 한 다음에 그 집의 장정들이 무인들을 한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 절차를 거친 아룡이 최우의 저택 서편에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 쪽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명부를 보고서 한번에 두사람씩 호명하고 있다. 이름이 불린 두명의 무사가 연무장에서 무술시합을 한다. 그렇게 승자가 결정되면 다시 승자들끼리 또 대결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면서 아룡이 생각한다; “어째서 이렇게 어렵게 가마꾼을 선발하고 있는 것일까?... “.
아룡이 처음으로 이름이 불리자 연무장에 올라가서 상대한 무인은 실력이 별로이다. 주최측에서 목검을 주어 겨루게 한다. 아룡이 자신이 가진 내력의 2할만 목검에 불어넣어서 상대 무인과 겨루어 본다. 그런데 상대방의 목검이 부러지면서 그만 옆구리에 가격이 되고 만다.
단 일합에 승부가 갈라지자 좌중들이 놀라서 부르짖는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구만. 단 한번에 상대방의 목검을 부러뜨리고 쓰러지게 하다니… 저자를 조심해야 하겠는데… “. 아룡은 스스로 벙어리가 되었기에 그때부터 귀와 눈이 엄청 밝아지고 있다. 따라서 관중들의 소리까지 듣고 있다.
그 결과 아룡이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시간을 좀 끌다가 이겨야 한다. 너무 일찍 이기게 되면 문제가 되겠는데… “. 16명의 승자가 결정되자 다시 승자들끼리 맞대결을 하게 된다. 그 다음에 아룡이 맞이한 상대 무사는 제법 기초가 단단하다. 몸이 날렵하고 목검을 휘두르는 품새가 날카롭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천천히 목검으로 상대한다.
여전히 아룡은 자신의 목검에 2할의 내력만 주입하고 있다. 그 목검으로 상대방의 목검에 부딪히고 보니 순간 그자가 휘청거린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그 다음에는 목검을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는다. 그는 교묘하게 상대방의 목검을 비틀어 막으면서 그 손을 슬쩍슬쩍 치고 있다.
수차례 그러한 행동이 반복되자 상대 무사가 그만 손에서 목검을 떨어뜨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심판관이 아룡의 승리를 선언한다. 목검을 떨어뜨린 자는 판정패를 당하는 모양이다. 아룡이 승자 8명 안에 들었을 때에 최종대결을 하게 된다.
2번의 대결에서 승리한 자들끼리 또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 아룡이 상대하는 무사는 인상이 날카롭다. 그리고 나이도 30세로 보인다. 천상 무인의 인상이며 호리호리한 몸매이다. 적어도 15년정도 무술을 연마한 것으로 보인다.
목검을 쥐고서 몸을 제비처럼 날려 아룡을 단숨에 공격해오는데 굉장히 깨끗한 일합이다. 아룡이 경시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상대방의 검과 몸을 주시하면서 역시 2할의 내력을 목검에 주입하여 천천히 막아간다.
관중들이 볼 때에는 답답한 방어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다; “상대방이 저렇게 빠르게 공격하고 있는데 저자는 어째서 목검을 천천히 휘두르고 있는가? 단 일합에 쓰러지고 말겠구만... 어떻게 저런 작자가 2승이나 거두었지?... “. 그러나 그것은 기우이다.
상대무사가 막상 쾌검으로 달려 들었는데 천천히 휘두르고 있는 그 목검이 이상하다. 검의 주위에 방패막이 굳건하게 쳐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신이 목검을 휘두르면서 쳐들어가자 큰 고목나무에 정면으로 부딪힌 느낌이다. 엄청난 충격이 검과 몸에 전해지고 있다.
상대무사도 민첩하다. 그는 즉시 옆으로 비호같이 물러난다. 그것을 보고 있던 관중들은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다 이긴 시합을 어째서 그냥 두고 몸을 피하고 있는가? 별 우스운 대결도 다 보게 되는구만… “. 그러나 모두가 까막눈인 것은 아니다.
두사람의 시합장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심사관이 한사람 있다. 그의 이름이 무활이다. 그는 최우의 신변을 경호하는 백부장이다. 그의 무예실력은 고려에서 10손가락 안에 들고 있다.
나이 40세인 무활이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중얼거린다; “내공을 이용하여 방어막을 형성했다 이거지… 그렇다면 내공을 익히고 있는 자가 아닌가? 그것도 나 정도의 실력인데… 저 젊은이가 도대체 어디서 저러한 내공을 극성으로 익혔을까?... “.
아룡은 자신이 무활의 관찰대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목검을 휘둘러서 반격에 나선다. 상대무사가 아룡의 목검을 자신의 목검으로 막으면서 자꾸만 뒤로 물러서고 있다. 그 이유는 서로 목검을 부딪히게 되면 엄청난 충격이 몸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7합을 교환하자 그만 그 무사가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7번의 충격을 자신의 몸이 견디지 못한 결과이다. 그것을 보고서 심판관이 아룡의 승리를 선언하고 만다. 그와 같이 그날 4명의 최종우승자가 선정된다. 그 이름이 관창, 장무, 조룡, 그리고 아룡이다.
4명의 승자가 결정되자 그들에게 백부장 무활이 다가온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한다; “오늘 뽑힌 4명은 보령 아가씨의 가마꾼이다. 아가씨는 우리들의 주군이신 최우 장군님의 금지옥엽이니 그 신변보호에 결코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번이라도 아가씨의 신변에 위험이 발생한다면 그때에는 목숨으로 갚아야만 한다. 알겠느냐?... “.
백부장 무활은 서기가 전해주는 작은 명패를 각자에게 준다. 한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무활이 특히 아룡에게 명패를 주면서 눈을 번쩍인다. 그리고 말한다; “네가 아룡이냐? 좋은 솜씨를 가졌구나. 열심히 아가씨를 보필하도록…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고개를 숙여서 절을 하고 자신의 명패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보고서 예리한 무활이 생각한다; “어째서 ‘예’라고 대답하지 아니하고 절만 하고 있는가? 그 이상한 놈이구만… “.
그 모습을 보더니 서기가 슬쩍 귀띔한다; “무활 장군, 저놈은 벙어리입니다. 그러니 대답을 못하고 절을 하고 있지요. 아가씨의 가마꾼으로는 적격입니다. 보령 아가씨는 말대답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지 않습니까?... “.
그 말을 듣자 무활 장군이 아룡이의 실력을 경계하던 마음을 그만 풀고 만다. 벙어리이니 그 실력이 좋아보아야 크게 출세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 승자 4명을 데리고 서기가 별채로 안내한다. 그곳은 가마꾼들이 묵고 있는 숙소이다. 그 위치가 대문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자 서기가 말한다; “나는 가마꾼의 관리를 총책임지고 있는 서기 김호남이다. 내 방이 가장 대문이 가까운 저쪽 방이다. 무슨 질문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나 나를 찾아오도록 하라. 비록 너희들의 신분은 가마꾼이지만 정식 무사의 급료가 지급될 것이다. 그리고… “.
4명의 신참을 둘러본 다음에 서기 김호남이 이어서 말한다; “최우 장군님의 댁에 가마꾼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오늘은 고단할 것이니 목욕이라도 하고 편히 쉬도록 하라. 그리고… “.
김호남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계속 말한다; “목욕한 다음에는 모두 이 집에서 주는 새 옷으로 갈아 입도록 하라. 다모가 너희들의 무사복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명패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너희들의 신분증이며 이집을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명패이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
생각보다 군기가 살아 있고 행정질서가 확립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최충헌이 23년이나 최고의 권력을 행사한 집안이다. 이제 최우의 집에서 아룡이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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