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8. 03:51

로마서 강해 42(7:19-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1()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이상 자신의 힘과 지혜로는 율법의 요구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데 이유가 무엇인가?(7:19-24)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참으로 절망적인 사실 하나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을 지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전히 자신의 힘과 지혜로써는 온전히 율법을 지키며 그것을 실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사도 바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분명히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점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방법을 본문 다음에 사도 바울이 드디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나를 위한 영원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얻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선한 일을 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욕심에 이끌리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 절망 가운데 사도 바울처럼 부르짖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바로 그러한 처지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여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처방에 대한 설명은 다음 강해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에서는 이미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이제부터 자신의 힘과 지혜로 한번 거룩한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작심하고 나서고 있는 많은 성도들이 어째서 신앙생활에서 타락하고 있는지 이유부터 밝혀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니라”(7:19-20);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고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과거와 달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고자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결심과 달리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러한 원하지 아니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유를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속에 여전히 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진심으로 회개를 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도들의 실제 삶에 있어서는 속에 아직도 죄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것이 여전히 성도의 삶을 지배할 수가 있다는 것일까요?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본문의 기록은 그가 성도가 되기 이전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기도 합니다.

(3)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내가 원하는 선을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이미 그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써는 죄에 익숙한 자신의 육신의 욕구를 잠재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에 잠재되어 있는 죄의 속성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고민입니다.

둘째로,그러므로 내가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이로다”(7:21);

(1)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봉착하고 있는 고민이 발생하고 있는지 이유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서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남은 삶에 있어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성도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죄악된 삶에 익숙한 육신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7:21b).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죄악에 물든 육신을 벗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2)   사도 바울은 해답을, “내가 법을 깨달았노니”(7:21a)라고 하는 표현 가운데 숨겨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어 주신 영생의 하나님을 믿게 되면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5:24). 그러므로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법으로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 따라 옛날 법의 정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법의 적용을 받아서 살아가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3)   구체적으로 그것은 두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옛날 법의 정죄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하나님 아들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법이 자신을 이상 지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둘째, 그냥 그렇게 깨닫고 있다고 하여 완전히 정죄에서 벗어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새로운 법이 강력하게 역사할 있도록 자신을 의탁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성도의 영적인 삶입니다.

(4)   미리 조금 말씀을 드리자면,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자신에게 적용해나가야만 합니다(8:1-2). 그리하면 자신이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이제는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임을 알게 것입니다(6:4-14). 따라서 죄에 익숙한 육신의 요구를 이상 나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이제는 성령님의 강력하신 역사에 맡겨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7:22);

(1)   사도 바울이 두개의 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는 죄의 법입니다. 두개의 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7:22a). 반면에 보이는 지체 속에는 죄의 법이 들어 있습니다(7:22b). 두가지의 법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7:22c). 과연 성도의 삶속에서 누가 이기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곤혹스럽게도 죄의 법이 이기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7:22d).

(2)   어째서 죄의 법이 영적인 하나님의 법을 이기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를 짐작하게 해주는 용어가 본문 가운데 다음과 같이 의미상 내포되어 있습니다; “ 마음의 싸워”(7:22c). 성도가 하나님의 법을 마음으로만 받아 들여서 자신의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과 싸웠기에 패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연약하여 변질하기 쉽고 믿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깨달았다고 좋아하면서 감히 죄에 오랜 세월 물들어 있는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잠재우고자 나섰으니 백전백패를 하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승리를 얻는 방법은 마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보혜사 성령님을 속사람 속에 모셔 들이고 기도로써 자신의 영을 지도할 있도록 부탁드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영성생활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검으로 삼아 악한 영들과 싸울 수가 있습니다(14:26, 16:13-14, 6:17-19). 그리하면 악한 영들이 패하여 달아나면서 자신의 육신을 지배하고 있던 죄와 사망의 법이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8:2).

넷째로,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며 구원을 기뻐하여 이제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성도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보고자 애를 쓰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마음만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곤고한 처지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7:23a). 사람의 연약하고 변하기 쉬운 마음으로는 결코 죄의 본능에 충실한 육신적인 욕구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성도의 의지를 이기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b).

결론적으로, 승리의 비결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사실을 앞으로 사도 바울이 논리적으로 진술해 나갈 것입니다;

(1)   역사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 처형해버린다면 자신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이 보전이 되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파견하시고 결과를 눈여겨보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결과 자신들의 상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능력으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4:49, 14:16-17). 약속이 오순절에 이루어지고 이제는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고 계십니다(2:1-4). 따라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들은 육신을 이기고 승리하는 영적인 삶을 있게 됩니다(1:8).

(3)   아울러 성령님을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십니다(14:16-20, 16:6-7, 8:9-16).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살이 가운데 벌써 천국을 맛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영생의 기쁨을 맛보시며 승리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