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30. 02:57

로마서 강해 44(8:3-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3()

 

율법이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8:3-6)

 

하나님께서는 영이십니다(1:2, 4:24). 그러므로 육신의 욕구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영과 육을 함께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은 다릅니다. 영적인 소망과 육적인 욕망 가운데 어느 것이 강하냐? 따라서 의의 종이 되느냐? 아니면 죄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6:16).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선민들의 소망이 현실적으로 실현이 없음을 말하면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유는 육신의 욕망이 강해서 율법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8:3a).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있도록 자신의 육신을 제어할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 주셨는지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3-4).

그와 같은 측면에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율법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1)   사도 바울은 율법과 육신이 대적(對敵, 서로 적으로 마주봄) 관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고자 하면 육신의 욕망이 그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것이 우세할까요? 바울은 육신의 욕망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소원보다 훨씬 강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7:23). 그래서 율법이 오히려 육신에 비하여 연약한 것이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8:3a).

(2)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뜻을 성취할 있도록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다스릴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민 유대인들은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지 아니하고 역사적으로 편법을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한 것입니다. 이른바 외식적’(外飾的,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율법생활이 그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23).

(3)   그와 같은 선민들의 위선적인 종교생활에 종지부가 찍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사람의 아들로 성육신시켰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하나님말씀의 뜻이며 그것을 위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에 방해가 되는 육신의 욕망을 잠재우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맙니다.

(4)   그것은 사람들이 육신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 잘못에 대하여 죄를 청산하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8:3b).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처형이 됨으로써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육신도 함께 정죄를 받고 처형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6:4, 6). 그것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몸이 되는 성도들의 기쁨이며 칭의의 기반입니다.

둘째로,육신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1)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 뜻은 속죄의 제사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고귀하신 희생임을 알고서 앞으로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공급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능력이 무엇일까요?

(2)   영적인 능력이 다음 두가지라고 사도 바울이 시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할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8:2, 4a). 둘째, 사람들의 의지와 힘과 지혜를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여전히 율법의 정죄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있도록 진리의 성령님께서 내주하여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8:4b).

(3)   참고로 여기서 율법의 요구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사람의 능력으로써는 율법을 모두 준행할 수가 없으므로 사실을 먼저 깨닫도록 하라는 요구입니다. 둘째, 부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여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 눈을 속이는 죄를 범하지 말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손을 들고 종의 신분으로 나아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는 간절한 요구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 성도들이 앞으로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하는지 모범답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육신의 일보다 영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8:5). 그와 같은 말씀을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벌써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3-24).

2)      영이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첫째, 창조주의 공의를 행하며 둘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셋째,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동행하심이 함께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것으로 육신적인 욕망을 이기며 율법의 정죄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영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은 영생을 얻으며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1)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남은 인생길에 있어서도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기쁨과 승리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의 특징입니다(8:6b).

2)      그와 반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자신의 인간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한번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창조의 진리를 깨우쳐서 사람들 위에 위대하고 거룩한 인물로 우뚝 서보고자 하는 자들은 낭패를 당하게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의지를 신격화하고 있는 피조물들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능력으로는 육신적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것에 이끌려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이미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7:14-15). 그렇게 계속하여 육신의 생각을 쫓아서 살게 되면 죄가 장성하여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8:6a, 1:15).

결론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영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육신을 다스리려고 하면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어 보겠다고 자신들의 의지로 밀어 부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한 실패로 끝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과 같이 손을 들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내주 역사하십니다. 은혜로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육신의 정죄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영적인 삶을 기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