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1. 04:28

로마서 강해 45(8:7-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4()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룰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8:7-10)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의 영적 기독론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아니라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8:7-10).

바울이 본문의 구절들 가운데 담고 있는 사상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사람의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대적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육신적인 생각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므로 누구도 자신에게 명령과 지시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육신적인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자와 협력을 따름입니다.

2)      하나는 육신적인 삶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창조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삶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생각에 물들어 이미 자기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육신이 되어버린 인간들이 요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6:3).

(2)   둘째, 하나님의 요구는 창조 당시부터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짐승들처럼 육신적인 생각으로 그저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바라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널리 행하는 영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기 중심적인 육신적인 생각으로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1)      사람이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소위 만물의 영장’(靈長, 영적인 어른)으로 창조가 존재입니다(1:26-27). 목적은 창조주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27, 5:3).

2)      그런데 하나님의 청지기로 창조가 사람들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육신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살며 세상을 다스리고자 합니다(6:1-5).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리며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3)      모습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이지만 내적인 형상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토기장이가 부수어 버리고 진흙으로 새로운 그릇을 빗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18:4). 따라서 노아의 시대에는 전면적인 홍수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6:6-7).

(3)   셋째, 그렇지만 노아 홍수 이후에 무지개언약을 세우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고 진흙으로 새로운 토기를 만들 생각을 하지를 않습니다(9:11-17). 대신에 육신 속에 새로운 강력한 하나님의 영을 두고자 하십니다. 마디로, 사람을 고쳐 사용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생각을 버리고 육신적인 생각으로만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므로 본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질서에서 벗어난 그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바로 잡고자 하신 것입니다.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이니라”(8:9-10).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제는 육신적인 생각이 아니라 영적인 생각을 쫓아서 있도록 만들고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하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육신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굴복하지 아니할 아니라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느니라”(8:7-8); 사도 바울이 7절에서는 육신의 생각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육신에 있는 자들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용어를 사용하여 바울은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으므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수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어의 상관관계를 한번 살펴봄으로써 바울의 명제를 좀더 명료하게 이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는 이유는 육신적인 생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째서 육신적인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마디로, 육신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육신적인 생각에 집착하거나 몰두하지 않도록 만들 수가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아니하도록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방법이 유한한 육신이 아니라 새로운 육신을 창조해주는 것입니다”.

(3)   셋째, 새로운 육신은 영생을 누릴 있는 부활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 육신적인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생각에 몰두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몸입니다. 새로운 몸을 역사 가운데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20:19, 27-29, 1:9).

(4)   넷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또한 굴복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란 근본적으로 단순한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본래 인간은 흙으로 지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형상과 생기가 들어 있습니다(1:26, 2:7).

2)      그런데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는 사탄이 사람들의 탐욕을 충동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한번 살아보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3:1-6). 유혹을 육신적인 욕심 때문에 받아들인 결과 사람들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3)      영적인 타락으로 이제 자신의 육신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육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생각에 동조하여 하나님과 대적관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1)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분리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분만을 산술적으로 하나의 창조주라고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의 입장에서(6:4-9) 한참 벗어나고 있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과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각각 인간에게 임재하여 따로 역사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존재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그러므로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에 대하여 교통정리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 ‘그리스도의 ’, ‘성령 순서로 항목을 달리하여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하나님의 창조주의 능력을 가장 보여주고 있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1)      창조주 하나님의 영은 창조와 재창조의 영입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세상을 창조한 영입니다. 그리고 무덤속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영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을 예수님께 보내어 무덤속에서 부활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2)      이제 부활의 영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內住, 안에 거하게 )시켜 주십니다. 표현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8:9a)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상징하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되었으니 성도들이 이상 유한한 육신의 몸에 집착하여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위와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3)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에게 그들 모두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자신의 영을 보내어 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b).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님과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여 그들의 복음사역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도행전 16장과 요한복음 14장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타나고 있음을 차제에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2)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4)   셋째, ‘성령님 대해서는 훗날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4장과 16장의 설명이 빼어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1)      마디로,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남은 인생을 세상 육신의 종으로 살지 말고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고 계속하여 영적으로 역사하십니다.

2)      그리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있도록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세계선교에 동행한 의사 누가가 부활 승천하시면서 주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이니라”(8:10);

(1)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 사이에는 공생애 당시에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나시고 인간으로 자라나셨지만 보통사람과는 다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본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2)   요컨대,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무리 사람의 아들 인자라고 스스로 부르시면서 겸손하게 공생애를 살아가셨지만 분은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지니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내주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훗날 사도와 제자들의 정체성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이니라”(8:10).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닮아가는 영적인 삶이 성도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부활 승천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14:16-17, 24:49, 1:8). 그리고 아버지의 영과 더불어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십니다(14:18-20).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심령속에 모시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6장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영적인 변화와 새로운 신분과 사명에 대하여 알게 되면 이상 육신에 속한 자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유한한 육신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육신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성도들은 그리스도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물 영생의 부활의 몸이 장차 자신이 입게 새로운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고전15:20-24, 3:10-16).

그리고 영적으로 거듭난 자신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여 함께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8:9-17, 39). 따라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영적인 삶을 살아가며 땅끝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아직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따라서 의의 병기로 드리게 되면 육신도 크게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6:13).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알고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