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7. 07:09

로마서 강해 41(7:14-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0()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게 하는 능력이 내게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율법의 신령성에 대하여(7:14-18);

 

   사도 바울의 논리전개가 본문에서 빼어납니다. 이유는 육신에 속하여 아래에 팔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율법의 선한 기능에 대하여 먼저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7:14-18). 다음에 바울은 자력으로 죄를 청산할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시고 계시는지 점에 대하여 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7:24-25).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의 능력의 한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신령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사람들의 깊숙한 죄성을 발견하게 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결코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속죄해주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게 예방해줄 있는 영적인 능력이 율법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기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먼저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우리가 율법 신령 알거니와, 나는 육신 속하여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7:14-15); 육신의 소욕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따라서 죄의 종이 되느냐? 아니면 의의 종이 되느냐? 결정이 된다고 사도 바울이 6 16절에서 벌써 밝힌 바가 있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본문의 서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율법 신령 알거니와, 나는 육신 속하여 아래에 팔렸도다”(7:14);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온전히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율법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완전하게 실천할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에게 속한 율법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란 신령한 것인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사람들의 육신적인 삶으로는 도저히 온전히 지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 한번 온전히 율법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쳐볼수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따름입니다.

3)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죄의 유혹에 굴복하여 죄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율법에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2)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7:15a); 죄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면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종이 주인의 명령에 무의식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맙니다. 그렇게 죄에 익숙해져버린 육신적인 삶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7:15a)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7:15b); 마음속으로는 율법의 의를 한번 이루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약합니다;

1)      그것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고 홀로 동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셔서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한참 후에 와서 보니 제자들이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14:38). 육신이 약하므로 자신의 능력으로는 율법을 모두 지키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2)      어찌하면 될까요? 7 말미와 8 첫머리에서 사도 바울이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1-4).

3)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희생을 생각합니다. 나를 구속하기 위하여 흘려 주신 예수님의 속죄의 피와 제사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함을 받게 되고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마귀의 정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성도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육신을 주님의 십자가에 박아버리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둘째로,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7:16); 사도 바울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적인 삶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만을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율법은 영적으로 신령한 것이므로 육신을 가진 인간이 결코 온전히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사실만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논리적으로 구원의 비밀을 후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갈 있게 그것이 바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8:1-4 의역).

셋째로,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니라.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7:17-18); 세가지 내용을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구절들입니다; 첫째,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 행할 없는 이유는 자신의 육신 속에 깃들어 있는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의 육신 속에는 도저히 신령한 것이 거하며 선을 행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고 싶은 마음은 그득하지만 육신 속에는 도저히 그것을 이룰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7:17-18). 그리고 율법도 그렇게 해줄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사도 바울의 논리적인 모색은 현실론적으로 그렇게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은 벌써 말씀드린 그대로 7 말미와 8 초입부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된 육신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박고 남은 인생을 주님을 모시고 성령님 안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이 영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이미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님으로 모시고서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바울의 체험적인 복음의 설명이 바로 로마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바울의 영적인 삶이 여러 성도님들의 영적인 삶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