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3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3. 20:57

로마서 강해 35(6: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4()

 

이상 죄가 주장하지 못하도록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자로 살아가라(6:11-14).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거듭난 자의 삶의 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6:11).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처럼 살아가고자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에 비로소 죄가 물러가며 의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6:12).

(2)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의 지체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만 하는 인생입니다(6:13).

(3)   셋째, 성도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써는 결코 의로운 하나님 자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이른 믿음의 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삶입니다. 만약 성도가 다시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고자 때에는 스스로 율법의 이룰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함정에 빠지게 것입니다(6: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 그리스도 예수 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6:11-12);

(1)   사도 바울이 성도들의 믿음생활의 1조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 그리스도 예수 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6:11) 여기는 것입니다;

1)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여전히 넘어지고 실족을 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2)      아직도 육신적인 삶에 익숙한 자신을 쳐다보게 되면 답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온전히 희생의 제물로 바쳐 주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대속 때문에 자신을 의롭다고 선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능력과 공로로 의인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죄와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4)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다시 선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벌써 하나님의 자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있도록 조치가 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선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삶이 성숙해질수록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얼마나 하나님의 선물인가를 알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을 다시 죄와 사망 가운데로 끌고 가려는 악한 영들의 유혹과 시험이 얼마나 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6:12)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여기서 몸의 사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 자신의 이익을 먼저 도모하고자 하는 사리사욕(私利私慾,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우선으로 하는 )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진작에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제자의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간구로 사리사욕으로 향하는 마음을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어서 끊어내어야만 합니다.

3)      작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크리스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어그러지고 것입니다. 물론 세상살이에서도 그러합니다. 오늘날 고위 공직자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다가 엄청난 죄인이 되고 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1)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같이”(6:13b); 성도를 일컬어서 거듭난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용어는 사실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랍비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 때에 얻게 주님의 답변에서 비롯이 되고 있습니다(3:1-5).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수가 없으며 또한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이 뜨인 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거듭난 자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다시 살아난 성도들입니다.

(2)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6:13a),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c);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달라지고 사는 방법이 달라지게 됩니다;

1)      그저 100 안팎의 인생을 살게 되는 육신적인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였을 때에는 인생의 주인은 육체를 가진 자기 자신입니다. 따라서 몸이 편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면 그것으로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뜨여서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얼마나 희생을 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2)      따라서 남은 인생을 사욕을 채우며 예전처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6:13a).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아니하기 위하여 의의 병기로 다음과 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6:13c); 첫째,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주셨기에 은혜에 보답을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복음사역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보내어 주셔서 나의 영적인 삶을 돕고 계십니다. 따라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영적인 삶에 박차를 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1)   랍비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을 영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9:3-9). 그때부터 사울은 예수님이 어째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지니고 있는지 이유를 발견하기 위하여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다시 살펴보고 깊은 영적인 탐구를 하게 됩니다. 결과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고 이제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영적인 삶을 허용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2)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사역을 계승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얻을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랍비 사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고서 이제는 이방인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도 사울이 아니라 바울로 바꾸고 있습니다. 의미는 인간의 능력으로 자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생각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작은 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 의미하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작은 라는 뜻을 가지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내력입니다.

(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제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생각을 온전히 버린 사람입니다(10:2-3). 그것은 애초부터 성립이 되지 아니하는 생각이며 명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생각이 창조주를 주인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번 인생의 주인이 되어 위대한 생애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일 따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라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6:14a).

(4)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어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구원을 누릴 있는 방법입니다. 그와 같이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죄가 결코 발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언명은 확실합니다. 그는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고 이제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의 삶을 살아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전과 같이 죄와 사망이 그를 지배하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것을 막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적인 삶을 강력하게 보호해주시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독생자 그리스도까지 희생하셔서 구원한 것이 바로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성도들에게 성령님까지 내주시켜서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랍비 사울이었던 자신을 회개시켜서 이방인 사도인 바울로 사용하고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또한 성도 여러분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와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성도님들을 강력하게 보호하지 아니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바울의 영적인 고백이 또한 여러 성도님들의 신앙고백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