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3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3. 01:46

로마서 강해 33(6: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2()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6:1-5);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사실 2구절에서 이미 언급한 것을 보충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절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노릇하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0-21);

그렇다면 위의 2구절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달리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용을 일단 살펴보게 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라고 사도 바울이 언급한 내용을 성도들이 잘못 이해하거나 악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이해를 하게 되면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죄를 많이 범하더라도 그것은 구원의 은혜를 얻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이 클수록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많이 얻게 되므로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영광을 세상에 많이 드러내게 되는 방편이 된다는 형식적인 논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잘못된 결론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가운데 살리요?”(6:1-2).

(2)   둘째,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이상 가운데 살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있는 이유가 본문 바로 앞절의 내용입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노릇하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다음과 같이 성도가 인생 가운데 3단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1)      첫째 단계는 성도가 되기 이전의 시대입니다. 그때에는 죄가 사망 안에서 노릇하고 있습니다.

2)      둘째 단계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도가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자 하는 제사라는 사실을 알고서 회개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해주시고 칭의의 은혜를 주시며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 그것이 성도의 탄생입니다.

3)      셋째 단계는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무덤 부활을 세상에 증거하는 사도와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상명령을 수행할 있도록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시게 됩니다(14:16-17). 그리하면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성도의 속사람속에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1:8, 2:1-4).

(3)   셋째,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성도의 속사람속에 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커다란 변화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3-5);

1)      마디로, 이상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지 아니하게 하는 놀라운 부활의 은혜가 믿음 가운데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있는 이유는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성도들은 땅에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성도가 세상에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되면 마침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영광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28:18-20, 22:28-30).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성도들을 의로운 인생으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범한다고 하는 그러한 형식적인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믿음생활을 영위하며 복음의 증거자로서 남은 인생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가운데 살리요?”(6:1-2);

(1)   사도 바울은 성도가 되기 이전과 성도가 이후의 차이가 무엇인지 여기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되기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를 모두 예수님에게 위임하고 안수하는 절차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맡기고 진심으로 회개한 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함의 은혜와 더불어 칭의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입니다.

(2)   일단 의인으로 여겨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성도가 다음에는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붙들고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재차 위임하는 마치 옛날과 같은 그러한 신앙생활을 계속 영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한번 죄를 탕감 받으면 다음에는 다시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로운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위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8:11).

(3)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기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소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가운데 살리요?”(6:1-2). 이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와 같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설혹 죄를 짓고자 할지라도 그렇게 없도록 강력하게 예방해주고 막아주는 하나님의 안전장치가 은혜로서 성도들에게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다음 절에서부터 사도 바울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둘째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6:3);

(1)   성도들이 이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는 표시가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입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실 때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요한이 허락하는지라”(3:15). 예수님께서는 장차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뜻을 이루고자 물세례를 먼저 받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디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훗날 그리스도의 사도와 제자들에게도 주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   그것이 무엇인지 사도 마태가 다음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6-17).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1)      첫째, 세례를 받은 자에게 성령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세례입니다.

2)      둘째,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있도록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따라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은 죄를 멀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1)   사도 바울은 특별히 예수님을 무덤속에서 3일만에 살리신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이라는 창조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활과 재창조의 능력이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3일만에 부활하셔서 영생의 몸을 입으시고 40 후에는 승천을 하시고 있습니다(24:4-6, 36-53, 1:3-11).

(2)   성도들에게는 남은 인생 동안 하나님의 복음과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갈 있도록 진리의 성령님께서 함께하십니다(24:44-49, 14:16-20, 1:8).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있도록 영적인 능력이 공급이 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부활의 능력이 성도들을 매일 새롭게 살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5);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고 있는 물세례는 성도가 믿음생활 가운데 얻고 있는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의미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대속의 은혜를 얻게 되는 물세례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부활과 영생의 능력을 얻게 하는 성령세례까지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능력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므로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에 굴복하지 말고 부활과 영생의 자녀답게 승리하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5).

결론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능력이 이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 죄와 사망의 위협에 쩔쩔매고 있는 연약한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담대하게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로마서 8 끝머리에 적혀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음미하면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8:38-39). 아무쪼록 사도 바울의 확신이 성도님들의 확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