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30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1. 01:46

로마서 강해 30(5:12-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30()

 

사람 아담과 두번째 사람인 예수님의 상징성에 대하여(5:12-15);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아담과 예수님의 상징성에 대하여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자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이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지식이 사전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창세기 1장에서 말하고 있는 인류인 시조인 남자와 여자는 창세기 2장에서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상당히 다릅니다. 차이점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남자와 여자는 세상을 다스리도록 지음을 받고 있습니다(1:26-28).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밤과 , 바다와 육지와 식물들, 하늘의 천체들,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 땅의 짐승들이 풍성한 곳입니다(1:3-25). 반면에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몸을 지으시고 직접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영육합일체로 창조를 하고 있는 아담은(2:7) 살고 있는 세계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로 거닐고 계시는 에덴동산에 배치를 하셨기 때문입니다(2:8). 그곳에는 물의 근원과 강이 있습니다(2:10). 그러나 강과 바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의 강물이 세상으로 흘러 나가 강을 이루고 그것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2:11-14). 그러므로 인류의 문명이 탄생하게 되는 강과 바다는 인류의 시조인 남자와 여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것들입니다(21:1).

2)      둘째,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하나님신앙의 소유자인 아담이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여자 하와와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2:20-25). 가정에 마귀의 화신인 뱀이 찾아와서 유혹을 하게 됩니다(3:1-5). 유혹을 하와가 물리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3:6).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귀의 화신인 뱀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고 뱀으로 말미암아 탐욕과 죄에 물들게 아담부부에게도 장차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사망과 에덴동산에서의 퇴출이 결정되고 맙니다(3:14-24). 그리고 생명의 나무로 접근하는 길도 막히게 됩니다(2:24). 훗날 실락원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에게도 죄의 소원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적인 삶이 유전이 되고 있습니다(4:7-12). 특히 동생을 죽인 살인자 카인은 동쪽 유민들의 땅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4:14-16). 여기서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존재가 창세기 1장에서 지음을 받은 남자와 여자의 후손들이 세상에 퍼진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8).

3)      셋째,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하나님신앙을 대물림할 있도록 셋째 아들 셋을 가정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셋은 아들의 이름을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에노스라고 부르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영생의 구원을 주시기를 간구하게 됩니다(4:25-26).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셋의 후손들마저 하나님신앙을 온전히 파수하지 못하고 그만 세상여자들의 아름다움에 현혹이 되어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되고 맙니다(6:2-4). 힘과 권력으로 횡포와 포악을 일삼고 있는 인간들의 사회는 마침내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하고 하는 짐승의 세계와 같아져 버립니다. 결과 포악함이 만연하고 무죄한 자와 약자의 피가 땅에 흘러 넘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홍수와 지진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맙니다(6:5-7).

(2)   둘째, 여기까지 살펴보게 되면 창세기 1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2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아담부부와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무엇인가 차이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우선 그들이 사용이 되고 있는 용어에서부터 개념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 남자와 여자의 후손들이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무신론(無神論, 하나님이 없다고 가정하는 )적으로 세상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죄와 사망은 의미가 하나님 앞에서의 것이 아닙니다. , 구원이나 영생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그저 세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육신적인 죄와 사망입니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하여 나아가서 먹고 살며 남을 지배하기 위하여 짓고 있는 육신적인 죄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는 사망을 맞이하게 됩니다(3:19). 사망과 동시에 영은 창조주에게 회수가 되고 맙니다(3:20-21).

2)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의 순간부터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아담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죄와 사망의 개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계속 인생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의인이냐 아니면 죄인이냐의 구분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17:1, 1:1-6). 하나님 경외자는 의인이며 영생구원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불신앙자는 죄인이며 영혼이 구원을 얻지를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기를 끊임없이 코로 받아들여서 영적인 호흡을 하고 있으면 생명이고 그것이 끊어지게 되면 사망입니다(2:7, 30:20).

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말하고 있습니다. 뜻은 육체적으로는 멀쩡하게 아직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고 영적인 삶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은 영적인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5:12). 비근한 예를 들면, 족장 데라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75세의 아브람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하란 땅에 머물고 있는 145세의 아버지 데라를 떠나 가나안으로 남행을 하고 맙니다(11:26, 12:1-5). 그후 하란 땅에서 60년간 생존하게 되는 족장 데라의 육신적인 삶을 집사 스데반이 이미 죽은 것으로 영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11:31-32, 12:5, 7:4).

(3)   셋째, 본문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신앙을 가진 아담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가지는 후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아담의 타락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5:12). 마귀의 화신인 뱀의 말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으며 자신의 탐욕이라는 죄의 소원을 따르게 하와를 통하여 아담이 영적인 타락을 하게 되고 죄성은 그의 후손들에게 유전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동산 바깥으로 쫓겨나고 생명나무로 접근하는 길이 막혀버립니다(3:23-24). 이제 영적인 사망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아담의 아들인 카인이 유배를 가고 있는 동방의 땅에 살고 있는 무신론자들에게 있어서는 죄와 사망의 개념이 무엇일까요?(4:14-16) 무신론자들에게는 그들의 육신적인 때문에 당연하게 육체적인 죄와 사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영혼은 육체적인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솔로몬의 증언과 같이 그들의 영혼은 위로 올라가 창조주에게 회수가 되고 맙니다(3:21). 그러므로 그들의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이방인인 그들에게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나 영생구원을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보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관계의 형성이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도와 제자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전파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24:14).

3)      셋째, 예수님께서는 말씀사역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십니다; “ 죽여도 영혼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몸과 영혼을 한꺼번에 멸하실 있는 유일한 창조주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이생의 문제 육체적으로 몸이 죽고 사는 문제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과 구원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생의 문제보다 영생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이 소멸이냐 영생이냐의 문제가 오로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육신적인 삶을 청산하고 여호와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1)   여기서의 사람 다음 절을 참조하면, ‘아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이 잘못하였기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다음에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력은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5:12 의역). 사도 바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질의를 해보아야 합니다; 첫째, 아담이 잘못했는데 어째서 그의 후손들이 죄와 사망의 벌을 동일하게 받게 되는 것일까요? 둘째, 당시 세상에 아담의 가정 이외에도 많은 인류가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1:26-28)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이 적용이 되지 아니하는 것일까요? , 아담이 없다면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   첫번째 질문, “아담이 잘못했는데 어째서 그의 후손들이 죄와 사망의 벌을 동일하게 받게 되는 것일까요? 대하여 살펴봅니다; 아담은 창세기 2장을 참조하면, 많은 인류 가운데 유일하게 선택이 되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2:8). 그는 하나님과 동거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생기를 코에 받아 들이면서 영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습니다(2:7). 영적인 삶의 특징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형상은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그의 후손들에게 대물림이 되고 있으며(5:3) 반대로 그의 죄성도 유전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아담의 죄성과 사망은 그의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르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영적인 삶의 특징입니다.

(3)   두번째 질문, “당시 세상에 아담의 가정 이외에도 많은 인류가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1:26-28)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이 적용이 되지 아니하는 것일까요? , 아담이 없다면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대하여 살펴봅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가 아담입니다. 그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아담이라고 불러 주시면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아담과 그의 자손들은 영적인 삶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덴동산 바깥에서는 많은 인류가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그곳에서 세상의 문명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2)      만약 하나님 경외사상을 가지고 있는 아담과 그의 후손을 선민이라고 본다면 처음부터 에덴동산 바깥에서 번성하고 있는 인류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육신적인 죄와 사망이 진작에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들에게 언제 영적인 삶이 구원으로 찾아오게 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줄 때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점에서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를 하고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어 주십니다.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역사를 통하여 마침내 성령님의 능력을 얻은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1:8).

  둘째로,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5:13-14);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5:13); 죄에는 두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입니다. 하나는 사람들 앞에서의 죄입니다. 전자의 ,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비추어 보게 되면 죄성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5:13b).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지만 단지 사람들 앞에서만 죄가 되는 알고서 지내게 것입니다(5:13a).

(2)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노릇 하였나니”(5:14a);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담가정의 범죄는 에덴동산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육신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회수가 되고 마는 운명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심판이기 때문에 효력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의 후손이 아닌 자들 애초부터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인류들에 대해서는 죄와 사망의 법칙이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1)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노릇 하였나니”(5:14a)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 “ 죽여도 영혼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구절을 대입해보면 금방 깨닫게 됩니다.

2)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육체적인 법칙이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죄가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영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그들의 무지가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되며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들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만민구원에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위와 같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3)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5:14b); 아담이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죄와 사망이 유전이 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단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또다른 역사의 시발점과 단초가 장차 발생하게 되는데 아담의 경우가 그것의 예표가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반대의 경우를 예시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다가 믿음에서 실족하여 후손들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죄와 영적인 사망이라고 하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자가 아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대이십니다.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스스로 지시는 것입니다(4:8-10, 26:39, 27:38-54).

2)      자신의 육신과 목숨을 장차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의 속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입니다. 공로로 무덤속에서 부활을 맞이하십니다(28:5-10).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도와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8:2).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은혜가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개방이 되고 있습니다(28:18-20, 1:8).

셋째로,그러나 은사 범죄 같지 아니하니, 사람의 범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 또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5:15); 다음과 같이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은사 범죄 같지 아니하니, 사람의 범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5:15a); 범죄는 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범죄의 유혹이 강하며 범죄를 저지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범죄란 확산의 속도가 참으로 빠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는 후손들에게 확대재생산이 되어나가고 맙니다. 더구나 세상사람들의 범죄도 전파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결국 모든 인류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3:9-10).

(2)   더욱 하나님의 은혜 또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5:15b); 이제 엄청난 모든 인류의 죄악을 누가 하나님 앞에서 청산을 수가 있을까요? 사람으로써는 수가 없습니다. 이상 일시적인 효과만 가지는 가축으로써도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속죄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께서 그리스도 예수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7:27).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시면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결과 무덤속에서 부활하십니다. 승천하시면서 믿는 자들을 위하여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까지 보내어 주십니다(24:49-53, 14:16-17, 1:8-9).

결론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사함과 칭의의 은혜는 물론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까지 구원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22:28-30).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영적인 삶에 매진해야만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선물이 전해지도록 해야만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기쁨과 사명의 완수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